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속되는 아파트 관리비 분쟁 왜? 위임 vs 도급 갈등

관리비 분쟁의 출발은 계약성격에 대한 해석 차이…입주민-관리업체 이견 커
법적 판단 위임계약에 쏠리나, ‘아파트 공화국’서 전문적인 관리하려면 ‘도급화’ 주장도

아파트 자료 사진으로 기사와는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아파트 자료 사진으로 기사와는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아파트 관리비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관리비 분쟁은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와 관리업체간 계약이 '위임'인지 '도급'인지 해석이 엇갈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도급은 발주처가 입찰자에게 정해진 금액을 주고 실제 일이 진행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 계약을 뜻한다. 건물의 완공을 목적으로 하는 건설공사 계약이 대표적이다. 위임은 사무의 처리를 맡겨 실제 일에 드는 돈에 따라 비용을 정산하는 계약을 뜻한다. 대표적인 것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계약이다.

아파트 관리계약의 성격에 대해 입대의는 위임계약을, 관리업체는 도급계약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아파트 관리업에 대한 명확한 교통정리가 없다면 현재와 같은 분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법적인 판단은 '위임계약'에 무게

입주민을 비롯한 입대의 측은 아파트 관리계약은 위임계약임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아파트 관리업체 직원이나 경비·청소용역 근로자의 퇴직금, 연차수당 등의 명목으로 걷은 돈이 실제로 지급되지 않으면, 이를 정산해 아파트 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의 법적인 판단은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아파트 관리계약을 위임계약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계약서에 위임을 배제하는 조항, 즉 민법상 위임규정을 준용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아파트 관리계약은 위임으로 본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대구지법은 달성군 한 아파트 입대의가 전 관리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충당금 반환소송에서 "직원에게 퇴직금 지급사유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입대의가 관리업체에 대해 선지급한 퇴직급여 충당금 반환을 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업체 측은 용역대금이 직원 인건비 등 각종 경비를 포함해 도급계약상 보수로 정했기에 실제 지출여부와 무관하게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2021년에도 대구지법이 달서구 한 아파트 관리업체에 8년치 직원 인건비 정산분 약 3억8천만원을 입주민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한 바 있다.

법조계 또한 아파트 관리는 그 성격상 위임계약임이 분명하다는 의견이다.

이상훈 청윤공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아파트 관리를 도급으로 보려면 '일의 완성'이 명확히 정의돼야 한다. 청소용역이라면 특정 반경에서 먼지가 얼마나 나왔는지, 경비용역이라면 도둑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몇회나 막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정하고 이를 만족해야 도급이라고 할 수 있다"며 "대법원 판례를 포함한 다수의 판결이 아파트 관리는 위임계약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관리업체가 사용하지 않은 선급금은 입주민이 돌려받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관리비 분쟁으로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행정당국의 정기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도형 친절한생활연구소장은 "시청이나 구청이 아파트 관리비가 상승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며 "관리업체는 미지급 퇴직금 정산서를 연 1회, 4대보험 납부내역서는 매달 입대의에 보고하고 두 문서를 연 1회 행정기관에 신고하는 제도를 만들 것을 건의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비 자료 사진으로 기사와는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아파트 관리비 자료 사진으로 기사와는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업계 "아파트관리도 산업, '도급계약'으로 봐야"

국내 아파트 거주자는 전체 인구의 70%에 달한다. 아파트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문적인 아파트 관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아파트관리업은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업계는 아파트관리업을 민법에 따른 위임사무가 아닌 상법에 따라 회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급사무로 바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만현 한국주택관리협회장(동우씨엠 대표이사 회장)은 "대량수요에 대한 대량공급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을 산업이라고 정의한다면, 공동주택 관리도 산업으로 봐야 한다"며 "그간 아파트 관리비는 사적자치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공공요금의 성격이 강해 지금까지 하나의 산업으로 규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주택관리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도 백화점이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것처럼 일반적인 공급으로 봐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주택관리회사를 상법상 회사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협회에서도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 관리회사도 다른 기업처럼 매출을 정기적으로 공시하고, 수수료 계약이 아닌 정당한 부가가치세를 내면서 영업하게 된다. 업체간 투명한 경쟁을 통해 관리비가 일부 절감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아파트 관리계약을 도급으로 본 판례도 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지난해 경기 안산시 한 아파트 입대의가 관리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곳 입대의는 "업체와의 계약은 위임계약으로 입대의가 지급한 비용 중 사용하지 않았거나 불필요한 금원 약 4천만원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업체 측은 "이 계약은 일종의 도급계약으로, 입대의가 매월 정해진 일정액을 지급하고 그 범위 내에서 업체가 계약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며 그외의 금전관계는 더이상 정산할 것 없다"고 받아쳤다. 이에 대해 수원지법은 "이 계약은 정산이 요구되는 전형적인 위임계약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입대의 주장을 기각했다.

한국주택관리협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아파트관리업은 과도한 정부 규제를 받으며 산업 성장에 맞는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 부동산경제단체연합회 회원사 중 유독 공동주택관리업만 산업화가 되지 않고 있다"며 "입주민은 정당한 비용을 지출하고 관리업체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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