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김태호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틈/김 태 호

벌어진 창틈 사이로 칼바람이 불어온다. 커튼이 가려져 있어도 방안 공기가 차다. 이불을 뒤척이며 잠을 청해 보지만 좀처럼 눈이 감기질 않는다.고향집을 빈집으로 비워 둔지 수년이 흘렀다. 워낙 두메산골이라 사려는 사람이 없어 지금까지 여름 한철 피서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은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며 공부까지 시켜 준 고향집이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놓아가며, 온 가족이 오순도순 살았던 정든 옛집이 아니던가.모처럼 고향집 대청마루에 앉아 옛 생각으로 상념에 잠긴다. 걸터앉은 마루 틈으로 애기누에만한 개미들이 바지런히 무엇을 나르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어딘가로 옮기는 모양이다. 마룻장 빈 틈 사이로 줄을 지으며 겨울 양식을 저장하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 마루 천장을 바라본다. 오랜 세월 손을 대지 않아 천정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든 자욱이 보인다. 장마라도 들면 틈이 더 커져 하늘이 보일 것만 같다. 낡은 고향 집의 틈새들을 바라보며, 고택만큼 오래된 내 삶의 빈틈들을 회상해본다. 칠십 평생 동안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가슴을 아프게 한 적도 있고, 알게 모르게 행동으로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한 것 같다. 아마 이 세상에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때로는 내 가슴에 너무 큰 틈이 생겨 인생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공부는 뒷전이고 오락에 빠져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대학을 다니던 맏형의 갑작스런 요절로 우리 집은 한때 대들보가 부러진 황량한 분위기에 잠겨있어야만 했다. 그때 나는 사춘기인 중3 때라 가슴에 빈틈이 구멍처럼 컸었고, 마음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았다. 그로 인해 대구로 가는 고입 진학은 포기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돕기 위해 인근 면에 있는 농고에 진학했다.가슴의 틈 때문이었던지, 12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하면서도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3년간 허송세월만 보냈다. 졸업 후 대학을 가려해도 실력이 모자라 대입시험에서는 결국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눈물을 머금으며 학업을 접고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졸지에 장남이 되어버린 나에 대한 할머니의 기대를 져 버릴 수 없어, 대구로 가서 재수를 했고 결국 이듬해에 겨우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나는 여러모로 빈틈이 많은 사람이 분명했다. 틈새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력 끝에 대학생활은 큰 시련 없이 보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교사가 부족해 졸업과 동시에 경북에 있는 오지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첫 발령을 받고는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본래 낙천적인 성격 탓으로 놀기만 좋아하는 무능력한 소유자였는데, 동반자까지 만나자 더 나태해져 갔다. 편할수록 더 편해지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속성 때문일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듯 안일무사주의자로 전락해 버렸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에 빠져 현재에 안주하려는 행동이 부끄러운 것인지도 몰랐다.언제나 그렇듯 폭풍이 한번 휘몰아친 뒤에서야 사람은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 당시 승진이라는 목표는 안중에도 없었다. 저만치 동기들은 앞서가고 형체가 사라질 쯤 되어서야 그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출발점 행동이 늦을수록 몇 갑절의 노력이 있어야 따라갈 수 있지 않겠는가. 탐욕만 가득한 이기주의자에 대한 형벌은 가혹했다. 제일 먼저 건강이 부도를 맞았다. 할 수 없이 한쪽을 포기하고 가족을 데리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바람이 몰아치는 땅으로 신기루를 좇았다가 가족을 지키고, 건강을 되찾고, 폭풍 속을 참고 견디며 인생 곳곳의 고비사막을 넘었다. 고통이 늘 상처로만 남는 것은 아닌 법, 때에 따라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면 인내심 강한 지도자로 거듭나기도 하는 것 같다. 인고의 길을 묵묵히 견디다 보니, 오아시스처럼 '교직의 꽃'이라는 자리에 앉게도 되었다.느지막이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건강이 돌아오고 가족이 다시 보였다. 요즘은 토끼 같은 손자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도 솔솔 하고, 혼자만의 시간엔 수필이라는 벗이 곁에 있어 좋다. 이 친구는 내 영혼을 살찌우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신실한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다. 만약에 내 마음에 틈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알토란같은 청년시절, 오락에 빠지고 학업에 소홀해서 오늘의 내가 존재했을까 의문부호가 남는다. 내 삶의 크고 작은 보람들이 마음의 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오래 전에 '맨발의 효자 기봉이'란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기봉이는 선천성 지적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노모를 극진히 모시고 자기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비록 틈이 많은 바보였으나 결국에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다. 우리 속담에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C작가의 '바보 존'이란 저서에 보면 "바보처럼 꿈꾸고, 바보처럼 상상하며, 바보처럼 모험하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현대처럼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바보처럼 꿈꾸고, 생각하는 것도 오늘을 사는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오히려 바보가 길 잃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날에는 학습능력이 탁월한 인재들에게 주로 기회가 주어졌다면, 요즘에는 점점 '꿈꾸는 현명한 바보'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빼어난 천재가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노력하는 바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틈이 꼭 부족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 뿐 만이 아니라, 집이나 건물에도 틈이 있어야 햇살과 공기가 잘 통한다. 옛 속담에 '물이 너무 맑아도 고기가 모여들지 않는다.'고 했다. 틈이 있어야 관계 속에서도 타인이 들어 갈 여지가 있고, 이미 있는 사람도 편안하게 할 것이 아닌가. 또한 틈이란 사람사이의 소통창구이기도 하다. 굳이 틈을 가리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열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빈틈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고향집 대청마루에 앉아 다시 틈새들을 바라본다. 삶 속의 틈들이 허점이 아니라 여유이기도 한 것을 왜 그리도 몰랐을까. 조급한 마음에 오늘처럼 작은 것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져 본 적이 그 언제였던가. 작은 틈이 큰 것들을 내려놓고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한다.앞으로는 내 마음의 문을 좀 더 열어 작은 틈만큼이라도 더 넉넉한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나는 결코 빈틈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틈이 있는 본연의 모습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 더욱 알찬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메워가고 싶다. 고향집 대청마루의 틈이 오늘은 선지자의 숲처럼 유난히 깊어만 보인다.

2019-08-07 18:23:38

김현숙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반딧불이 한의원/김 현 숙  

노령이라는 고비 길을 힘겹게 오를 무렵,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뾰족한 칼로 도려내 고춧가루를 뿌린 듯 통증은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관절염이었다. 어린 시절 체기가 있으면 어머니는 손끝으로 피를 모아 바늘로 따주곤 했다. 그 순간적인 바늘의 지나감도 아픔으로 느낄 만큼 통증에 약한 내게 퇴행성관절염은 견디기 힘들었다.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나는 참 무심한 딸이었다는 걸 관절염 통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셨는데 연골주사 맞는 게 치료의 전부였다. 밤새 아프다고 끙끙 앓으면 나는 마지못해 파스를 한 아름 사다 드리거나 진통제를 내미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아파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게 관절염 통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내가 산후통으로 힘들어할 때 어머니는 밤을 새우셨다. 수건에 찬물과 더운물을 번갈아 적셔가며 이마에 올려주고는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그때는 단지 어머니 성격이 극성스러워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진단을 받기 위해 유명 정형외과에 갔을 때 긴 소파에 기대어 누워있는 노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성냥개비처럼 마른 몸에 그마저도 다리가 아닌 의자에 체중을 부대끼고 있었다. 고령화는 그렇게 병원마다 노인들의 무거운 삶을 보여주었다. 환자들은 야윈 손에 번호표 한 장 달랑 쥐고 물리치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마치 명절 때, 서울역에서 고향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섰던 인파 같았다. 매일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면서 통증과 싸우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통증을 낫게 해줄 치료를 고대하며 노인들은 기다림을 반복했다. 나 또한 그 속에 끼어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기다림에 지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정형외과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대책 없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정류장 건너편 빌딩 모퉁이에 '반딧불이 한의원'이란 조각 무늬가 눈에 박혔다. 난 무엇에 홀린 듯 한의원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한의원은 3층에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을 디뎠다. 돌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무릎이 비명을 질러댔다.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은 다양한 물리치료기구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스스로 기구를 사용하다 보니 지루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어떤 치료기구 앞에서는 서로 하겠다고 다투는 분도 있었다."어서 오세요. 우리 한의원은 처음이시죠?"간호사가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억지로 짓는 미소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친절이었다. 난 괜스레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한 줄기 훈훈한 온기가 나의 목마름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협소하지만 안락한 침대에 눕자 정확한 전기치료기와 찜질팩이 아픈 부위를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간호사의 손길도 따스했다. 곧 의사의 침술이 시작되었다."관절염은 그 연골부위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혈관에 침을 놓습니다. 그래야 혈관과 신경이 원활하게 소통되면서 통증의 원인이 잡힙니다. 다음 단계는 주변 근육이 튼튼해지도록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단순한 치료가 아닌, 의사의 처방에 맞게 환자도 노력해야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의사는 강조했다.내 몸에 침이 꽂히는 순간, 깊은 후회가 몰려들었다. 그때 나는 왜 어머니를 한의원에 모시지 못했을까. 침 한번 맞게 해드리지 못한 불효가 무릎이 아닌 가슴의 통증으로 몰려왔다. 어머니는 관속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무릎을 펴지 못했다. 통증 때문에 똑바로 눕지 못하고 항상 새우잠을 잤던 어머니 무릎은 그렇게 영영 굳어버렸고 마지막까지 펴지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직전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네 병은 내가 가지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아라."그때 난 암과 투병 중이었지만 어머니께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생명의 꽃불이 꺼져가는 순간까지 불치병을 앓고 있는 딸을 위해 두 손을 모으셨다. 요즘 부쩍, 어머니가 그립다. 어버이날 어머니를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반딧불이의 발광체는 짝짓기를 위한 원초적인 사랑의 신호이다. 또 하나는 위험한 적이 공격할 때 동료를 구하기 위한 희생의 불씨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깊은 나락에 떨어지는 순간까지 딸을 위해 반딧불이의 불씨가 되어주었다. '반딧불이'란 단어가 눈에 쏙 들어온 건 어쩌면 어머니의 인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무릎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걷기가 훨씬 자유로워졌다.그날 정형외과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나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되새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떠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내 가슴속에 파랗게 살아 계신다.

