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경북, 빈집마저 골치] "이 집, 저 집 텅텅"…흉물 방치된 빈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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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유천면 주민들…"낡고 정주여건 나빠, 노인들 떠나면 동네 전체 빈집"
경북 내 빈집 1만4천여 채 중 철거대상 약 8천 채…김천시·의성군서 비중 커
상속자녀 철거비 부담, 지자체 예산 부족 등 탓에 '정비대상 < 신규빈집'

경북 예천군 유천면 한 마을. 빈집 마당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고, 담벼락과 창문은 무너지고 부셔져 있다. 관리가 되지 않은 채 오랜 기간 방치돼 빈집은 마을 미관까지 해치고 있다. 윤영민 기자
경북 예천군 유천면 한 마을. 빈집 마당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고, 담벼락과 창문은 무너지고 부셔져 있다. 관리가 되지 않은 채 오랜 기간 방치돼 빈집은 마을 미관까지 해치고 있다. 윤영민 기자

농어촌 지역이 많은 경북에선 고령화·인구유출에 따른 인구소멸이 잇따른다. 주인이 떠난 빈집은 상속 자녀에게도 골칫거리다. 비싼 철거 비용, 매각 가치 부족 등을 이유로 처분할 엄두조차 못 내는 자녀가 숱하다.

빈집이 우범지대, 흉물로 전락하고 나면 마을 공동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만큼 경북 지방자치단체들은 빈집 주인 찾기와 철거 및 재활용 방안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한정된 예산으로는 매년 속출하는 빈집을 일제히 해체하기 힘든 실정이다.

◆"빈집 넘치는 마을, 머잖아 동네 전체 텅 빌라"

"이 집도 비었고 바로 옆집, 뒷집도 비었습니다. 윗마을도 빈집이 천지죠(많죠)."

25일 오전 경북 예천군 예천읍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유천면 한 마을.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무너진 담장, 부서진 대문 등 오래 방치된 듯한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담장 사이로 보이는 마당에는 낡은 가재도구와 잡초가 널브러져 있었다. 다른 빈집 마당에는 과거 텃밭을 가꿨던 흔적도 보였다.

몇 걸음 지난 곳의 다른 집은 비교적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였으나 문과 창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우편함에는 고지서로 보이는 우편물이 누렇게 변한 채 가득 차 있었다.

이처럼 오래 방치된 빈집이 슬쩍 봐도 10채쯤 눈에 띄었다. 차가운 날씨 속 행인도 몇 없는 조용한 마을에 흉물스러운 건물들까지 잔뜩 들어차 있으니 마을 전체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주민들에 따르면 빈집들은 주인이 이사를 갔거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대로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을 물려받은 자녀들도 큰돈을 들여 이를 철거하느니 처분을 포기한 채 방치한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시골마을 빈집은 낡은 데다 주변에 직장이나 학교, 상권도 없으니 팔아봤자 돈이 안 된다. 여기 평생 산 노인들이나 계속해 살지, 젊은 자녀들은 돈을 준다고 해도 못 산다"며 "지금 계시는 어르신들 모두 돌아가시면 동네 전체가 빈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도내 빈집 1만4천 채, 과반 약 8천 채는 철거 대상

25일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도내 농어촌 지역 빈집은 1만4천209채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복구나 재활용하기 힘들 만큼 망가진 철거 대상은 7천904채(55.61%), 활용할 수 있는 집은 6천305채(44.4%)이다.

시 지역 가운데는 김천이 1천175채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포항 1천165채 ▷경주 1천16채 ▷안동 982채 ▷영천 668채 ▷상주 680채 ▷영주 618채 ▷구미 558채 ▷문경 448채 ▷경산 128채 순이었다.

군 지역으로는 의성이 1천282채로 최다 지역에 올랐다. ▷예천 979채 ▷영덕 694채 ▷울진 676채 ▷청도 498채 ▷고령 424채 ▷성주 389채 ▷봉화 375채 ▷칠곡 370채 ▷군위 367채 ▷영양 364채 ▷청송 262채 ▷울릉 51채 등이 뒤따랐다.

경북도에 따르면 빈집은 농어촌 지역, 특히 정주 여건이 비교적 나쁜 마을에서 더욱 많은 경향을 보인다. 학교와 일자리가 없는 지역에서 돈을 들여 땅을 사고 빈집을 철거해 삶을 이어갈 이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활기를 잃은 동네에서 빈집이 급증하고, 있던 인구도 자연감소하거나 타지로 유출돼 급속히 공동화한다는 게 경북도의 설명이다.

◆지자체 눈물겨운 노력에도 완전 해결은 역부족

경북도와 도내 기초단체들은 매년 수천만~수억원을 들여 빈집 철거에 나서고 있다. 빈집이 남은 주민들의 생기마저 앗아가는 만큼 이를 조속히 처리하고 마을 활기도 되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빈집 매입 어려움, 예산 부족 등 한계 탓에 정비 속도보다 빈집 증가세가 더 빠른 상황이다. 1970년대 인구 10만 명에 이르던 영덕군은 지난해 말 기준 인구 3만4천여 명에 빈집 694채를 둔 공동화 위기 지역으로 전락했다. 도시로 향하는 인구유출이 빈집 증가세를 더욱 키운다. 포항에 인접한 남정면(167채)·강구면(103채)의 빈집이 전체의 약 40%를 차지한다.

영덕군은 올해 예산 8천만원을 들여 한국부동산원 '빈집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실시한다. 빈집 관리상황과 안전등급을 파악하고 빈집정비계획을 세운 뒤 관련 법에 따라 빈집을 사들여 공동이용시설 등 공익시설로 활용할 방침이다.

청송군에는 지난해 8월 기준 빈집 259채가 있다. 주민 대여섯 명 중 1명이 국내 평균 기대수명(여성 86세, 남성 80세)에 임박했고, 인구 2만4천300명 가운데 65세 이상이 35%(8천800여 명), 75세 이상이 18.5%나 되는 탓에 빈집이 더욱 빨리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청송군의회는 상태 좋은 빈집을 찾아 인구유입·귀농귀촌용 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는 '청송군 빈집 정비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발의했다. 다만 빈집을 강제 수용하려면 소유자(상속자)의 동의나 예산이 필요해 쉽지는 않다는 게 청송군 설명이다. 청송군 관계자는 "소유주가 방치하거나 매매를 거부하는 빈집이 많아 한계가 있다. 계획대로 재활용할 수 있는 집이 연간 5채만 나와도 성공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의성군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고인 43.18%에 이르며 빈집도 속출하고 있다. 빈집 상속 자녀들은 집을 팔거나 임차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올해 의성군은 지난해보다 2억5천만원 늘린 10억원을 들여 빈집을 정비할 예정이다. 흉물로 방치된 부속 건물, 노후 창고, 소규모 축사 등 비주거용 주택 철거도 지원한다. 김태원 의성군 도시환경국장은 "빈집 소유주들은 철거 및 폐기물처리 비용 부담, 소유주 간 의견 불일치 등을 이유로 철거에 소극적"이라며 "올해는 읍·면별로 빈집 정비 지원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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