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오토라는 남자’ 리뷰

‘오토’라는 남자 통해 들여다 본
희노애락 가득한 우리네 인생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한 장면.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한 장면.

세상을 떠나고 싶다. 예의 없는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이 세상이 싫다. 무엇보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천장에 로프를 고정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고 세상을 버리려는 순간, 밖이 시끄럽다. 옆집에 누가 이사 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주차 실력이 엉망이다. 동네 '꼰대'의 오지랖이 발동된다. 그래, 이것만 해결하고 다시 시도하자.

'오토라는 남자'(감독 마크 포스터)는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영화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 '오베라는 남자'를 미국 배경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오토(톰 행크스)는 매사에 불만이 많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웃들, 정확하지 않은 쇼핑몰의 가격표, 함부로 세워둔 자전거…. 매일 동네 순찰을 돌며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가 이렇게 된 데는 아내 소냐(레이첼 켈러)가 먼저 세상을 떠난 빈자리가 컸기 때문이다. 자기를 이해하고 믿어주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낙이 사라졌다. 꽃을 사서 아내의 무덤에서 혼잣말을 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 이제 아내 곁으로 가고 싶다. 그런데 그때마다 문을 두드리는 이웃이 있다. 새로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뇨)의 가족이다. 귀찮고 성가시지만, 남을 도우는 특유의 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엮인다. 그러면서 차츰 까칠했던 그의 가슴이 열린다.

스웨덴의 무명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을 일약 스타작가로 발돋움하게 해준 '오베라는 남자'는 작가의 고향 스웨덴에서 2016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북유럽 특유의 눈 내리는 날씨와 오베라는 괴팍한 노인의 사연이 어우러져 감동을 줬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한 장면.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한 장면.

미국 버전 '오토라는 남자'는 원작에 충실하면서 명배우 톰 행크스의 이미지가 더해져 더욱 가슴이 따스해진다. 연기 인생 43년을 맞는 톰 행크스는 원작의 오베와 닮아 보인다. 투덜대면서도 기꺼이 손을 내밀고, 아이들과 동네 길고양이에게도 친절한 동네 할아버지 연기가 그 인물 자체다.

오토의 캐릭터가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한 사람의 인생역정, 희노애락을 통해 우리 삶을 들여 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에는 회한과 아픔이 있고, 또 한 가닥 희망과 흥분도 있었다. 사랑에 가슴 벅찬 순간도 있었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어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영화는 물 흘러가듯 변해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위로와 공감으로 감싸 안는다.

오토는 아내 소냐를 잃은 뒤 흑백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 "소냐는 컬러였지. 그녀를 잃은 뒤 내 삶은 다시 흑백으로 돌아갔어." 그녀의 숨결, 다정한 눈빛, 따뜻한 손길이 그의 삶을 아름다운 컬러로 채색했다.

오로지 소냐 밖에 몰랐던 그가, 마리솔 가족의 등장으로 서서히 색깔이 입혀진다. 엉성한 마리솔의 남편 때문에 오토가 해야 할 일이 늘었다.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마리솔에게 운전 연습을 시키고, 각종 공구와 사다리를 빌려주고, 손주 같은 두 아이도 돌본다. 길고양이도 챙기고, 집에서 쫓겨난 소냐의 제자도 거둬들이면서 그의 삶이 다시 빛이 난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한 장면.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한 장면.

영화는 오토가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삶의 애착과 위안을 느끼는 휴먼 드라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오토를 통해 잘 보여준다. 삶의 공허함을 채우는 것은 결국 그들과의 관계이다.

오토에겐 철두철미한 면이 있었다. 옆집 친구가 포드차를 타다 일제차로 바꿔도 그는 한 브랜드만 고집한다. 고집불통이 아니라 신념이다. 동성애나 이민자에 대한 편견도 없다. 그는 다 함께 살아가는 기본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런 오토의 이미지가 톰 행크스에 녹아들어 더욱 공감되는 영화다. 톰 행크스는 연기뿐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해 이 영화가 지금 시대에 필요한 미덕을 심어주는 영화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의 막내아들 트루먼 행크스까지 젊은 오토역을 맡겨 출연시키기도 했다.

마리솔을 맡은 멕시코 배우 마리아나 트레비뇨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투덜대는 오토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면서 잡다한 수다로 오토의 차가운 가슴을 녹인다. 마리솔의 아이들도 귀여운 행동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전해준다.

'오토라는 남자'는 종합선물세트같은 영화다. 삶이 버겁다고 느끼거나, 공허하거나, 외롭거나, 또 희망과 빛이 필요한 이들 모두에게 삶의 달콤함을 선사한다. 29일 개봉 예정. 126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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