2019-08-07 18:23:27

민병숙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초원의 빛/민병숙

낙엽 진 산등성이의 풍경이 눈을 시리게 한다. 낙엽을 다 떨어내고 쨍한 하늘은 적적한 겨울 숲에 불붙는 듯한 석양이 천천히 붉은 자락을 펴고 있다. 노을보다 붉은 고추가 가득했던 밭에는 끝물 고추만이 빛 바란 추억처럼 서걱대고,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주목은 노을 속에 붉다.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풍성하면 풍성한 그대로, 그 누구도 붓질하지 않은 쓸쓸한 계절의 그림이다. 초겨울이 그려내는 그림 속으로 남편과 산책을 나섰다. 남편은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불필요한 세포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에서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옮겨진 그의 핏기 없는 얼굴은 쇠하고 물기까지 말라버린 노인이었다.공기 좋은 시골 생활이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 나는 항암치료를 마친 남편을 설득해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 남편의 건강에 대한 염려로 시작한 무거운 마음과 그래도 반쪽짜리라도 전원생활이란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으로, 철딱서니 없는 여편네처럼 좋은 맘도 있었다. 남편은 부모님의 각별한 기대로 중, 고, 대학교를 서울로 진학해 학업을 마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의 일을 도운 누나 덕에 자신만 편히 공부했다는 부담감이 있었다.월남에서 군대 생활을 한 그가 결혼 후 형편이 어려운 누나의 빚을 정리해 주는 걸로 시작해 몇 년 후엔 가게가 달린 작은집을 마련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해 주었다. 그 일로 인해 결혼해서 몇 년 동안 그 집에 얹혀있는 융자금을 갚느라, 남편의 월급봉투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세월도 있었지만, 남편은 내게 형제간의 우애라며 이해시켰다.병가를 내고 일 년을 쉬었던 그가 후배를 상사로 모셔야 했을 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직장에서 받았을 스트레스도 책임져야 할 가족들을 생각해서 자존심을 누르고 눌렀을 것이다. 캐나다에 사는 언니의 초청으로 이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표를 던지고 싶었던 남편의 생각과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시어른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북에 고향을 둔 시아버님은 6.25 때도 헤어지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 와 헤어져 산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표면적 이유와 장남이란 굴레였다."세상에 지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장남이 어디 있나."장남이란 사실을 다시 깨닫기 위해 장남이란 너울을 뒤집어쓰는 자위였다.그러나 막냇동생에게 서준 보증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도저히 더이상은 우애라는 말로 미화해서 생각할 수 없었다. 내게도 인내의 한계였다. 싸우고 또 싸우면서 이혼을 생각했다. 그때가 우리 부부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였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잘 참고 넘어간 인내 또한 내겐 대견한 일이기도 하다.명예퇴직을 종용하던 회사 분위기에 밀려 하던 일과 상관없는 부서로 밀려나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킴으로 그곳에서 정년을 맞았다. 퇴직 후 시작한 사업 또한 새로운 장비가 들어올 때면 자금문제로 나는 화를 냈고 사업을 접으라는 잔소리를 되새김질하듯, 끊임없이 했었으니 남편은 직장에서나, 사업을 할 때나 편치 않았을 것이다.어쩌면 나 때문에, 또는 자식이나 부모, 형제로 인한 이유가 그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들어앉아 그의 건강에 구멍을 숭숭 뚫었을 것이다.황금빛 벼 이삭이 찰랑대던 빈 들녘이 초겨울 바람에 쓸쓸하다. 기계에 의해 말끔하게 잘려나가 벼 밑동만 남아 있는 사이로 드문드문 우렁이껍질이 보였다. 제법 튼실하게 살아냈을 살구 알 만한 우렁이껍질을 주워들고 보는데 괜스레 내가 서러워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의 절정기엔 열심히 논바닥을 헤엄쳐 다니면서 잡초를 제거하는 임무에 충실했을 것이고, 새끼를 낳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손에 들린 우렁이 껍데기를 힘주어 꼭 쥐었다. 자신의 희생 없이는 어떠한 생명도 잉태하고 가꿔낼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준 성스러움이었다.새끼에게 온몸을 먹이로 내어주고 사라져 간 우렁이.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다 건강에 과부하가 걸린 남자.홀쭉해진 볼. 얇아진 등판,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았던 젊음도, 단단했던 육신의 버팀목도 이젠 다 어디로 갔을까. 열심히, 소리 없이 달려온 그에게 나는 평생을 무임승차하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젊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당연함이, 건강을 잃은 남편을 마주한 오늘에 나를 아프게 한다.추수가 끝난 논밭 사이로 난 길을 꼬불꼬불 돌아드니 논바닥에서 이삭을 줍던 까치들이 발작 소리에 놀란 듯 푸드득 날갯짓을 하더니 그대로 다시 앉아 지푸라기를 헤집으며 이삭을 줍는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삭을 줍는 까치와 같이 남편과 나도 인생의 이삭을 찾고 있는 시간인지 모른다.남편의 시선을 따라 산등성이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열심히 살았기에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이 순결한 의식처럼 장엄하다.'우리의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네. 초원의 빛이요. 꽃의 영광이요.'청춘의 아름다움과 덧없을 노래한 초원의 빛이 계속 떠올랐다.마을 길에는 유모차를 밀고 가는 할머니의 동그랗게 굽은 등 위로 짙은 산그늘이 내려앉는다.

2019-08-07 18:23:17

윤진모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나의 로망/윤진모

"아이고, 우리 아가야-."아내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한 말이었다. 전날 술을 과음하여 엎치락뒤치락하다 잠을 설친 아침이었다. 우리 집에 아기가 어디 있나. 잠결이었지만 아내가 이상해 보였다.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을 어린애 취급을 하다니.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때문에 되물으면 "말할 때 좀 귀담아들어요."라고 야단이다. 낮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고 말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잘 들리지 않아 못 알아듣는 걸 자꾸 책잡으면 어떡하란 말인가. 이참에 청각 장애 등급이나 한번 받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용하다는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아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의사의 진단이다.아내는 최근에 와서 걸핏하면 잘 잊어버린다. 정말 잊어주었으면 하는 건 좀체 잊지 않는다. 내가 예전에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서 변명하듯 막말한 말은 끝마디까지 줄줄 외고 있다. 기억력의 천재인 양 되풀이할 땐 진절머리가 난다."당신이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수십 년 지난 지금 그걸 어찌 다 알아낼 수 있는가. 말은커녕 상황조차 까마득하게 사라진 처지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좋은 것만 기억하면 어디 몸에 병이라도 날까. 걸핏하면 예전의 일을 끄집어내어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렇다고 젊을 때처럼 밤새도록 술이나 퍼마실 배짱이 없으니 아내의 재방송하는 말을 오른쪽 귀로 듣고 왼쪽 귀로 흘려들을 수밖에…….이젠 이러니저러니하고 말하기 싫다. 아내가 외출하고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다. 이게 어디 한두 번인가. 같이 늙어가면서 다투어야 봐야 이로울 게 없다. 단순히 선별형 건망증 정도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모른 척해버린다."열쇠 어디 있어요?"내게 맡기지 않은 열쇠를 찾는다고 야단이다.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가방을 뒤진다. 이곳저곳 호주머니에 손이 들락거린다. 제발 좀 같은 데 놔두라고 해도 잘 듣지 않는다. 괜히 걱정이 앞선다. 저러다 나들이라도 갔다가 집을 못 찾아오는 것은 아닐지. 아들과 손자들을 아버지라 부르고 나를 아가라 부르지 말란 법이 있을까. 다른 사람 앞에서 나더러 "우리 집 아기는요."라 부르면 어떡하지.결혼식을 올린 후 부모와 함께 살았다. 한집에 살면서 아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오랫동안 서먹하게 지냈다. 가까이 가서 소매를 끌어당기거나 눈짓으로 의사를 표시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 쉽고 흔한 "여보" 소리가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별다른 호칭 없이 지냈다. 꼭 불러야 할 경우엔 가톨릭 세례명을 대신했으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새벽 미사에 간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녀의 휴대폰이 거실 탁자 위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 있다. 어디를 갈 땐 가지고 다니라고 누차 이야기해도 잘 듣지 않는다. 허리가 아파 자주 병원에 다니는 사람이 혹시 길거리에 넘어져 다치지는 않았을까. 길을 건너다 무슨 사고라도 생겼으면 어떡해. 연락할 방법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진즉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서너 시간 뒤 아내가 목욕탕에 다녀왔다며 나타났다. 엊저녁 식사할 때 내일 새벽 미사 마친 후, 목욕하고 온다고 말했다니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언제부터 그런지는 모른다. 미사 때 집전 사제가 하는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아 아내에게 다시 물어 확인한다. 영화를 봐도 등장인물이 주고받은 대사가 귓가에 잠시 머물다 저만치 물러나기도 한다. 인터넷을 뒤져 눈으로 확인해야 제대로 스토리를 이해하는 때도 있다. 밥을 먹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여기 왜 왔지?' 하며 돌아서는 경우도 생긴다. 아내더러 잘 잊어버린다고 나무라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나.아내가 무엇을 잘 잊어버리듯이 내가 그 꼴이다. 흔히들 치매에 걸리면 끝장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멈춤이다.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면서 새롭게 출발하라는 신호가 아닐까. 아내에게서 아가 소리를 들어도 좋다. 제대로 아기 노릇 한번 해 보면 어떠하리. 무엇이 두려우랴. 노망(老妄)은 또 다른 이름의 로망이다.그녀와 처음 수성못을 한 바퀴 돌 때였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별 하나가 내려와 사뿐사뿐 춤을 추다 내 품에 안겼다. 물이 출렁거리고 내 가슴은 울렁거렸다. 구차스럽게 무슨 긴말이 필요하랴.간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 아내가 내뱉는 "아가." 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집을 찾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아가야, 아가야."하는 소리만 귓가에서 맴돌고 있다.

