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희망’을 전하는 봄의 상징,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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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개나리

봄에 피는 꽃 중에서 산수유, 민들레, 개나리, 생강나무, 영춘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른 봄 3월을 샛노란 색으로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꽃들이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추위가 물러나면 따사로운 햇살과 잘 어울리는 노란 개나리는 황금 종을 닮은 꽃물결을 이뤄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가지마다 꽃이 올망졸망 달린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면 작은 종들에서 금세 고운 소리라도 울릴 듯하다. 이맘때 노란 유치원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친구들과 고사리손을 맞잡고 달성공원, 대구수목원, 대학 캠퍼스 등으로 교사의 인솔 아래 줄지어 나들이 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개나리 꽃말은 '희망'이고 군락을 이뤄 자라기 때문에 협동을 상징한다. 이른 봄에 피는 까닭에 '선구자'라는 의미로도 쓰이며 아무 데서나 잘 자라서 끈질긴 생명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대구용계초등학교, 동촌중학교, 청구고등학교 등 대구의 많은 학교에서 교화를 개나리로 정해 놓고 있다.

경상북도 내 학교 10여 곳의 교화 역시 개나리다. 경북 구미시의 경우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으로 첨단전자산업을 선도하는 구미의 무한한 힘을 표현'하는 의미로 시화(市花)를 개나리로 지정했다.

대구 신천 둔치의 개나리
대구 신천 둔치의 개나리

◆봄의 화신(花信) 대명사

봄꽃의 개화 시기를 가늠하는 기준은 달력의 날짜가 아닌 식물의 개체에 하루하루 누적된 온도에 따른다. 따뜻한 날이 지속된 올해는 봄꽃의 북상이 빨라질 것으로 당국에서 예고했다. 며칠 동안 반짝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구 신천의 둔치에는 개나리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기 시작했다.

물푸레나뭇과의 낙엽활엽관목인 개나리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중국, 일본에도 자생하는 개나리가 있지만 한국 개나리만큼 곱지 않다고 한다.

개나리의 학명은 '포시티아 코리아나 나카이'[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로 종소명 코리아나(koreana)는 한국의 특산 식물임을 나타내 준다. 영어로 코리안 포시티아(Korean Forsythia)로 부르거나 '골든벨'(Golden bell), 즉 '황금종'이라는 깜찍한 이름으로 불렸다. 몇 해 전 국립수목원이 광복 70주년 사업의 하나로 '우리 식물 주권 바로잡기' 캠페인을 통해 한글 발음 그대로 적은 'Gaenari'로 영어 이름을 공식화했다.

중국에서는 개나리를 연교(連翹)라고 부르는데 가지가 길게 자라서 꽃을 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새의 긴 꼬리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說)이 있고 의학서 『황제내경』으로 유명한 신화적 인물 황제(黄帝)의 신하이며 천하 명의인 기백(岐伯)의 손녀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한방에서는 개나리 열매를 연교라고 한다. 조선 전기 강희안의 『양화소록』의 「화목구품」에는 연교화 즉 개나리꽃이 가장 낮은 9등급에 들어 있다.

개나리 열매
개나리 열매

◆개나리 이름은 어디서 따왔나

개나리 이름에는 개똥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부잣집과 가난한 집에 시주를 요청하자 인색한 부자는 "우리 집에는 개똥도 없소!"라고 하면서 스님을 내쫓다시피 했지만 가난한 사람은 정성껏 시주를 했다. 이에 스님은 짚으로 둥글게 엮어 곡식을 담는 둥구미를 만들어 가난한 집에 주고 갔는데 그 안에서 쌀이 화수분같이 나와 금방 부자가 됐다.

소문을 전해 들은 부자도 이듬해 스님이 시주를 청하자 선뜻 쌀을 주었고, 스님은 이번에도 둥구미를 만들어 주었다. 기대에 부푼 부자가 둥구미를 열어 보았지만 개똥만 가득 들어 있었다. 놀란 부자가 개똥을 울타리 밑에 묻었더니 개나리가 자라났다.

