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북셀러' 주인 호재 씨 "대구에서 오래도록 남는 헌 책방 운영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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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헌책방 멋있어 보여 창업…문학작품·시집 위주로 취급·추천
초판본 '블라인드 북' 상품 기획…김광석길 관광객·학자들도 찾아

호재 '북셀러' 대표가 책 한 권과 함께 서가 앞에 섰다. 호재 씨가 들고 있는 책 '시창작교실' 앞표지에 '안재찬 선생 혜존'이라 적혀있는데, '안재찬'은 시인 류시화의 본명이다. 즉, 류시화 선생이 소유하고 있던 책이 돌고돌아 '북셀러'에 온 것. 이화섭 기자.
호재 '북셀러' 대표가 책 한 권과 함께 서가 앞에 섰다. 호재 씨가 들고 있는 책 '시창작교실' 앞표지에 '안재찬 선생 혜존'이라 적혀있는데, '안재찬'은 시인 류시화의 본명이다. 즉, 류시화 선생이 소유하고 있던 책이 돌고돌아 '북셀러'에 온 것. 이화섭 기자.

대구에서 헌책방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한때는 남산동에, 한때는 대구시청 동인청사 인근에, 대구역지하차도 옆 상가 등에, 더러는 대학가에 있으면서 다양한 책들을 사고팔던 곳이고 다양한 지식의 노다지 광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대형 프랜차이즈 중고서적 전문서점이 들어오면서 소소한 작은 헌책방들은 사양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이런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헌책방을 운영하는 청년이 있다. 김광석길 인근에 있는 헌책방 '북셀러'의 주인 호재 씨다. '호재'라는 이름은 필명 혹은 헌책방 주인으로써 정체성을 나타낼 때 쓰는 이름이다. 문학의 좋은 재료가 되고 싶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란다.

올해 31세의 젊은이가 헌책과 함께 하게 된 데에는 그만의 독서방식과 책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문학을 좋아하다 보니 시집이나 소설 한 편을 읽고 나면 그 작가의 작품을 계속 찾아 읽고 작가가 영향을 받은 작품의 작가를 찾아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독서를 했어요. 마치 나무의 잎 하나를 보고 그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읽었죠. 그러다보니 결국 신간보다는 예전에 나온 책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거기에다 신혼여행을 프랑스로 갔는데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와 같은 책방이 너무 멋있어보였어요. 대구에도 그런 헌책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차리기로 했어요."

그가 연 헌책방 '북셀러'는 헌책방이라면 떠오르는 그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낡은 책들이 먼지와 함께 쌓여있는 게 아니라 책꽂이에 새 책처럼 잘 관리된 모습으로 꽃혀있었다. 그리고 호재 씨가 추천하는 책들은 책 속의 문장 한 구절과 함께 전시돼 있다.

재미있는 건 '블라인드 북'이라는 상품이다. 블라인드 북의 경우 몇몇 출판사에서 나온 초판본을 구해서 만드는데, 초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희소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누가 쓴건지 알 수 없게 봉투에 넣은 책 한 권을 그 속의 문장 한 구절과 함께 진열해 두는데, 문장 한 구절이 주는 감상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기존의 헌책방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북셀러'가 취급하는 책들 대부분은 문학작품, 그리고 시집이 많은 편이에요. 요즘 동네 작은 서점들이 특정 분야의 책을 추천하는 '북큐레이션'을 하는 것처럼 저도 문학 위주로 추천을 드리는 편이죠. 헌 책이지만 적극적으로 팔아보고 싶더라구요. 문장 한 구절을 책 표지 앞에 붙여놓은 것이나 블라인드 북 등이 그런 고민에서 나온 방법이죠."

'북셀러'를 찾는 손님들은 다양한데, 김광석길을 찾는 관광객들이 간혹 발길을 멈추고 이 곳의 문을 연다. 호재 씨의 설명과 함께 책 몇 권을 뒤적이다가 한 권을 구입하기도 한다고. 이 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 위주로 구비해 놓다보니 지역에서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발길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호재 씨는 '북셀러'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찾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운영하는 게 호재 씨의 궁극적인 목표다. 마지막으로 호재 씨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정의를 들어봤다.

"'진실된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장 어려운 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건데, 책에도 작가의 심정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책들이 있고, 그런 책들은 읽다보면 진실됨이 느껴지거든요. 그런 책을 하나 추천드리자면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의 '수상록'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책 서문에 '오직 자신에 대해 쓴 책'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독서가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도구로 쓰인 시초가 된 책이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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