2019-08-07 18:23:08

장기성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코뚜레/장기성 

올봄 첫 안개가 앞개울 냇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조약돌 틈새 살얼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만물을 깨운다.초등학교 다닐 때다. 동네 남정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송아지 코청을 뚫는 코뚜레 의식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 놈이 태어난 지 채 한 돌 남짓 되지 않는 무렵이다. 코뚜레는 소의 콧구멍 사이에 구멍을 내고 나무 고리를 끼우는 일이 아니던가. 앳된 송아지에게 이 의식은 살아생전 처음 겪는 폭력이요 모욕이기도 했으리니. 멀찌감치 떨어져 물끄러미 지켜보던 어미는 아픈 기억을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모가지를 아래위로 흔들어대며 두 뿔로 소죽통에 들이 받길 반복했다. 모성애의 처절한 통한이었다.어린 나는 애잔한 광경에 놀란 나머지 흙담벼락 옹벽 뒤에 몸을 숨긴 채 순간순간 오싹함과 낯설음에 빠져 넋을 잃고 말았다. 누렁소를 대하는 사람의 무례함과 오만함을 탓하면서 말이다. 코뚜레는 자유로부터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간악한 의례가 아니던가. 이름뿐인 명목상 코뚜레가 아니라 한 영혼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이 숨어 있었으니.오늘이 바로 그 장날이다. 그 송아지가 시집가는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상상은 빗나갈수록 좋으련만. 어설프게 코뚜레를 콧잔등에 걸친 송아지가 보기에도 어쭙잖고 안쓰럽다. 왕방울처럼 큰 눈엔 눈곱이 끼었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남은 곳엔 똥 딱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외양간 우리에서 그 놈을 끌어내자 연신 뒷걸음질을 하더니 이내 어미 품속으로 기어들길 거듭했다. 소이까리를 바싹 잡아채고 우리 밖으로 끌어내면 낼수록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쳤고 여린 코언저리엔 선홍빛 망울이 흘러내려 코뚜레를 흠뻑 적셨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에 부쳤다.육감으로 자식과 작별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어미의 눈가엔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작달비를 쏟아냈다. 회귀할 수 없는 상실감은 가슴을 흔들고 심장을 멈추게 한다더니 무안하고 민망함이 앞섰다. 어미는 대여섯 날 남짓 동안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더니, 자식냄새가 배인 쪽빛하늘을 향해 거친 괴성만을 질러 댔다.유년시절 때다. 그해 봄은 동짓달 바람처럼 차갑고 매서웠다. 바람이 거세게 불 때 마다 감나무 우듬지에 꽈리를 튼 까치집이 위태롭게 흔들렸고, 연초록 잎새가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나무 가지에 이내 얼어 붙어버렸다.꽃가마가 우리 집 마당 댓돌위에 도착하여 새색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신부가 시댁으로 떠나는 신행 날이다. 네 명의 가마꾼도 서운함이 묻어난 듯 흐릿한 창공을 향해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고, 꽃가마 꼭대기엔 호랑이 가죽 호피를 걸쳐 놓았다. 가마 안쪽을 힐끗 쳐다보니, 꽃가마 속에는 숯과 목화씨를 바닥에 뿌려놓았고 그 위엔 꽃무늬 방석을 깔아놓았다. 왼쪽 구석에는 요강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오른쪽에는 종이를 꼬아 묶은 조각들이 작은 광주리에 가지런히 담겨있다.누이가 타고 갈 자리다.누이는 연지곤지로 곱게 단장한 채, 빈 벽 쪽을 연신 멍하니 쳐다봤다.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초조함과 서러움이 느닷없이 찾아와 추억이 널브러져 있는 안방 이곳저곳을 뒹굴었다. 새색시의 수줍음이 입가에 벙긋 감도는가 싶더니, 이내 눈가에 맺힌 이슬이 연지곤지를 얼룩덜룩하게 수놓아버렸다. 새색시의 단아함은 일순간 온데간데없어지고, 어제의 내 누이로 또다시 바꿔놓았다.골목에는 네댓 명의 일꾼들이 색시의 옷가지며 세간살이를 지게위에 실은 채, 지겟작대기를 비스듬히 세워놓고 망중한에 빠져들었다. 누이가 안방에서 마당 쪽으로 걸어 나오자, 허공을 향했던 눈동자들이 순간 가마 쪽으로 팽팽히 에워쌌다.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막 할 즈음 어머니가 보이질 않는다. 아뿔싸. 차마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보느니 현장부재를 택한 것이 분명하였다. 이런 작별의 순간을 감당하기에는 어미의 심장이 너무 작은 탓이었다.냇가 어귀로 물동이를 이고 진작 나서 버렸다. 작별인사 한 마디조차 딸에게 꺼내기도 듣고 싶지도 않았을 게다. 그 옛날 자신이 시집올 때를 되뇌면서 말이다. 어미가 넋 놓은 채 길러 올린 물동이 속엔 애련과 가련이 쌍둥이처럼 떠다니며 유영했고, 가슴엔 딸에 대한 애처로움과 처량함이 속속들이 파고들었으리라. 새색시가 신행 가는 고갯길은 예나지금이나 무엇이 다르랴. 곧 생이별이요 고행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우연찮게 연전에 사제 서품식에 참석했다. 맨바닥에 몸을 대고 납작하게 엎드린 애송이 사제의 등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니 목덜미에 가래톳이 돋았다. 마주 포갠 손등에 이마를 대고 다리를 곧게 뻗은 모습이 더는 낮아질 수 없는 처연한 자세였고, 저렇게 까지란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다.사제가 되는 길은 사막을 걷는 낙타와 무엇이 다르랴. 신품성사를 받기 전 신앙 고백을 할 때에는 순명을 맹세하지 않던가. 사제의 순명은 곧 복종과 순종의 다른 이름이었다.불쑥 코뚜레와 가마가 생각났다. 코뚜레와 가마는 그저 속박과 복종만을 주는 게 아니었다. 자만과 아집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숙과 조화에 이르려는 통과의례요, 더 많은 자유의지를 얻으려는 거룩하고 장엄한 의식이었다. 발효과정이요 정제과정의 다른 이름으로 말이다.올봄 첫 안개가 앞개울 냇가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햇살을 피해 도망치듯 사라져갔다. 내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설익은 코뚜레와 가마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들이 일순간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 버렸다.

2019-08-07 18:22:53

조순환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용산방죽/조 순 환

고향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튼지도 올해로 50년째다 강산이 5번이나 변했을 세월이니 그곳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더구나 부모 형제도 만날 길이 없는데,사는 것이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니 지난 것들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고향에서 살았던 기억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그리워진다 잊히는 게 아니라 더 선명해진다 가만히 손가락을 세어보고 깜짝 놀랐다잠시 머물렀던 객지에서 어느새 50년째 살고 있지 않은가?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것도 닿을 수 없는 인연에 대한 그리움은 오죽할까? 미음 속에 너무 깊이 박혀 제거할 수가 없고 온몸에 배어 지울 수도 없다 용산 방죽은 그런 그리움이 발원하는 곳이다 고향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제방에 올라가 확 트인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조상하고 친구들과의 추억을 더듬는다 방죽 상류 쪽은 서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여귀산이 전망대처럼 솟아있다 청명한 가을에는 산봉우리에서 바다 끝에 제주도가 보인다고 했다우리들은 수없이 여귀산에 올라가 수평선 끝에 걸터앉은 그 섬을 본 적이 있으나 정말 제주도인지 알 길이 없다 신비한 전설의 섬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풍란과 동백나무 군락지를 감고 흐르는 계곡물이 모여 못을 이룬다 사시사철 맑고 차가운 샛 물이 넘치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내가 그곳에서 초. 중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와 형제들이 모두 모여 살았다위로 누나 둘은 시집을 갔다 큰 누나는 시집살이가 힘이 들었는지 친정에 들어와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동생들을 간수했다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저녁에는 삼십 리 밖 성당에 다녔다 캄캄한 밤에 남자들도 가기 무서운 산길을 누나는 혼자 다녔다'' 도깨비가 많이 나온다는데 어떻게 혼자 다녀?'' 하고 물으면 '' 사탄들이 달려들지만 주 기도문을 외우고 가면 천사들이 양쪽에서 길을 밝혀 준다고 했다 어린 나는 믿음의 힘이 도깨비를 이긴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큰형은 목포에서 자취를 하면서 명문 고등학교에 다녔다 곡식을 가지러 집에 올 때 입고 왔던 검정 교복과 모자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나는 모표가 달린 모자를 수 없이 쓰고 벗기를 반복했다 큰형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 후 여귀산 숲 속에 움막집을 지어놓고 고시공부를 독학했다 가끔 양식을 가지러 산에서 내려왔다 아버지는 포대자루에 곡식을 담아 등에 지워 보내곤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에 산속 오두막집에서 호롱불을 밝히고 혼자 공부하던 큰형이 독학 3년 만에 고시에 합격했다 큰형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편지도 읽지 못하고 남의 눈을 빌려야 했다 평생 그 한이 얼마나 사무쳤을까? 큰형의 고시 합격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들 덕에 지역에서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큰형은 연기했던 병역을 마치고 그 후 서울에서 고위 공무원직에 올랐다 작은형은 읍내 중학교를 다녔지만 공부에 별 취미가 없어 보였다 매일 아버지 몰래 쌀독에서 흰쌀을 훔쳐 아랫 주머니가 터지도록 담고 다니면서 간식으로 먹었다 아버지는 놀기 좋아하는 사고뭉치 작은 아들을 늘 걱정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서울로 가출하고 말았다 그 후 객지물을 먹고 촌티를 벗은 작은형은 얼굴이 하얀 멋쟁이가 되었다 장발을 건들거리며 서울 티를 내고 다녔다 아버지는 가위를 들고 쫓아다녔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밤마다 동네 처녀들을 몰고 마실 다니는 트위스트 춤꾼이 되어 있었다추석명절이 오면 마을마다 청년회에서 주관하는 연극이나 노래자랑 콩쿠르대회가 있었다 형은 특별 손님으로 초대받아 장발을 휘날리며 현란한 트위스트를 선보였다 가끔 공회당에 가설극장이 들어오기도 했다 청춘영화에 엑스트러로 출연하여 트위스트를 추는 형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나는 형이 준 번쩍거리는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며 친구들 앞에서 시간 보기에 바빴다 물가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개구리처럼 퐁당퐁당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친구들이 보인다 눈이 빨갛고 입술은 파랗게 부르텄다바위에 앉아 토닥토닥 그을린 알몸을 말린다 인천에 사는 친구, 수원에 사는 친구, 소식이 끊긴 친구들 모습도 환히 보인다 아버지가 읍내장에서 탱크를 사 왔다고우기는 친구가 있었다 엄마가 밭에서 주워온 별똥 맛이 젤리 맛이라고 허풍을 떠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뻥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우리들은 저녁노을에 얼굴이 붉게 물들 때까지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언젠가 그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다''너, 별똥 진짜 먹어 봤어? 정말 젤리 맛이야? '' 장난감이 아니고 진짜 탱크였어?'' 멋쩍게 웃어넘길 친구들의 표정이 그립다 예전에 내 고향을 가려면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더 걸렸다서울에서 목포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가 목포항에서 배를 갈아타야 했다크고 작은 섬들을 제치고 두 시간 남짓 내려가면 진도 소포리 선착장에 도착한다선착장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 동안 들어가야 하는 섬마을이었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6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워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예나 지금이나 멀기는 마찬가지다요즘은 멀고 깊은 곳일수록 관광객이 더 찾는 모양이다 고향이 발전하는 것이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무슨 심통이 난 건지 모르겠다 숨겨놓은 고향을 남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도 도로는 매끈하게 포장되어 울퉁불퉁한 신작로를 찾아볼 수 없다 무지개를 쫓아가던 푸른 들녘을 토막 내어 매끈한 도로가 새로 생겼다 친구들과 멱감고 고기를 잡던 정겨운 시냇가는 수해방지를 위해 축대를 쌓아 온통 시멘트로 덮어 버렸다 어린 시절 추억들도 그 안에 갇히고 말았다 고향은 찾아가면 언제나 반겨줄 사람 있을 것 같았다 오래전에 고향집을 지키며 혼자 사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찬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방향을 잃고 허둥댔다빈 들녘에 부는 바람처럼 기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더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곳인가? 반겨줄 사람도 없는데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의 내면을 보려는 습성이 생겼다 보잘것없는 작은 들꽃이 화려한 장미보다 아름다울 때가 있다 가녀린 몸에 품고 있는 짙은 들꽃향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진정 아름답다는 것은 잘 생긴 외모가 아니다 다듬어진 인격이요 사람다운 내면의 향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눈과 비, 바람과 햇살을 품고 나를 바라보는 용산 방죽처럼, 어느 날 훌쩍 그 방죽을 찾아가면내가 처음 다져 놓았던 살무새골 아래 명당자리에서 줄낚시를 던질 것이다값비싼 낚싯대는 필요 없다 그때처럼 자새에 감긴 낚싯줄 3개면 충분하다 갓 잡아온 지렁이를 낚시에 끼워 깊은 곳으로 추를 던져야지, 채집망으로 잡은 새우를 미끼로 끼워 붕어를 유혹 해야지,정적을 깨고 방울이 딸랑거리고 초릿대가 휘면 순간적으로 챔질을 해야한다 손끝에 전해오는 묵직한 붕어의 손맛, 팽팽한 낚싯줄을 당기면 거울같이 반짝이는 은빛붕어가 뒤척이며 퍼덕일 것이다 어느새 마을 친구들이 올라와 소주병과 초장그릇을 내려 놓는다 고추 몇개 상치 몇잎은 오는길에 남의 밭에서 따왔을 터이다 붕어회의 달콤하고 쫀득한 식감에 군침이 돈다이왕이면 바람 잔잔하고 별빛 달빛이 물결위에 여울지는 저녁이면 더 좋겠다 행여 내가 명당자리로 닦아 놓았던 자리에 낯선 사람이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할까 ?큰 소리로 물어봐야 겠다''여보시오 거기 누구요 ? 내 자리인데...''그 사람이 내게 되 묻는다''나, 이동네 사람인데 어디서 왔소?''방죽이 갸우뚱하며 빤히 쳐다본다 나는 지금 서울에서 살고있다그 자리 그리워 하며 50년째.

