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팔아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주택' 피해가 대구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남구 대명동, 서구 내당동 등에 빌라 4채 이상을 보유한 집주인이 최근 잠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입자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다가구주택 세입자 A(31) 씨는 오는 7월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있지만 보증금 5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다. A씨는 분양받은 아파트 중도금을 내야 하는데 눈앞이 깜깜하다고 호소했다.
A씨가 이상한 조짐을 느낀 것은 지난해 12월 수도요금 장기 체납으로 단수 예정이라는 고지서를 발견하면서다. 그는 "집주인이 연락을 안 받았지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다른 세입자들 역시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세입자들이 모여 사실관계를 조금씩 확인하자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17가구 규모의 이 다가구주택 중 16가구가 전세 세입자였고 집주인과 연락이 닿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같은 건물에 사는 B(36) 씨는 지난해 10월이 계약 만기였는데 보증금 1억원을 돌려받지 못해 3개월째 이사를 가지 못했다. 집주인은 다른 세입자들과 연락을 끊은 사이에도 새로운 전세 세입자 C씨를 받았고, C씨 역시 1억2천만원의 잔금을 치르자마자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세입자들은 집을 팔아도 대출금이나 보증금을 다 갚지 못하는 '깡통주택'과 다름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 다가구주택의 시세는 17억원 선으로 추정되는데 금융기관에 잡힌 선순위 담보만 8억4천만원에 달한다. 시세에 맞춰 매도계약이 성사되더라도 건물주가 얻을 수 있는 돈은 8억원 남짓인 반면 건물 전세 세입자 16가구 전세보증금만 12억원이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다면 세입자 상당수가 빈손으로 거리에 나앉을 처지다.
세입자들에 따르면 집주인은 계약서에 명시된 선순위보증금을 허위로 기재해 임차인을 속이기도 했다. A씨에 따르면 A씨 계약서상 선순위보증금은 5억원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10억원이었다. C씨도 계약 당시 선순위보증금을 4억원으로 고지받았으나 실제로는 11억원이었다.
선순위보증금은 보증금을 변제할 때 우선순위가 되기 때문에 계약 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세입자들은 선순위보증금이 높을 경우 전세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임대인의 등기부등본상 집 주소와 연락처가 거짓이었고,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 역시 연락 두절 상태라 따질 곳도 마땅치 않다"고 호소했다.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임차인들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집주인이 가지고 있는 다가구주택은 남구 대명동과 서구 내당동, 평리동, 달서구 송현동 등 대구에만 4채에 달한다. A씨는 "최근 내당동 빌라에도 단수 고지서가 붙었고 가압류가 들어왔다"며 "확인된 세입자들 보증금을 다 합치면 40억원 정도"라고 했다.
세입자들은 피해사실을 취합해 남부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전세사기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고가 전세계약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차순연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임교수는 "5천만원 미만의 보증금은 국세와 동급으로 최우선 변제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며 "계약 당시에 선순위보증금 정보를 보다 쉽고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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