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이 경쟁력이다]37. 병원학교 학생들 김장무·김장배추 수확과 나눔

배추의 크기는 작았고 속은 헐렁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마냥 즐거웠고, 지켜보는 선생님들은 흐뭇했다. 지난 주 금요일(11월 29일), 대동병원학교 학생들이 여름 끝자락에 자신들이 심고, 가을 내 가꿔온 김장무와 배추를 수확해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봉사단체인 '서로돕고사는집'에 기부했다.

※병원학교(病院學校)는 병원 안에 설치된 교실로 입원이나 지속적인 의료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치료와 학업 및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교육청과 병원이 협약을 맺어 위탁 운영하는 학교다.

대구시교육청과 매일신문이 후원하는 대구어린이농부학교 텃밭에 병원학교 학생 30명이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원래는 도와줄 어른들이 도착하는 오후 1시부터 무·배추를 수확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우리가 할 수 있어요!"라고 외쳤고, 인솔 선생님들은 굳이 어른들 기다릴 것 없다고 판단했다.

초등학교 6학년~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병원학교 학생들은 배추와 무를 뽑고, 뽑은 배추를 다듬고, 무청은 따로 떼어 그늘진 곳에 널어 말리는 작업까지 척척 해냈다. 인솔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학생들은 손발을 맞춰 무와 배추를 뽑고 운반했다. 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햇살처럼 번지고 있었다.

 

병원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위)을 도와 무청을 그늘막 아래 널고 있다. 김동욱 선생님은 병원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위)을 도와 무청을 그늘막 아래 널고 있다. 김동욱 선생님은 "우리 학생들이 퇴교할 때 오늘 말린 시래기를 나누어 주어서 부모님들과 집에서 찌개를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 "우리 학생들에게 이런 모습이" 감동

재학생을 병원학교에 맡긴 터라 수확하는 날 텃밭을 방문한 하미애 대구성보학교 교장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다니 놀랍고 고맙다. 학교에서 종일 시무룩하거나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던 아이가 이처럼 활기차고 신바람이 나서 뛰어다니고, 친구들을 돕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고 말했다. 교장 선생님을 알아본 한 아이는 선생님 앞으로 뛰어가 자신이 가꾼 배추와 무를 가리키며 자랑했다.

병원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김동욱 대구성보학교 선생님(특수교육교사)은 병원학교 학생들과 함께 떼어낸 무청을 그늘막 아래 널며 "우리 아이들이 병원학교에서 퇴교할 때 오늘 말린 시래기를 조금씩 나눠 줄 생각이다. 아이들이 기르고 수확해서 말린 시래기로 부모님들과 찌개를 끓여 먹으면 아주 좋겠다"고 말했다.

 

병원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무와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병원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무와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 깨끗하게 다듬어 자동차까지 운반

학생들은 이날 수확한 배추와 무를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봉사단체인 '서로돕고사는집'에 기부했다. 화학비료도 농약도 주지 않아 크기가 작고 속이 헐렁했지만 최정숙 서로돕고사는집 봉사원은 "김치 담그면 이런 배추가 훨씬 맛있다. 정말로 고맙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독거노인)이 기뻐하실 거다" 며 가을내 수고한 학생들을 칭찬했다.

밭에서 금방 수확한 배추는 겉잎이 너덜너덜하고, 무는 흙이 묻어 지저분해보인다. 그대로 가져가면 '서로돕고사는집' 봉사원들의 할 일이 많고, 음식물찌꺼기나 털어낸 흙을 처리하기도 곤란하다.

"우리 기왕이면 무와 배추를 예쁘게 다듬어서 드리자."

김동욱 선생님의 제안에 학생들은 마치 어미를 따르는 병아리처럼 배추를 다듬고 무의 흙을 털어냈다. 그렇게 다듬은 배추와 무를 학생들은 100미터 가량 떨어진 주차장(무·배추를 싣고 갈 자동차 대기장소)까지 빠짐없이 배달했다. '서로돕고사는집'에서 나온 봉사원들은 "우리는 할 일이 없네. 무 배추 받고, 구경만 하고 간다"며 학생들의 수고에 거듭 감사를 전했다.

 

◇ 보살핌 받는 학생들이 보살피는 주체로

부지런히 일하는 학생들을 붙잡고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힘 안 들어요" "재미있어요" 라고 답했다. 수확한 무와 배추를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김장용으로 보내는 게 아깝지 않느냐는 말에 "아니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이날 수확한 무와 배추 중 반은 독거노인들을 위해 기부하고, 반은 병원학교로 가져가서 김치나 국거리로 활용한다.

한 여학생이 수확한 무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 부지런히 무를 뽑고 밭 언저리로 운반해온 이 학생은 한 여학생이 수확한 무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 부지런히 무를 뽑고 밭 언저리로 운반해온 이 학생은 "무 예쁘죠?"라며 처음 만난 기자에게 스스럼없이 자랑했다.

최정숙 서로돕고사는집 봉사원은 "무와 배추를 너무 많이 줘서 차에 다 싣지도 못하겠다" 며 "그만 줘도 된다"고 말했고, 학생들은 "더 가져가세요"라며 자꾸자꾸 무와 배추를 리어카에 실었다.

병원학교 학생들이 수확한다는 소식에 텃밭을 방문한 이윤옥 대구시교육청 유아특수교육과장은 "학생들 표정이 참 맑고 밝다. 무엇보다 항상 타인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했던 병원학교 학생들이 누군가를 처음 돕는다는 게 대견하고 기쁘다. 학생들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이처럼 신바람 나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 학생들 텃밭에서 생기발랄…교사들도 신바람

김동욱 병원학교 담당 선생님(대구 성보학교 교사)은 "아이들 대부분이 밭에 나와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좋아한다. 병원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설명을 듣는 공부보다는 자신들이 몸으로 직접 참여하는 과정을 더 즐긴다"고 말한다. 그는 "학생들과 텃밭에 나오면 시간이 아주 빨리 가는 것 같다. 학생들이 워낙 생기발랄하게 움직이고, 자기 생각을 말도 잘해서 덩달아 인솔 교사들도 신이 난다"고 했다.

병원학교 학생들이 수확한 뒤 겉잎을 다듬어 정리한 배추. 병원학교 학생들이 수확한 뒤 겉잎을 다듬어 정리한 배추.

병원학교의 야외활동은 현장체험학습, 농업활동, 사회적응 활동이 있다. 병원학교 위탁학생들의 경우 장기간 입원치료를 하기 때문에 소속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교육활동에서 제외된다. 그만큼 야외활동 기회가 적은 셈이다.

대구어린이농부학교 텃밭가꾸기 활동은 병원학교 아이들의 학교복귀프로그램 중 하나인 '힐링팜' 프로그램이다. 날씨가 좋으면 1주일에 1회, 날씨가 맞지 않으면 2주일에 1회 텃밭에 나온다. 올해 대구어린이농부학교 텃밭가꾸기에 참가한 병원학교 학생은 4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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