2019-08-07 18:22:40

조이섭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나미비아의 풍뎅이/조이섭

나미비아의 풍뎅이는 새벽에 물구나무를 선다. 나미브 사막에 안개가 걷히면 풍뎅이는 바람이 부는 쪽을 향해 아슬아슬하게 거꾸로 선다. 사막의 모래에 달구어진 복사열은 등껍질 위에 이슬을 머금는다. 맺힌 물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나미비아의 풍뎅이는 그 이슬로 목을 축이고 살아간다.풍뎅이가 물을 얻기 위한 노력은 빈 가지 끝에 매달린 바람처럼 처절하다. 이슬이 맺혀 물방울이 굴러 떨어질 때까지 거꾸로 선 채 꼼짝달싹하지 않아야 한다. 고독의 밑바닥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생존을 위한 투혼이다. 물구나무를 서서 버티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게 얻은 물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대를 이어가는 생명수이다.풍뎅이 같은 작은 미물도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을 길을 스스로 찾아낸다. 생존에 필요한 물을 얻으려고 엄지손톱만 한 등짝이라도 이용한다. 우리네 가장들도 아침에 눈만 뜨면, 제각기 작은 재주 하나씩 메고 나미비아의 풍뎅이처럼 물을 얻으려고 집을 나선다.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고 자란 산촌을 뒤로하고 낯선 도시에 와서 살아남을 재주를 배워야 했다. 제재소의 일용직 인부 일자리를 구한 아버지는 새벽부터 트럭 짐칸에 집채만큼 가득 실려 온 소나무 원목을 부려야 했다. 소나무는 굵기가 어른 한 아름 되는 것도 있었다. 산판에서 갓 베어온 원목은 적당하게 마를 때까지 공장 마당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두어야 한다. 그때만 해도 지게차 같은 운반기계가 없던 시절이라 사람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기다란 소나무 앞뒤에 굵은 목돗줄을 걸고 목도채를 끼운 다음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어깨에 메었다. 한 손은 어깨에 걸친 목도채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목돗줄을 움켜쥐고 목도꾼이 허리를 펴면 무거운 통나무가 땅바닥에서 한 뼘 정도 떠올랐다. 앞에서 "어이 차, 어이 차." 선소리를 먹이면 뒤에서 후렴구를 외치며 걸음을 떼었다.한여름 뙤약볕 아래 경사진 나뭇더미 위로 올라갈 때는 선소리마저 입안에서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터질 듯한 심장에서 해녀의 숨비 소리를 닮은 투명한 헛바람만 새어 나왔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맹물 같은 땀을 연신 훔쳐보지만,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제자리에서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야 비탈을 한 발짝 올라갈 수 있었다. 수십 년 목도질로 어깨에는 굳은살이 박여 풍뎅이 등짝처럼 되었다.아버지는 가쁜 들숨으로 자식을 키우려는 책임을 마셨고, 날숨으로는 사랑을 가득 내뿜었다. 고단하게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런 속내 한 번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그 시절 가난했던 모든 아버지의 본능이었고 나미비아 사막의 풍뎅이와 같은 보편적인 삶이었다.물구나무서는 일이 어렵고 고되었을 것이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도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 가난의 굴레가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아버지라고 먹고사는 일 외에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이 없었을까. 탈출할 수 없는 다람쥐 쳇바퀴 위에서 노동으로 점철된 삶이 어찌 권태롭지 않았으랴. 하지만, 가슴 속 깊이 갈무리해 둔 사랑의 힘으로 고된 노동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내었다.아버지는 환갑 되는 해에 귀향하여 그리도 소원하던 과수원을 일구기 시작했다. 모래밭이나 다름없는 하천부지에 손가락처럼 가느다란 사과나무 묘목을 심고 한여름 내내 거름을 내려고 산으로 들로 풀을 베러 다녔다. 저장창고를 짓고 우물을 팠다. 손수 만든 족답 양수기 하나로 가뭄에 맞섰다.강산이 한번 변하는 동안 과수원이 성큼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소싯적에 내 과수원을 가져보리라고 결심한 소원을 풀었다면서 막걸릿잔을 기분 좋게 비우며 너털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환한 웃음을 오래 볼 수 없었다. 고된 일을 혼자서 요량하고 감당하느라 당신의 속살이 탈피한 매미껍질처럼 텅 비어 버린 탓이었다.아버지께서는 물구나무를 서는 동안 등껍질 속에 감추어둔 물빛처럼 하늘하늘한 날개를 처음으로 펼치셨다. 깜깜한 밤의 아픔을 녹여내어 만든 한 방울 이슬마저 툭 털어내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셨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사라지고 잊힌 것은 아니다. 사랑의 유전자는 '근(勤)'과 '면(勉)'이라는 이중나선으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오롯이 남아 있으니.

2019-08-07 18:22:25

주영순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무량수전에서 /주 영순

길을 잃은 듯 안양루에 서 있다. 절집은 처마 끝마다 버선코처럼 살짝 들리어져 신비롭다. 운해에 섞여 먼 산은 간 곳 없고 어렴풋이 보이는 낮은 산들이 남실거리는 파도처럼 아련하게 보인다. 우산을 높이 들고 공중에 뜬 기분으로 천천히 돌아선다. 비를 맞는 무량수전의 모습이 음전하다.부석사는 일주문에서 안양루까지 돌계단으로 길이 이어져 있다. 다른 절집처럼 한눈에 사찰 정경이 보이지 않는다. 누각 밑의 계단을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번뇌를 하나씩 버리면 누구나 극락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다 전화 속 힘없던 딸의 음성에 맥없이 주저앉던 날이 떠오른다. 어느 만큼 가다가 절집의 수려한 모습이 펼쳐지고, 단청이 없는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범종루로 들어선다. 시야가 시원해 한숨을 돌린다.사사로운 갈등을 미련 없이 버리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가득 차 있는 번뇌를 어이하겠는가. 맑은 여인으로 살고자 했었다. 못난 짓거릴 많이도 하였다. 뉘우침은 없고 한만 남는 이유는 뭘까. 교만이, 이기심이 옥죄는 걸 왜 모르나.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아홉 개로 되어있는 석단의 마지막 돌계단을 딛는다.딸은 모든 걸 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간다. 아직도 슬픔에 젖어 과거에 사는 이 못난 어미는 딸만도 못하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일까. 의심에 불안을 달고 산다. 백팔개의 돌계단에서 무엇을 내려놓았나. 마음대로 안 되어서 주저앉고 싶던 날들을 다 끌고 올라왔다.마지막 돌계단을 딛고 안양 문으로 들어섰다. 빗줄기 사이로 퇴색된 천년 빛을 휘감은 무량수전이 보인다. 여섯 개의 배흘림기둥이 우뚝 서 형형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홀리듯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조심스럽게 만진다. 습기를 잔뜩 먹어 축축하다. 거칠거칠한 몸을 쓸어내리며 거대한 세월 동안 수고한 노동에 숙연해진다. 쩍쩍 갈라진 골진 주름을, 깊은 몸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배흘림기둥은 통통한 것이 딸애의 배를 닮았다.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쁨이 딸애를 감쌌다. 온갖 수식어를 다 가져와도 모자랄 만큼 신기하고 대견해서 봉긋한 배를 만져보고 또 만졌다. 몇십 년 만에 우리 가정에 쌍둥이 첫 손주들이 나올 거라는 기대에 모두 꿈길을 걸었었다. 배가 막달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양수과다증으로 아기는 물론 산모까지 위태로웠다. 그렇게 아기들을 잃고 이 년 후 이번엔 기필코 아기를 잃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건만 오 개월이 되자 또 실패하였다.울음바다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던 딸이 툭툭 털고 일어났다. 딸애의 의지가 굳어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몸을 추스르고 전화 속 딸의 음성은 차분했다. 나쁜 꿈을 꾼 거라며 다 잊자고 한다. 학교에 다시 나간단다. 건강 잘 챙기시라며 오래오래 살아 힘이 되어달라고 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기는 가슴에 묻고 사는듯하다. 한 번도 이야길 꺼내지 않는다. 배흘림기둥에 손을 얹고 사무치는 마음을 꼭 끌어안는다. 죄 없는 태아들이 이슬처럼 슬어지고, 부모님은 늙지도 않아서 서둘러 가셨다. 누구나 먼지처럼 사라진다는 것에 계속 헤맨다. 거세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걷잡을 수 없는 속울음을 참는다. 세상 빛을 못 보고 간 태아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라며 천천히 배흘림기둥을 쓸어내린다.빗방울을 말없이 바라보다 소조여래좌상이 있는 무량수전 안을 들여다본다. 진흙으로 빚은 몸에 금박을 입힌 아미타부처는 근엄한 모습이다. 아미타부처는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들어 윤회에서 벗어날 때까지 극락세계에 머문다고 한다.정갈한 듯 날아갈 듯 사뿐히 고개를 쳐든 지붕의 추녀가 마음을 흔든다. 안쏠림은 기둥이 건물 안쪽을 향해 쏠리도록 기울여 세우는 독특한 기법이다. 또 귀솟음은 건물 중앙에서 양쪽 끝으로 갈수록 기둥을 점차 높여주는 것이다. 착시효과라지만 기와의 곡선은 춤을 추는듯하다. 비에 젖는 무량수전은 더욱 수려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해준다.무량수전 앞에 부처의 진리를 비추는 석등이 있다. 석등을 천천히 돌며 곱게 핀 꽃을 발견하였다. 연꽃은 돌 속에서 빗물을 머금고 활짝 폈다. 더러운 흙탕물에서도 우아하게 올리는 꽃을 생각한다. 한 송이 연꽃처럼 피어난 무량수전을 바라본다. 어떠한 순간에도 나만의 기품있고 맑은 생을 살 수 있다는 것에 산란하던 마음을 가라앉힌다.절집으로 내려온 구름을 밟는 느낌으로 무량수전의 은은한 향에 취한다. 큰 우산에 부딪는 빗소리에 정취가 더욱 무르익는다. 무량한 자비 속 고요가 내면에 잠재된 그리움이 되어 뭉게뭉게 피어오름을 느낀다. 적멸을 꿈꾸는 절집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08-07 18:22:13