개나리를 개똥의 '개'와 부자의 호칭인 '나리'를 합쳐서 '개똥 같은 나리'로 빗댄 해학이다.

일제강점기 계몽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은 강연하러 갔다가 일본 순사들과 친일파들이 잔뜩 눈에 띄자 "개나리들이 만발했구나"라고 말해 군중들을 '웃프게' 만들었다.

또 개나리는 '개'라는 접두사와 '나리'라는 백합과 식물의 한글 이름으로 구성됐다는 견해다. 나리꽃과 비슷하지만 나리꽃이 아니라는 의미의 접두사 '개'를 붙였다는 주장이다. 요즘 MZ세대가 '개'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말은 '아주' 혹은 '매우'라는 좋은 의미이지만 예전에 식물 이름에 '개'가 붙으면 아류(亞流)나 못하다는 뜻이 된다. 개나리는 나리와 비슷하지만 덜 예쁘다는 의미다.

이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옛 책에는 간혹 개나리를 봄맞이 꽃이라는 의미에서 영춘(迎春), 신이화(辛夷花)라고도 적혀 있지만 영춘은 중국이 원산인 여섯 갈래 꽃잎의 영춘화(迎春花)와 혼동되기 쉬우며 신이화는 목련꽃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유득공(柳得恭)이 저서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3권 「초목과 충어」에서 "시를 읊을 때는 이른 봄 영춘(迎春·개나리)이 갓 핀 것을 신이(辛夷)라 하고…(중략) 초목과 충어에 대한 학문이 형편없다"라고 개탄한 것을 보면 도감이나 사진이 없던 옛날 사람들은 꽃 이름을 어지간히 헷갈렸던 모양이다.

개나리는 잎이 나오기 전에 3월 중순 무렵 잎눈이 있는 겨드랑이에서 노란색 꽃이 1~3개씩 먼저 피며 꽃잎은 네 갈래의 통꽃으로 끝이 깊게 갈라진다. 수술은 2개이고 암술은 1개다.

대부분의 개나리는 꽃이 지면 마주 보며 녹색 이파리를 삐죽삐죽 내미는데 모양은 타원형이고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생겼다. 한여름에 축 늘어진 가지의 초록 잎이 워낙 무성해서 무더위도 잠시 잊게 할 만큼 싱그럽다.

음지나 양지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추위와 메마른 공기, 공해에도 강하다. 속이 비어 있는 줄기는 높이가 3m까지 자라며 가지 끝이 땅으로 처지며, 잔가지는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점차 회갈색으로 변한다.

개나리 열매를 보기가 쉽지 않은데, 열매는 길이가 1㎝ 남짓이고 둥글납작한 모양이다. 번식은 종자로도 하지만 대개 손쉽고 인위적인 꺾꽂이로 한다. 생명력이 워낙 강한 식물이라서 가지가 땅에 닿거나 또는 그 가지를 잘라 꽂아놓아도 이내 뿌리를 내린다.

의성개나리. 의성군제공
의성개나리. 의성군제공

◆의성개나리 열매는 한약재

경북 의성 지역에 가면 줄기가 아래로 휘어지지 않고 가지가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특이한 개나리를 볼 수 있다. 또 꽃이 아래로 향해 피고 잎도 동시에 나온다. 의성개나리 혹은 약개나리로 불리는 당개나리 품종의 금종화(金鐘花)다. 한약재로 쓰이는 열매 연교를 얻기 위해 오래전부터 재배했다. 우리나라 원산의 개나리는 결실률이 아주 낮기 때문에 열매를 잘 맺는 중국 품종을 도입했다.

연교는 항균, 해열, 해독, 소염, 이뇨, 소종 등에 효능이 있어 오한이나 열이 날 때, 신장염, 각종 종기나 습진의 치료 약재로 쓴다고 한다. 의성개나리 열매가 막 익기 시작해 녹색 빛이 남아 있을 때 채취해 쪄서 말린 것을 청교(靑翹), 완전히 익었을 때 수확해 말린 것을 노교(老翹)라고 한다.

