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IMF 외환위기 후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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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1996년 6월 나는 A대학교 내 농협에서 2천만 원을 2만3천 달러로 바꿨다. 유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1997년 11월 환율이 달러당 1천900원으로 폭등했다. 나보다 1년 늦게 미국에 온 한국 학생들은 수업료를 나누어서 냈다. 이것이 IMF 외환위기의 시작이다. 2001년 8월 IMF 외환위기가 공식적으로 끝났다. 2007년 나는 대학교수가 됐다. 당시 장학생을 선정하기 위해 신입생들의 신상(身上) 기록을 보았다. 이 학생들은 열 살 즈음 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학생들 중 다수는 부모가 이혼해서 할아버지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개인적으로 IMF 외환위기의 후과(後果)를 확인했다.

우리나라에는 '1% 법칙'이 있다.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씩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법칙은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는다. 어느 정파가 집권하든 꾸준하게(?)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1% 법칙'의 시작은 IMF 외환위기이다. 5년 단위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계산해 보면, 1991~1995년 10%, 1996~2000년 6.4%, 2001~2005년 5.5%, 2006~2010년 4.8%, 2011~2015년 3.2%, 2016~2020년 2.2%이다. 이 법칙이 맞는다면 향후 경제성장률은 2021~2025년 1%대, 2026~2030년 0%대가 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저출산의 시작도 IMF 외환위기이다. 연간 출생아 수는 1996년 70만 명이, 2001년 60만 명이 무너졌다. 2005년에는 43만 명으로 저점(低點)을 찍었다. 1996~2005년 연간 출생아 수는 38% 감소했다. 출산과 상관성이 높은 결혼 건수도 추세가 비슷하다. 연간 결혼 건수는 1996년 43만 건으로 정점(頂點)을 찍은 후 계속 감소해서 2005년 31만 건을 기록했다. 10년 사이 연간 결혼 건수가 28% 감소했다. 최근 통계청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성의 경우 결혼을 꺼리는 이유가 결혼자금 부족 35.4%, 고용 불안정 13.4%이다. 현재도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생존 문제에 직면했다. 그 후부터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사라졌다. 기업가정신은 불확실한 이윤을 추구하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야성적 충동이 없는 사람은 지대(rent)를 좇기 마련이다. 기업가정신이 사라진 나라에는 파이(pie)를 만드는 사람이 없다. 주어진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만 있다. 어느 나라든 전성기가 지나면 과학이나 기술보다는 예술이나 문학에 관심을 두고, 소비가 생산을 대체한다. 전반적으로 사회가 일에서 오락으로, 절약에서 과소비로 이동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현상이 너무 빨리 나타났다. 경제가 조로(早老)했다.

1992년, 2001년, 2008년 대학수학능력시험(학력고사) 자연계 상위 5등급 학과를 살펴보자. 학과 선택은 미래 직업을 결정하는 것이니, 이를 보면 사람들의 직업관, 위험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다. 1992년에는 30개 학과 중에서 의약학과가 4개였으나 2002년에는 47개 학과 중 의약학과가 24개이다. 급기야 2008년 모든 대학교의 의약학과가 5등급 내로 진입했다. 이후 상황은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잘 안다. 의사나 약사의 소득은 면허(license)에서 나온다. 이들 소득의 대부분은 지대이다.

지금의 30, 40대는 어린 나이에 IMF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어릴 때 경험은 평생 지속된다. 살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트라우마(trauma)로 작용한다. 'IMF 세대'가 앞으로 30년 동안 우리나라를 끌고 간다. 나 같은 586은 머지않아 퇴장한다. 나는 'IMF 세대'에게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라는 '꼰대' 같은 말을 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것을 좇으라고 충고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다. 'IMF 세대'에게는 야성적 충동이 없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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