성보경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모란을 그리다/성보경

모란꽃 한 폭이 거실벽면에 피어난다. 녹색과 붉은 색이 대조를 이뤄 우아한 자태를 풍긴다. 그리운 얼굴을 마주한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슴에 한 아름 꽃다발을 안아본다.모란은 목단이라고도 하는데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자주 그린 소재이다. 초록 톱니 잎사귀 무성한 덤불 사이로 진자주색 쟁반만한 꽃 두 송이가 있고, 그 곁에 앙상블로 한 송이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 하나가 다정한 가족처럼 화폭에 담기었다.어머니는 인자했다. 우아하고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다. 꽃처럼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던 당신은 특히 모란을 좋아했다. 봄꽃들이 줄지어 꽃 잔치를 벌인 뒤 신록이 짙어가는 오월 중순이면 뜰 앞 화단에 모란이 피었다. 그때를 기다린 어머니는 마당 모퉁이 그늘에 이젤을 펴고 앉았다. 넉넉하고 화사한 자태를 지닌 꽃을 한참 응시한 후, 희고 고운 손으로 붓을 들었다.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어머니는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뛰어난 두뇌와 재능으로 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직을 오랫동안 맡았다.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한평생 신앙에 의지해 살았다. 찬양대 독창자로 활약할 만큼 음악적 재능도 뛰어났다. 인품도 좋아서 모두가 우러러보며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나는 스무 여섯 살에 객지로 나와 약장사 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주변에 도움의 손길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난생 처음 사업을 벌이니 백무가관이었다. 가난한 농촌오지에서 바깥세상 본데없이 살다가 이일저일 닥치는 대로 치다꺼리 하자니 매사에 천방지축이었다. 삶의 가닥이 잡히기 전, 개업 일 년 만에 서둘러 결혼했다.결혼 당시, 어머니는 갓 마흔둘, 삶이 활짝 핀 꽃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아들 대하듯 친밀하게 반겨주었다. 긴장하며 경계를 하던 마음은 자연 없어지고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당신은 신혼 초부터 곁에서 삶의 길을 이끌어 주었다. 생모(生母)는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나 성장기 내내 모정에 목말라 살았다. 그러다보니 장모님을 만나 스물일곱 어린애가 되었다. 먼저 가신 어머니의 화신처럼 여겨져 나도 모르게 스스럼없이 대하게 되었다.첫 아이를 키울 때였다. 갓난 것이 밤낮을 모르고 울어 내가 잠을 설치고 짜증을 부리면 옆방에서 자던 어머니가 놀라 달려와 애기를 업어 밤을 지새웠다. 장사로 바쁜 딸과 사위를 대신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손자 셋을 키워낸 건 오롯이 당신의 힘이었다. 젊은 혈기로 허튼짓 하며 바깥을 나돌 때는 성경을 펼쳐 놓고 나를 기다렸다. 그러한 보살핌이 없었던들 오늘날 내 삶의 둥지가 어찌 온전할 수 있었겠나 싶다.지척에서 내 육신의 건강과 삶을 돌보아 주시던 당신은 93세를 향수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삶의 끝자락 병상에 누워 수척해진 몸으로 말 한마디 못하고 신음할 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 떠나기 이 개월 전 쯤, 어머니는 어지럼증이 심하다며 수혈을 해달라고 했지만 들어주지 못했다. 몇 번 수혈해도 건강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앞선다.아내는 또 밤잠을 설치며 뒤척인다. 가끔씩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떨 땐 하염없이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끼니도 거르기가 일쑤여서 몸이 부쩍 쇠약해져 있다. 어머니와 칠십 여년을 함께 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내 슬픔보다는 한층 더 할 것이다.나는 사람이 왜 이 모양인지, 벌써 지난 일처럼 아련하다. 생전의 모습도 다 잊고 잠도 잘 잔다. 세상 사람들은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낫다 하는데, 사위 자식 길러봐야 낳은 딸에 비길 수 없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아내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이다. 당신의 큰 사랑은 하늘같아서 평생 잊을 수가 없다. 함께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도 많았다. 그때마다 자식처럼 아껴주고 챙겨주던 어머니였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자식, 사위이고 싶다.어머니가 남긴 모란꽃이 그윽이 나를 내려다본다. 상단에 남긴 「壽, 福, 貴, 和, 吉祥」 다섯 글귀가 내게 전하고픈 염원이었을까. 다 못 갚은 은혜와 사랑은 당신의 딸에게 쏟겠다고 맹서한다. 초록잎사귀 너머에서 모란이 환하게 웃는다. "자네만 믿네." 은은한 목소리가 꽃잎을 돌아 내게로 전해진다.

2019-08-07 18:22:01

[포토뉴스] 경복궁 근정전 내부, 일반에 첫 공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조선 법궁(法宮) 경복궁 중심건물이자 궁궐건축 정수로 평가되는 국보 제223호 근정전(勤政殿)의 내부 시범 특별관람을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한 달 간 매주 수∼토요일에 두 차례씩 진행한다고 7일 밝혔다. 근정전 천장 모습. 근정전 어좌 모습.

2019-08-07 18:14:02

[영상] 국립대구과학관 누적 관람객 400만 명 돌파

https://youtu.be/nU2DTV36u8Yㅣ영상 안성완 asw0727@imaeil.com국립대구과학관이 지난 6일 누적 관람객 400만 명을 돌파했다. 개관한 지 5년 8개월여 만이다. 2013년 12월 24일 개관 후 연평균 68만 1천342명, 월 평균 5만 8천191명, 일 평균 2천11명의 관람객이 국립대구과학관을 방문했다.2013년 12월 개관한 국립대구과학관은 2015년 8월 100만 명을 돌파하고, 2017년 1월 200만 명을 돌파했으며, 2018년 6월에 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번 400만 명 돌파는 300만 명 돌파와 비교해 3개월 가량 단축된 것으로 100만씩 돌파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는 개관 후 꾸준히 전시품을 교체하고, 다양한 전시․행사․교육을 진행하며 방문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해 재방문 수요를 창출한 덕분이다.현재 과학관에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 기념 특별전 '우주로의 도전'과 여름 과학문화축제 '한여름의 판타지아'행사가 일평균 8천 9백33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행사에 대한 지역사회의 높은 호응과 여름방학 성수기 시즌에 힘입어 400만 관람객 돌파시기를 앞당겼다.국립대구과학관은 2개의 상설전시관과 아이플레이관(영유아 전용 체험관), 천체투영관, 4D 영상관, 무한상상실, 숙박형 교육 시설인 천지인학당 등 실내 전시․교육 시설과, 과학놀이터, 야외 과학마당 전통과학전시품 등 야외 체험 전시․놀이시설로 구성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계절별 과학 문화축제, 과학 문화공연, 공모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관람객의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먼저 지역주민의 일‧가정 양립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공동직장어린이집을 2020년 상반기 개원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어 관람객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정문을 개설하고 주차장을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또한, 어린이과학관을 2020년 말 완공을 목표로 준비 중이며, 2021년엔 자동차 발달 역사부터 미래 자동차 모습을 보고 체험해볼 수 있는 미래형자동차 전시관을 오픈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3년간 야외 과학마당에 전시품을 대폭 확충하여 방문객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몸으로 과학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김주한 국립대구과학관장은 "국립대구과학관은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복합 과학‧문화‧여가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관람객이 과학관에 자주 방문하여 유익한 여가활동을 즐기면서 과학자에 대한 꿈을 키우고 과학기술이 열어갈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한편, 국립대구과학관은 400만 관람객 돌파를 기념하여 다양한 축하 이벤트를 진행했다. 과학관은 400만 번째 입장 관람객에게 전통시장 상품권과 꽃다발을 선물했다. 또한 400만 관람객 돌파를 관람객들과 함께 축하하고자 돌림판 이벤트를 진행해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이 외에도 8월 6일부터 11일까지 과학관 공식 SNS를 활용한 온라인 이벤트인 '400만 관람객 돌파 기념 댓글 남기기'를 진행한다. 온라인 이벤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관 공식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08-07 17:58:22

보이지 않는 국가들

[서평] 보이지 않는 국가들/ 조슈아 키팅 지음/ 오수원 옮김/ 예문아카이브 펴냄

"시진핑 주석과 장시간 나눈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한국이 실제로 오랫동안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가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회담을 마친 후 말한 내용이다. 깜짝 놀란 트럼프 참모들이 나서서 황급히 이 발언을 수습했다.현재 세계지도가 표면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깊이 요동치고 있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 민족, 국민의 개념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이 책은 지구상에서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의 지정학적 배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 무슨 까닭으로 변화없이 유지돼왔는지, 그흐름 속에서 일부 국가와 민족은 터전을 잡지 못하고 떠도는지, 이 같은 상황이 앞으로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탐색한다. 저널리스트이자 국제 외교·정책 분석 전문가인 지은이가 두 발로 직접 찾아다니며 취재한 결과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펼쳐내고 있다. ◆국가와 국경은 누가 결정?오늘날 세계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진실은 우리가 이 지구상의 광활한 땅덩어리 어디에 있건 간에 상관 없이 특정 국가 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각국들 사이에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공인된 국가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동등한 정치체제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지구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그 나라에 태어났던 훗날 귀화했든 특정 국가의 국민으로 정의된다.국가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정부, 영토, 국민이다. 하지만 국가를 갖췄는데도 주권을 행사 못하는 나라들도 있다. 다른 국가들이 인정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제적 인정을 받은 나라인데도 그 국민들은 난민이 되어 전세계를 표류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나라가 버젓이 UN이나 FIFA 회원국으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독립된 국가의 존재 여부는 국가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또 국경선도 세계열강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수 십년 동안 전세계 국경이 표시된 세계지도는 러시아에 의한 크림반도 합병이나 동티모르의 독립과 같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현재의 정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신생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소수의 세계열강들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경선을 유지하는 데에만 일치단결해 힘을 합치고 있다. ◆지도상에 안 보이는 국가들국가를 형성해 있으면서 지도상에는 보이지 않는 국가들도 있다. 압하지야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분리주의 소수민족 거주지다. 국제사회가 통상적으로 조지아의 영토라고 인식하는 곳이다.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으로 지정받았지만 독립을 요구하다 유혈내전으로 자치의 막을 내렸다.아크웨사스네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지대에 걸쳐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 성격의 정치체다. 아크웨사스네의 모호크족 공동체는 종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라는 체제에 가두려는 미국과 캐나다 정부에 대항해 독립영토를 확보하고 근근이 생존하고 있다.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 북부의 반(半)자치 지역이다. 공항에서는 소말릴란드 국기가 나부끼고 제복을 입은 세관 직원이 비자를 검사한다. 또 소말릴란드 번호판이 달린 택시가가 달린다. 소말릴란드는 오히려 소말리아보다 더 국가다운 곳인데도 국제사회는 여전히 소말리아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쿠르드 자치구라 불리는 이라크령 쿠르디스탄은 국민, 영토, 정부를 갖추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독립을 통해 중동 지도를 다시 그리려는 시도가 계속되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키리바시는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UN 회원국이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로서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에 정치적 파국이 임박한 나라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국가 밖의 국가들억지로 확립된 세계지도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국가 밖의 국가'도 있다. 실례로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는 가톨릭 단체 몰타기사단을 들 수 있다. 몰타기사단은 전세계 1만3천명의 회원이 속해 있으며 직원과 자원봉사자들만 10만명이 넘는다. 수도회 및 자선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는 몰타기사단은 국기도 있고 국새도 있다. 하지만 국가는 아니지만 국제법 아래에서 주권을 유지하고 있는 조직이다. 다른 국가들과 실제로 외교관계를 맺고 106곳 UN 회원국의 인정을 받고 있다.또 국가 밖의 국가로 에스토니아의 전자 시민권 프로그램도 있다. 에스토니아는 2014년 10월 외국인에게 에스토니아 시민과 동일한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시민권을 준다고 최초로 발표했다. 전자 시민이 되면 기업 설립, 계약서 서명, 은행계좌 개설, 지불, 세금 납부 등 사업에 필요한 온갖 법적 문제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전자매체로 처리할 수 있다.유고슬라비아의 주인 없는 땅에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하려는 몽상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대담한 기획도 있다. 리버랜드자유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자유시장 유토피아 정치 실험체다. 예들리치카는 2015년 4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의 강둑 4.4㎢ 넓이의 영토에 신생국가 설립을 선포했다. 시민권은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고 지금까지 4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했다고 한다. 344쪽 1만6천원.

