[책] 모든 성교육 바탕엔 성 인권이 있어야 한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 엄주하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인 'n번방' 운영자로 경찰에 구속된 '갓갓' 문형욱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인 'n번방' 운영자로 경찰에 구속된 '갓갓' 문형욱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n번방 사건을 비롯한 충격적인 성범죄가 코로나19 만큼이나 경고등을 울리고 있는 요즘,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어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성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길래 성범죄자가 된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성교육의 현실과 우리 사회의 성 인식을 근본적으로 훑어봄으로써 성 인권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10대에게 성은 있는가?

성교육은 억압적인 교육이 주를 이룬다. 일례로 2015년에 교육부가 발표한 '성교육 표준안'을 보면 '학생의 성 행동은 금욕을 기본'으로 가르치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억압적인 교육을 전제로 하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순결 교육으로 대표되는 성에 대한 위협 전술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의 눈을 벗어나 성생활을 하고 있고, 이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기에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나아가 이제는 아이들을 성적 존재이자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는 성 인권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그들이 마음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성적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부정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성 행동을 할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성 인권 교육의 출발이라고 강조한다.

◆'피해자 되지 않기'가 아니라 '가해자 되지 않기'

그동안 한국 성교육의 주를 이루어 온 또 다른 줄기는 '저항(피하는) 교육'이다. 지금껏 아이들을 성범죄 상황의 잠재적 피해자로 상정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라고만 가르쳐 왔다. 그러나 경계심을 가진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식의 막연한 교육은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싫어요' 교육은 위기 상황에서는 자칫 생명까지 잃을 수도 있다. '싫어요'라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은 이미 성폭력 상황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이들을 겁주고 움츠러들게 하는 '피해자 되지 않기' 교육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모하는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성 행동이 타인에 대한 존중인지, 침해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이에 더해 음란물을 통해 왜곡된 성 인식을 흡수한 아이들은 상대를 성적 도구화하는 데 익숙해지고 사랑 없는 성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렇듯 아이들 사이에서 심각한 성 인지 감수성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한국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조심하라는 교육만 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제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 인식을 심어 주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적 주체로서 자신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듯이 상대의 권리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인권 보호라는 것을 아이들이 확실히 알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 저자는 또한 타인의 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명백히 성폭력 범죄라는 인식이 어려서부터 자리 잡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자는 얼굴이 권력이고, 남자는 성적이 권력이다?

한 여자 고등학교의 교훈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이고, 한 남자 고등학교 학급의 급훈은 '여자는 얼굴이 권력이고, 남자는 성적이 권력이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저자는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변해야 할 것은 어른들이라고 말한다. 어른들의 인식이 변할 때 비로소 아이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기 이전에 어른들이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만든다. 364쪽, 1만4천원.

※저자 엄주하는?

초등학교 보건 교사로, 성 인권 교재 집필과 강의를 하고 있다. 2004년 성상담 사이버 상담교사를 시작으로 보건 교과서 성 영역를 비롯해 '성폭력 예방', '학교에서의 성인권 교육 핸드북', '상담을 통한 학교폭력 예방' 중 성폭력 영역 등을 집필했다. 학생 및 학부모와 교직원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 등 성 인권 교육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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