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쇠구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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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대구에서 상전벽해라 해도 될 만큼 크게 바뀐 곳 중 한 곳은 대구삼성창조캠퍼스 주변이다. 칠성동, 침산동, 고성동은 1990년대까지 소규모 공장들이 즐비한 동네였다. 이곳을 지나면 쇳내가 코를 자극하곤 했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의 놀이 도구 중에는 쇠구슬이 있었다. 구슬을 이용한 여러 놀이가 가능했지만 단연 인기는 구슬치기였다. 높은 적중률이 놀이의 승패를 좌우하는 구슬치기인 만큼 손가락 힘 조절이 중요했다.

그런데 구슬치기의 최상위 포식자는 단연 쇠구슬이었다. 쇠구슬에 맞은 유리구슬에는 쩍쩍 금이 갔다. 어디서 이런 희귀물을 구해 오나 했는데 문방구에서 파는 게 아니었다. '베어링'이었다. 기계 부품 사이에서 윤활 역할을 하는 구형(球形)의 작은 부품이다. 기계의 원활한 회전을 위한 필수 부품으로 어떤 것들은 구슬 크기와 비슷했다.

이질적인 것들도 부드럽게 이어 주는 베어링은 태생이 '연결'이다. 협업의 상징과도 같은 부품이다. 그런 베어링이 화물연대 파업에 '쇠구슬 테러'라는 위협적인 이름으로 소개됐다. 공격 용도로 쓰였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차주들을 위협하는 데 쓰였다. 쇠구슬에 화물차 유리창이 깨지면서 튄 파편이 파업 불참 화물차주의 목에 상처를 입혔다. 격발 도구 사용이 의심된다고 한다.

쇠구슬 테러의 기저에는 정의 실현이란 신념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파업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함께 외치는 구호에 동조하지 않은 것을 집단에 대한 해악으로 판단한 것이다. 파업 불참자를 같은 조건에서 화물차를 모는 동료가 아닌 의롭지 못한 적(敵)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쇠구슬 테러는 불의(不義)에 대한 응징인 것이다. 이전에 있은 파업에서도 쇠구슬과 돌덩이를 투척한 건 물론 화물차 브레이크 호스 뽑기 등으로 차주를 위협한 이력이 있었다고 한다. 파업의 시작부터 폭력의 씨앗이 잉태돼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생을 위협한 이들과 어울려 일하는 건 쉽지 않다. 파업이 매듭지어져도 내부 갈등이 지속되리라 짐작하는 이유다. 이번 파업을 통상의 파업과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할지 의문이다. 파괴적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쇠구슬 테러 범인을 반드시 찾아내 사법 처리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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