2019-08-07 17:50:12

집에 가야지

[책 체크] 집에 가야지/ 이순우 지음/ 북랜드 펴냄

아동 문학가이자 소설가인 원로작가 이순우가 첫 번째 단편소설집 '집에 가야지'를 펴냈다. 지은이가 1992년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한 후 30여 년 동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여러 문예지에 발표했던 작품들 중 23편을 엄선해 묶은 것이다.이 책에는 6·25 전쟁이라는 우리 민족의 비극 속에서 기필코 살아남아 어머니에게로 귀향을 꿈구는 한 병사의 희망을 그린 표제작 '집에 가야지'를 비롯해 이산가족의 슬픔을 그린 '아버지의 귀향', 전쟁 미망인의 할머니 인생을 그린 '할머니의 아리랑' 등 전후시대 비극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또 40년간 교편을 잡으면서 교육의 현주소를 비판한 '애들아 사랑한다' '교편이 사라지는 교실' '사은회' 등은 물론 도시화와 노인문제, 장애우 복지 등을 다룬 작품도 실려있다.지은이는 "작품을 쓸 때마다 타버린 잿더미를 헤치며 사리를 찾는 마음으로 인간성 회복에 천착했다"며 "다시는 우리 후손들에게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00쪽 1만5천원.

2019-08-07 17:28:16

늙은 제철소

[책 체크] 늙은 제철소/ 신춘희 지음/ 동학사 펴냄

'이 따스함, 이것은/ 신의 심장인가// 가이없는 죽음도/ 깃들어 있어서// 우주의, 혈관을 쥔 것 같다/ 신성하다/ 숨소리.'-신춘희 시조 '달걀'금방 낳은 달걀을 보고 생명의 신성함, 보호본능이 느껴지는 연약함, 우주의 숨소리까지 들릴 듯한 깨끗하고 다스한 생명의 근원에 대한 감정들을 세련되게 노래하고 있다.지은이 신춘희 시인은 매일신문 신춘문예(1980년 시조, 1982년 동시, 1983년 시 당선)로 등단해 1985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도 했다. 시집에는 '풀잎의 노래'(2006), '득음을 꿈꾸며'(2010), '중년의 물소리'(2012) 등이 있다.이 시조집에는 4부로 나눠 '알바트로스의 죽음' '달항아리' '물망초에게' '귀뚜라미' 등 우리 시대 삶의 고통과 수난을 환기시켜주는 자전적 시조 60여 편이 숨쉬고 있다.그의 시조는 기층민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 빛보다 어움의 편에 더 애정을 갖고 있고, 리얼리스트로 보이지만 표현면에서 대단히 모던하다는 평가다. 99쪽 8천원.

2019-08-07 17:28:00

이경숙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어머니의 숟가락 /이경숙

우묵하게 패인 안쪽, 달덩이 하나 떴다오래전 나만의 식탁에서 유목의 초원까지숟가락 하나가 떠올렸던 무수한 달들을 헤아리며후후 숨결을 불어넣어주던 어머니 삶에서 살을 덜어내고 미음이 남아있다불룩하게 부푼 뒤쪽, 거꾸로 들어선 내가 있다최초의 숟가락을 물고따뜻한 모음을 받아 삼킨 입술이삶과 죽음의 경계라면턱받이를 한 어머니의 숟가락은 삽 스스로는 한 술 뜰 힘도 없는 어머니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무수히 들락거린 입속으로 마지막 미음이 들어가고손이 떨리고 숟가락이 떨어지고, 우묵한 안쪽, 그믐이다불룩한 뒤쪽, 상처투성이다 오늘은 엎어놓지 말라던 저 삽으로 무덤을 파고죽은 자의 밥상 위에 얹어놓았다 오래전 암사동 신석기 시대 주거지에서 흙숟가락이 나왔다멀리 몽골 초원 무덤에선 청동숟가락이 나왔다닦아도 닦아도 놋숟가락의 녹은 사라지지 않고오늘밤에도 저 달덩이는 얼룩덜룩 울고

2019-08-07 17:26:42

이영란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끝을 만진다/이영란

촉감은 모든 것들의끝을 만진다눈 부릅뜨고 끝을 수습하는 방식에는마지막 결기가 뭉쳐있다인식된 지문처럼 자유로운손 끝. 나뭇가지들의 관절은 셀 수 없지만그 섬세한 손끝으로흩어진 구름을 깁는 것을 본다이음새도 보이지 않는 구름의 휘장 사이로길게 수직으로 떨어지던 실의 줄기들을 본다방울을 튀기면 끝으로 만진다더듬고 구부리고 토닥거린다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기형의 손가락들이 많다는 뜻이다 꽃은 해묵은 등걸을 버리고새로 돋는 가지의 선단부에서 핀다활강하는 현을 운지법으로 바느질하는사람의 타오르는 손끝,열 개의 경혈이 문제를 읽고 해석한다.세상의 끝, 그 촉감들이내 손가락으로 들어온다그때마다 마감하는 날짜들을 센다세고 남은 날짜들은 곰곰이 녹여먹거나기침으로 흘려보낸다 나뭇가지들이 동그랗게 공 굴리는 열매들손끝에서 모아지는 소실점들의 끝을 만지면어긋난 약속이거나 놓친 순간들이 느껴진다어느 손끝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끝이어서 따갑고 시리지만따끔, 그 끝에서 꽃 핀다

2019-08-07 17:26:22

박은순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비의 집/ 박은순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신창행 전철을 기다리고 서 있다갑자기 불어난 빗물이 내게로 몰려온다도망치듯 전동차에 타고 문이 닫힌다나를 놓친 그 빗물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겠지젖은 바짓단을 접어 올리다가구두 속을 흥건히 채운 빗물을 본다생이 아프고 축축하다고 쏟아낸 사람들의 눈물이 저렇게 돌아오고 있을까비는 점점 더 세게 내린다내가 미처 닦아주지 못한 너의 눈물과네가 닦아주지 못한 내 눈물이젖은 몸을 섞고 있다몰래 울어도 이렇게 줄줄이 들키고 마는 것오늘 밤내 몸 가장 낮은 곳에 와 있는 너를 위해나는 비의 집이 되었다

2019-08-07 17:26:11

한해윤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스쿠터가 돌아오는 저녁 / 한해윤

전동스쿠터와 물아일체가 된 저 노인온몸을 맡겼으므로 추동推動의 힘을 주는스쿠터는 그에게 신흥종교다오늘도 이사 오기 전 50년을 살았던 동네로헬멧을 쓰고 신나게 달린다오종종 햇살이 비켜서고 쌀쌀한 바람도 갈라서면부웅붕, 소리가 말줄임표를 남기고이쪽의 고요와 저쪽의 생기에흔한 말다툼도 다정해진다일체 변명이 없는 낡은 바퀴는생존도 놀이도 아닌 사소한 일상을 지탱하는노인의 비장한 신앙이다들키지 않으려는 마지막 날숨처럼 의지할 건스스로의 체온뿐이라며 등받이에 기댄의존명사 같은 노인,아들 때문에 담보 잡힌 소문들이1.5평 월세방까지 이주해 왔지만믿음이란 자잘한 균열까지도의심하지 않아야 한다며 아무런 세상에라도속하고 싶어 주문을 왼다앞에서 보면 시시한 주름살이자만뒷면에 숨겨진 일몰의 스크래치들이현란한 색채로 매듭짓는 저녁맨홀 뚜껑과 보도블록 틈 사이로 여러 번 접힌민들레가 땅 속 한기를 밀어 올린다자신도 모르는 사이 교주가 되어버린 낡은 스쿠터,브레이크등을 따라 산란散亂되는누추의 바람을 가르며 돌아오고 있다

2019-08-07 17:25:59

류인목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그네 /류인목

놀이터가 왁자하다 평평한 일상이 흔들리는 순간 '와'하는 소리와 함께 꿈의 조각들이 터져 나온다수평은 지루하다 높고 낮고 둥글고 흔들림이 있는 세상 하늘로 하늘로 몸을 밀어 올릴 수 있는 곳 그네는 높이 더 높이 꿈을 나른다 하늘이 점점 가까워진다 생동하는 꿈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싱그럽다땅이 출렁이고 하늘이 어지러이 돈다 아스라한 하늘, 하늘을 향해 날던 꿈의 조각들이 땅에 내리자마자 흩어진다 모두 떠난 놀이터 그네는 공허하다허공이 집인 그네 바람이 사방을 헤집고 다니는 집은 편히 쉴 곳이 없다 가까이 있는 땅은 내려설 수 없는 하늘만큼 먼 곳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삶이다볕이 고운 한낮, 낡은 그네는 땅에 내려앉은 제 그림자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2019-08-07 17:25:50