농촌의 노령화로 일손이 달리고 인건비도 올라가는 바람에 값싼 중국의 연교가 대량으로 수입되자 경쟁력을 잃어 지금은 재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의성군 사곡면 일부 도로변이나 단촌면 등 몇 군데에서 봄철이면 노란 꽃 의성개나리를 볼 수 있다.

산개나리
산개나리

◆한국 '토종' 개나리의 종류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개나리 형제들은 산개나리와 만리화 그리고 장수만리화 등이 있다.

산개나리는 개나리보다 꽃이 가늘고 색도 연하다. 꽃이 다 피어도 꽃잎이 뒤로 활짝 젖혀지지 않으며 잎자루에 털이 나 있다. 산개나리의 자생지는 북한산과 관악산, 수원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향토전자대전에는 의성군 단촌면에도 산개나리 군락이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만리화
만리화

만리화는 황해도 등이 자생지이나 남한에서는 설악산에서도 간혹 야생으로 피어나서 산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향기가 만 리(里)까지 퍼져서 만리화라고 불렀다는 주장이 있지만 대구수목원의 만리화는 향기가 그리 진하지 않다.

나뭇잎이 없어 시야가 탁 트인 이른 봄 샛노란 꽃을 만 리, 즉 먼 거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에 귀가 더 솔깃해진다. 만리화는 2016년 산림청에서 구상나무, 눈측백나무, 인가목, 미선나무 등 12종의 나무와 함께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했다.

장수만리화는 북한의 장수산이 고향인데 남북으로 분단되기 전에 남쪽에 가져와 심어 놓았던 것이 임업연구원 등 몇 곳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개나리꽃이 아닌 잎에 황금색 무늬가 있는 '서울골드'(Seoul Gold)는 국내에서 개발된 품종으로 십수 년 전 시장에 나와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개나리 장주화
개나리 장주화

◆개나리 번식의 슬픈 비밀

개나리꽃은 겉모양이 같아도 암술대가 수술보다 길게 위로 솟으면 장주화(長柱花), 반대로 암술대가 수술 밑에 숨어 있으면 단주화(短柱花)로 구분된다. 나무 한 그루에서 자기 꽃가루를 암술에 붙이는 현상 이른바 자가수분이 안 되는 개나리는 장주화와 단주화 두 가지 꽃이 서로 꽃가루받이를 해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개나리는 단주화다. 단주화의 경우 수술이 길어 꽃가루가 밑에 있는 암술머리에 떨어지더라도 결실이 안 된다. 개나리꽃이 지천으로 피는데도 열매를 얻기가 그리 쉽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스러운 종자 번식(유성생식)보다는 꺾꽂이나 휘묻이, 포기나누기와 같은 인공번식(영양생식)에 의존한 결과 단주화가 피는 나무만이 비정상적으로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개나리 단주화
개나리 단주화

개나리와 같이 자가수정을 막고 타가수정을 유발시키는 '자가불화합성'을 가진 식물은 사과, 배, 무, 배추,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 아주 많다.

식물을 인위적인 방식으로 번식하면 씨앗으로 번식된 식물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기후변화나 질병과 해충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인 시나리오는 개나리에 치명적인 병균이 퍼질 경우 종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다. 비단 개나리뿐만 아니라 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들면 생태계가 무너지고 심지어 최악엔 인간의 삶도 영향을 받지 않겠는가.

화창한 봄날 정취를 읊으며 기쁨과 희망을 담은 이해인 수녀의 시 「개나리」가 가슴에 와 닿는 주말이다.

눈웃음 가득히/ 봄 햇살 담고/ 봄 이야기/ 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 잎새도 달지 않고/ 달려 나온/ 네 잎의 별꽃/ 개나리꽃//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길게도/ 늘어뜨렸구나// 내가 가는 봄맞이 길/ 앞질러 가며/ 살아 피는 기쁨을/ 노래로 엮어 내는/ 샛노란 눈웃음 꽃.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2003, 분도출판사〉

선임기자 chungh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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