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천 박서보미술관 건립이 관급공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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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이 추진 중인 박서보미술관 건립이 암초를 만났다고 한다. 예술 작품 공간 건립이냐, 관급공사 시행이냐의 시각차에서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예천 출신 박서보 화백은 단색화의 거장이라 불리며 현대미술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예천군이 2025년 7월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열겠다며 사업비 255억 원을 투입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관급공사에는 설계 공모와 예산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자체 주도 예술 사업의 약점이다.

최근 짚이는 난맥은 설계 방식 등의 제한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것을 수의계약으로 본다는 것이다. 설계 공모가 전제다. 미술관을 공공건축물로 보는 시각이다. 2020년 8월 박 화백이 예천군과 업무협약 체결 당시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긴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과 정면 배치된다. 그 결과 예천군이 스위스 유명 건축가 페터 춤토르에게도 공모로 설계에 참여하라는 의견을 보냈다고 한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페터 춤토르다. 나훈아에게 미스터 트롯에 참가해 우승하면 단독 콘서트 기회를 주겠다고 한 격이다.

예천군이 규정에 맞게 진행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막대한 혈세가 드는 탓이다. 다만 지금 같은 절차라면 기대치와 다른 결과물을 마주할 공산이 커 보인다. 유명 예술인의 이름을 딴 미술관 준공 자체가 명소의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소재의 전국 유명 미술관이 적잖다. 적당히 모양새만 갖춘다면 지속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차별성도 없어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규정에 얽매여 시작과 끝이 조율되는 수순은 관급공사에 다름 아니다. 무리한 속도전을 경계하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미술관 건물이 예술 작품인 시대다. 음식물을 담는 그릇이 음식물 못지않은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규정에 가둘수록 파격적인 시도는 불가능하다. 예천군도 군민 모금 등 대안 모색에 나선다고 하나 적극적 대응이 아쉽다. 지으려면 제대로 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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