노기정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사과와 벌레의 함수관계/노기정

꼼지락거리는 저, 물컹한 것 속에는대체 어떤 집요함이 있어출구가 없는 여기까지 온 걸까 벌레가 사과 한 알을 먹어 치우기 위해선치열하게 세상을 녹일 기세로 덤벼야 한다뭉텅한 입은 심장을 겨냥하고느려터진 발은 시간을 정조준 해야 한다조용히, 고양이 발자국보다 더숨죽이며 조금씩 오랫동안 전진해야 한다 식탁위에서 사과는 속수무책 쪼그라들어이리저리 구르며 애물단지가 된다이번 생은 벌레를 안고 늙어가는 것도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과도를 들이대다가 문득, 가슴 저린다내 속에서 스멀대는 것들한때 목숨처럼 나를 파먹던 기억이헐렁해진 힘줄을 팽팽하게 당긴다

2019-08-07 17:25:39

김효정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골목의 생존 방식/ 김효정

산기슭의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촘촘한 구멍들이 층층이 계단을 오르는 마을*멀리서 보면, 작은 구멍들이 어떻게 통하는지골목은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지만가까이 끌어당겨 보면, 골목은 구멍들을 이어주는 숨길이고구멍은 숨을 저장하는 숨통이다숨길을 터가는 골목의 물밑 작업은 그래서, 치밀하다한 골목이 다 자라면 계단을 만들고또 한 골목이 가득 채워지면 또다시 계단을 오르는계단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구멍으로 연결되어실핏줄처럼 퍼진 골목들이 막힘없이 흐른다 앞집은 뒷집을 가리지 않아 그늘이 자라지 않고뒷집은 앞집으로 내려오지 않아 노을도 공평하다낮에는 햇볕 버무려 구멍마다 발라놓고밤이면 별빛 달빛이 내려와 빈 마당에 수를 놓다졸린 눈꺼풀 끔벅이며 집으로 돌아가면소리들로 붐비던 담벼락도 그제야 잠이 든다지쳐 잠든 새벽을 다독이던 솔솔바람은동우네 강아지 낳은 이야기 구멍마다 흘리면서늦잠 자는 아침을 깨우고, 빠끔한 얼굴로 구멍을빠져나온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단숨에그 많은 골목을 날아서 학교에 갈 것만 같다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표정들이 한 호흡으로 모여어깨를 맞대고 이마를 맞대고 생각을 맞댄 골목들이것은 오늘이 어제를 위해 숨길을 트는 방식이다*감천문화마을 :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내2로 203번지 일대

2019-08-07 17:25:29

김진수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범종/김진수

저보다 더 큰 입이 어디에 있으랴! 하늘로 향하면 욕심이 커질까 당초문 치맛단 아래 없는 듯 숨기고 세계를 품는다.저물녘, 새벽에 풀어 놓았던 것을 불러드려 다시 품는다. 밤새 품은 세계가 소리가 되는한밤중, 귀 기울이면 생황, 수공후* 소리 들리는 듯 들리지 않아 요사채 문고리는 몇 번이고 달그락거렸다. 새벽녘, 밤새 품어 숙성시킨 세계를 풀어 놓는다. 퍼져나가 하늘이 하늘 되고,바람이 바람 되고,새가 새 되어 날갯짓하는하루. 귓전에 맴도는 소리 한 움큼 잡아 맛을 본다.밤새 문밖이 자그락거리더니 저 종도 나와 같이 잠을 설쳤는지 덜 익어 떫다. 새벽을 밟아 달마산** 넘어가야 하는 걸음은 헉헉거리고큰 입 아래 묻혀있는작은 항아리 속에는 소리가 되지 못한 마음만 그득하다. * 범종 몸체에 새겨진 비천상이 연주하는 악기** 전남 해남군에 있는 산. 미황사가 있음

2019-08-07 17:25:16

권수인 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북항/ 권수인

북적거리던 북항이 고요하다벽에 걸린 마지막 달력처럼, 간간이 파도 울음 사이로 꼬리만 남은 겨울이 서표처럼 꽂힌다열리고 닫히는 수많은 페이지모래밭에 찍힌 활자를 물결이 지우고그 틈으로 소리만 드나든다 바다는 겨울의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차마 넘길 수 없다는 듯다 읽지 못한 파도의 호흡을 다시 덮는다 동안거에 들 수 없는 파도는차가운 바람에 머리를 식히며끊임없이 모래밭에 밑줄을 긋는다끝장까지 정독을 하고 나면 또 한해가 바뀔까 저 깊은 수심을 건너수평선을 넘어간 나의 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물수제비를 날린다서너 번 물꽃이 핀다 물살에 떠밀려 마침표로 서 있는저 폐선은 바다의 아픈 손가락이다 갈매기 한 마리 출항을 알리던 낡은 깃대에 앉아먼 하늘을 바라본다북항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2019-08-07 17:25:04

구녹원 씨(본명 구애영)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베들레햄별꽃/ 구녹원

별을 바라보면 종소리가 쩡하고 울린다별이 부딪히는 소리, 귀를 기울이면 꽃 속에선 별이 움직이고 나는 매일 금요일 밤이 된다 천만년이 흐른 별의 기억, 고개를 들면 목젖이 환하게 아파온다 온몸이 당신의 주기를 흉내 내고 있었던 걸까 당신은 흠뻑 스며있다 오래전에 메시지가 차단된 듯 괘도를 버리고 이끼풀과 함께 지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깊게 젖은 땅이 누구의 의지인 것을 알기에 정착을 탓하지 않는다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동안 베들레햄별꽃이 핀 것은빛의 안쪽이 궁금했기 때문물음표의 세계에선 신화가 꿈틀거린다별이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당신에게서 처음 듣는다새벽이면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개밥바라기별이 슬밋, 은빛 생으로 흩어지기 때문맹골수도 노을 너머로 별의 문장이 된 아이들 얼굴에도1분에 400번의 날개 짓을 하는 퍼핀 에게도 별이 머물고 있다안개가 지운 풍경이 다시 안개를 낳듯이그 집은 무럭무럭 자라나어른보다 먼저 아이들 얼굴에 별꽃을 피운다 내 안에 또 하나의 별꽃으로 살고 있는 당신을 바라본다가벼워진다이번엔 당신 안에 살고 있는 나를 볼 차례다

2019-08-07 17:24:52

애플이 새롭게 디자인한 TV 앱 '애플 TV 플러스'가 전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출시됐다고 CNN 등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3월 25일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소재 스티브 잡스 극장의 애플 신제품 발표 행사장에서 이 회사 피터 스턴 부사장이 설명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잡스가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를 못 쓰게 한 이유

몇 년 전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케빈 홀시는 가족한테 너무 소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등 첨단 기기 탓이었다.그는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알려주는 앱을 개발했다. 앱 사용자 수천 명은 하루에 휴대전화를 평균 3시간 가까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깨어 있는 시간 4분의 1을 휴대전화와 함께하는 셈이다. 한 달로 따지면 거의 100시간, 평생으로 치면 11년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그 어떤 일상 행위보다 길다.지나친 스마트폰 사용 등을 의식해 스스로 앱을 내려받은 이들이 이 정도니, 사용 시간에 관심 없는 이들은 더 많은 시간을 쓸 가능성이 크다.2000년 마이크로소프트 캐나다는 평균적인 인간이 집중력을 지속하는 시간이 12초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수치는 2013년 8초로 줄었다.마이크로소프트에 따르면 금붕어가 집중력을 지속하는 시간은 9초로, 금붕어보다 사람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셈이다.마이크로소프트는 청년 2천명에게 컴퓨터 화면의 숫자와 문자에 주의를 집중하게 했더니, 소셜미디어에 시간을 덜 소비하는 청년들이 훨씬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고 밝혔다.애덤 알터 뉴욕대 교수는 신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기술 발달에 따른 새로운 중독의 시대가 시작됐으며, 이로 인해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한다.그는 담배나 약물, 알코올 중독과 같은 '물질 중독'과 달리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이메일, 비디오게임, 온라인쇼핑 등 최근 기술 발달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하는 중독 현상을 '행위 중독'이라고 부른다.2000년대 이전에는 거의 볼 수 없던, 첨단 기기 발달로 인한 중독이다.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은 대상만 다를 뿐 작동 방식이나 원리는 같다.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해 강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단기적으로는 심리적 위안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해롭다. 해로운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절실하게 원한다.그러나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마약 등과 달리 행위 중독 대상은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의 일과 일상생활, 인간관계와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지만, 얼마나 큰 위력을 지녔는지는 제대로 파악되지도 않았다.테크놀로지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판매하는 거부할 수 없도록 고안한 도구가 사용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빠져들게 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했다.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사례를 꼽는다. 누구나 아이패드를 하나씩 가져야 한다면서도 잡스는 자기 자녀들이 절대로 아이패드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잡스뿐만 아니라 다른 첨단 기술 업계 거물들도 자녀에게 비슷한 제약을 가했다.저자는 테크놀로지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공급하는 중독 물질에 절대 취하지 마라'는 마약상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원칙을 따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저자는 "기술이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대중의 대량 소비를 유도하려고 그것을 마구 휘둘러 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책에서 그는 중독 행위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누가 그것을 조장하는지 들여다본다.그는 행위 중독을 낳는 요인으로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목표, 뿌리치기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긍정적인 피드백,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는 느낌,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더 어려워지는 과제, 해소하고 싶지만 풀리지 않는 미결 상태, 강한 인간관계 여섯 가지 요소를 꼽았다.마케팅과 심리학 분야 전문가인 저자는 행위 중독의 뿌리와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현실적인 대안까지 모색한다.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이나 이메일 등을 사용하지 않고 살기란 어렵다. 생활 일부로 자리 잡은 만큼 중독성 강한 체험들과의 공존이 필요하다.알터 교수는 행위 중독이 작동하는 방식을 터득하고 그것을 유익한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그는 "일상생활에서 아주 일부에만 중독성 있는 체험을 허용하고 건전한 행위를 유발하는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대안이라며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부키. 홍지수 옮김. 420쪽. 2만2천원.

2019-08-07 11:39:13

우리음악집단소옥 창단공연.

국악연주단체 소옥 '한여름 오두막에서' 창단공연

대구에서 활동하는 젊은 국악인들로 구성된 우리음악집단소옥(이하 소옥)이 창단공연 '첫 번째 우리집: 한여름 오두막에서'를 12일(월) 오후 8시 대명공연거리에 위치한 꿈꾸는씨어터에 무대를 올린다.이번 무대는 소옥이 꿈꾸는씨어터가 주최하는 상설국악공연 '2019 풍류열전'의 77번째 마당에 직접 기획한 창작작품을 처음 선보인다. 소옥이 결성된 후 1년 만에 창작국악 연주단체로서 음악적 스타일을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소옥(小屋)은 조그마한 집이라는 한자어이다. 첫 번째 집으로 선정한 오두막은 한적한 시골에서 과일을 먹으며 뜨거운 햇볕을 피했던 시원한 장소를 말한다.소옥은 2018년 창단해 한국 전통악기 연주자 4명과 클래식 작곡가 1명 등 총 5명으로 구성된 창작국악 연주단체이다. 소옥은 '음악을 흘려 사람을 본다' 라는 좌우명 아래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현대를 도모하는 '본질을 잃지 않은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하고 있다. 대금은 김윤우, 가야금은 전예원, 생황/피리는 정연준, 아쟁은 김소연, 작곡은 강한뫼이 맡고 있다. 전석 1만원. 사전 예매 10일(토)까지. 문의 010-4926-5153.

