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봄비는 행인이, 가을 달은 도둑이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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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예천 회룡포마을에는 '뿅뿅다리'라는 구조물이 있다. 1997년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 뚫린 철제 구조물을 다리 용도로 깔아둔 것이다. 이전까지 이용하던 외나무다리가 수해에 취약해서였다. 콘크리트 교각으로 준설하면 수해 걱정도 덜 텐데 한심한 행정이라 탓할 수만도 없다. 회룡포의 모래톱이 국가 지정 명승이라서다. 불편해도 주민들이 참는 이유다. 운치 있고 친환경적이니 좋지 않냐고 주장하는 건 폭력이다.

대구 가천잠수교 인근 '금호강 사색 있는 산책로' 건설 공사가 암초에 부딪혔다. 강변 좌안 폭 1m 오솔길을 대신해 폭 2m짜리 산책로로 만들려던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매호천까지 이어지는, 금호강을 바투 보며 걷는 구간이다. 그러나 공사를 발주한 수성구청은 콘크리트 길을 포기했다. 마사토를 군데군데 덮어 길을 평탄하게 하는 수준에서 공사를 마치기로 한 것이다. 환경단체의 반대가 컸던 탓이다.

환경단체는 산책로 신설이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여러 식생이 상당히 파괴되고, 야생동물 이동에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고 했다. 야간 통행과 불빛이 늘어 야생동물의 서식과 이동을 교란할 것이라 주장했다. 한마디로 야생동물이 살기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존을 주장한 자연 상태의 오솔길은 풀이 무성해, 시골에서 살아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뱀 나오기 딱 좋다. 그래서 "자연 상태와 친밀도가 높은 재래식 화장실에서도 변 처리에 무리가 없었는데 쓸데없이 돈을 들여 물도 많이 사용되는 양변기를 설치한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말이다"로 들린다. 이런 식이면 개발할 곳이 없다.

수변공간 개조와 환경 개선은 대개 시민 편의에서 출발한다. 매호천, 팔거천, 동화천 등이 가까운 예다. 시민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걸어보면 안다. 수변식물들과 하천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데다 아이들도 걷기 편하다. 자연 상태 그대로 뒀다면 이런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목재 데크, 자연석 설치 등에 콘크리트 타설은 필수다. 환경단체가 생태계 파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원래 동식물의 것이었는데 인간이 침범한 것으로 본다. 이를 두고 생태계 질서가 무너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18년 달성군청이 낙동강 수상 탐방로를 설치하려 했을 때도 환경단체는 극렬히 반대했다. 천혜의 자원인 화원유원지 화원동산 하식애 앞으로 탐방로가 생기면 생태계 오염은 물론 자연재해에 취약해진다고 주장했다. 강물의 흐름상 집중호우 때 불어난 강물이 탐방로를 치고, 휩쓸려 온 덤불이 탐방로 교각에 엉키면서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저주에 가까운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탐방로는 화원유원지의 관광 효자다.

무분별한 난개발을 경계하는 건 옳지만 수변 산책로 조성을 난개발로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금호강 사색 있는 산책로'도 마찬가지다. 금호강 폭이 그리 좁지도 않다. 적절한 개발은 사람이 자연을 더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책길은 자연에 쉽게 접근하는 방식을 고민해 열어낸 길이다. 자주 봐야 소중한 걸 알고 더 아끼게 된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노약자와 장애인에게도 접근성을 높이려면 개발은 불가피하다.

명심보감 성심 편에 "봄비가 땅을 기름지게 해 귀하지만 행인은 그 진창을 싫어하고, 가을 달이 밝게 비추지만 도둑은 그 밝게 비치는 것을 싫어한다"라고 했다. 관점이 다른 것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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