2019-08-07 11:15:12

영남풍물패연구소 공연 모습. 영남풍물연구소 제공

영남풍물연구소 20주년 기념 '산 좋고 물 좋고' 공연

영남풍물연구소(대표 한규복)는 20주년 기념공연으로 '산 좋고 물 좋고 얼씨구 좋다'를 17일(토) 오후 7시 봉산문화회관 가온홀에서 개최한다.영남풍물연구소는 1999년 창립된 이래 영남지역의 전통풍물, 사물놀이 등을 계승해 창작하는 전통예술 전문 단체이다. 현재 영남풍물연구소에는 풍물예술단, 청소년 연합풍물패 '청풍', 청소년 연희단 '고리패', 전문타악연희단 '비상'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이번 공연에는 한국종합예술대, 중앙대, 영남대, 목원대 등에서 전통 연희를 전공하는 제자들, 국악고에 다니는 제자들과 영남풍물연구소의 어르신 풍물예술단 바우덕이, 마루 팀, 청소년 연희단 '고리패'가 함께 무대를 꾸미고, 대구 무태농악전승보존회도 동참한다.먼저 서울에서 활동하는 제자들이 연희 '판&쇼(show)를 펼쳐보인다. 문굿, 길놀이, 축원굿, 판굿 등 화려한 퍼포먼스로 전통적인 형식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관객들과 호흡하며 신명을 이끌어내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이어 사물놀이 형태의 신 영남가락이 흥을 돋운다. 경상도 농악의 가락들을 모아 재구성하였으며,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 청도차산 농악에서 사용되는 가락들을 중점으로 재창작화 했다.또 영남풍물연구소의 청소년들이 황해도 지방에서 내려져오는 탈춤인 강령탈춤도 선보인다. 8과장으로 구성된 강령탈춤에서 1과장인 '사자춤'을 선보인다. 사자춤은 원숭이와 2마리 사자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마부가 등장하여 타령, 자진굿거리에 맞춰 추는 춤이다.마지막 무대로 영남의 대표적 풍물인 경상북고 무형문화재 4호 청도차산농악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12가락 36마치로 구성된 청도차산농악은 쇠의 장단에 따라 연차적으로 여러 진법으로 전개되고 율동적인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추는 덥배기 가락의 춤과 민요가 삽입되어 연기되는 것이 특징이다.이날 축하공연으로 대구 경기민요의 명인 이은자 선생과 수하생들이 함께 출연해 경기민요의 노랫가락과 창부탕려, 술타령 등을 선사한다.

2019-08-07 11:13:38

해설이 있는 오페라바캉스가 13일 안동에서 펼쳐진다. 안동시 제공

무더운 여름 날려 줄 '오페라 바캉스'

무더운 여름을 날려 줄 '해설 있는 오페라 바캉스 공연'이 13일 오후 7시 30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백조홀에서 열린다.이번 공연은 재미있는 오페라 아리아와 패기 넘치는 차세대 연주자들의 공연을 청소년과 어린이들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콘서트가이더(해설사)가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특히 모짜르트, 로시니, 베르디, 비제, 푸치니 등 아름다운 아리아와 가야금 연주가 함께하는 오페라와 국악이 합쳐진 신명나는 공연도 펼쳐진다.공연은 해설 손정훈, 소프라노 정승연, 테너 이상규, 바리톤 오유석, 베이스 김대엽, 피아노 전정희가 참여했다. 연주는 지역의 클래식 단체인 아토앙상블과 안동가야금연주단이 맡았다.관람 연령은 5세 이상 전석 5천 원이며 현장예매 혹은 인터넷 예매사이트 티켓링크로 사전예매할 수 있다.기타 공연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안동문화예술의전당(054-840-3600)으로 하면 된다.

2019-08-07 11:08:39

지은이 지정화씨.

다시, 내가 되다/ 지정화 지음/자유문고 펴냄

세 아이의 엄마이자 영어교육 전문가인 지은이가 경험과 공부를 통해 체득한 것을 엮은 책으로 이 땅의 엄마들에게 선물하는 공감과 힐링 스토리이자 엄마 계발 에세이다.평범한 엄마로 생활하던 지은이가 '미친 듯 몰두하는 삶'을 선택해서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고, '다시 내가 된' 내용을 담고 있다. ◇ 엄마가 되는 순간, 얻고 잃는 것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엄마'가 되는 순간, 그녀에게 요구되는 삶은 그 이전과 180도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엄마'의 역할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면서 주체적 존재로서 '나'는 설자리가 대단히 좁아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누구 엄마, 누구의 부인, 누구의 며느리…… 점점 외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의미가 부여된다.누구의 무엇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는 누구이고,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나의 존재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이 책은 세 아이를 키우는 지은이가 엄마로서 경험과 20여 년 동안 비전교육과 영어교육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정리한 것으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꾸고, 주체적 존재가 되고 행복한 삶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 자식이 받아온 상장이 엄마의 훈장? 오늘도 많은 엄마들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자식들을 보살피느라 바쁘다. 먹이고 입히고, 학교와 학원에 태워 나르고,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정보를 수집하고, 전문가와 상담하고, 그렇게 애써 취득한 내용을 자식에게 접목시키려 노력한다.많은 엄마들은 아이들을 명문대학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취직 시키는 것으로 자신이 빛나는 성취를 이룩했다고 생각한다. 자식의 성취가 곧 자신의 성취라고 믿기에 엄마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닌다.불철주야 뛰어다닌다고 해서 모든 엄마들이 '빛나는 자식'이라는 훈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일부만이 '훈장'을 받을 뿐이다. 어쨌거나 아이를 빛나게 키우는 데 성공한 엄마들은 자신의 인생도 빛난다고 생각한다.정말 그럴까?남편들은 자식을 빛나게 키운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런 아내를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성취를 이룩한 자식이 자랑스러울 뿐, 아내가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편들과 사회는 자식을 잘 키워낸 아내나 여성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여성을 더 높이 평가한다. 철든 남자들은 '사랑스러운 여성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랑스러운 여성을 사랑한다.' 자식이 학교에서 받아온 상장보다 아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아온 훈장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 아이만 쳐다보는 엄마와 죄책감 엄마지은이가 교육현장에서 만난 엄마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첫째는 전업맘으로 답답하리만치 아이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엄마들이다.둘째는 워킹맘으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자식들을 잘 보살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들이다.지은이는 이런 엄마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들의 생각과 엄마들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간다. 즉 엄마에게는 엄마만의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이 책 1장에는 엄마가 된 그녀들과 울고 웃으며 공감하고, 육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나누며 힐링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2장에서는 얼떨결에 학원장이 된 평범한 엄마가 점차 사업가로 자리를 잡아 가면서 독서를 통해 성장한 과정을 소개한다.3장에서는 많은 엄마들이 아직도 눈앞의 결과에 집착하는 모습에 대해 교육전문가의 시각으로 해결책을 모색한다. 4장에서는 부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소개하고, 가정에서 필요한 엄마의 경영 리더십을 소개한다. 5장에서는 엄마들이 다시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주문한다. ◇ 엄마 역할 못지않게 스스로에게 집중을책은 '엄마 역할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고 느끼는 엄마들에게 자극제이자 든든한 응원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엄마들에게 전하는 '엄마 성장 가이드 북'이라고 할 수 있겠다.책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엄마들에게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믿음과 방법을 제시하며 맺는다.240쪽, 1만4천800원

2019-08-06 17:14:12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연경동 화암(畵巖)

고문헌에 전해오는 대구를 대표하는 두 개의 바위 중, 삿갓바위로 불렸던 입암(笠巖)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지난번 글에서 다루었다. 이번에는 사라질 뻔했던 대구의 대표 바위 연경동 화암(畵巖·그림바위)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매암 이숙량은 1567년에 작성한 연경서원 '기'(記)에서 화암과 연경서원 일대의 조화로운 풍광을 시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전략) 연경서원 북쪽은 성도산(成道山)이다. 산봉우리가 나지막하고 골짜기가 고요하다. 서쪽으로 흰 돌과 푸른 솔이 언뜻 언뜻 이어지다 천 길이나 깎아지른 듯 큰 바위에 이르니 이것이 화암이다. 우뚝 솟은 붉고 푸른 절벽의 기이함이 그림과도 같아 화암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화암 아래 깊고 맑은 푸른 물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노닐고 있어 연경서원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한편 '대구읍지' '제영'(題詠) 편에 소개된 퇴계 이황의 한시인 '연경화암'(硏經畵巖)에서도 화암과 연경서원이 소개되고 있다.畵巖形勝畵難成(화암형승화난성) 화암의 좋은 경치 그리기도 어렵네立院相招誦六經(입원상초송육경) 서원을 세우고 서로 모여 육경을 배우리라從此聞佇明道術(종차문저명도술) 이제 도술을 밝혀가며 듣게 될 테니可無呼寐得群醒(가무호매득군성) 능히 몽매한 자 깨우치지 못하겠는가시에서도 언급했듯이 퇴계 이황은 '화암의 멋진 경치를 그리기조차도 어렵다'고 하였다.연경서원 근처에 있다고 고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화암은 동화천변에 위치하는 강가 바위 절벽인 하식애(河蝕崖)다. 바위 하부는 약간 붉은 빛을 띠는 사암층과 세일층으로 되어 있고, 상부는 역암층으로 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여 년 전 호수에서 형성된 퇴적암이다. 화암을 이루어 놓은 퇴적암은 대구 분지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과 같은 종류다.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팔공산이 흰 빛깔의 밝고 수려한 외양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화암은 다소 짙은 빛깔을 나타낸다. 이처럼 짙은 빛깔의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화암은 암석의 구조적 특성과 기묘한 외양으로 인하여 신비감을 더해 준다. 풍화작용으로 역암층에 박혀 있던 둥근 돌이 빠져나간 자리의 모습이 벌집을 닮았다 하여 벌집바위로 불리는 타포니(tafoni)와 상부의 돌출 부위로 인한 기묘한 형상이 화암을 예로부터 특이하고도 신비롭게 인식하게 하는 원인으로 판단된다.화암은 그 앞을 흐르는 동화천과 더불어 수려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한때는 산악인들의 암벽 훈련 등반지로 이용됐을 뿐만 아니라 왕복 2차로 도로에 접해 있어 차량에서 배출되는 매연으로 많이 변색되었다. 더군다나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곳곳에 사람의 이름이 페인트나 조각 도구로 새겨져 있어 안타깝다. 화암 옆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연경서원은 대구지역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서원으로 의미가 크다.현재도 연경동 일대에서 진행 중인 대구 4차 순환도로 공사와 대규모 아파트 공사는 화암과 일대 동화천 풍광의 근본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고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대구에 마지막 남은 바위 화암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동화천에 대한 보존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겠다. 아울러 연경서원 터에 대한 정밀 조사와 발굴 및 복원이 이루어져 교육도시로서의 대구 자존심과 품격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2019-08-06 11: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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