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내년 예산안 처리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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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입법에 관한 권한, 재정에 관한 권한, 국정에 관한 권한. 우리 국회의 권한을 크게 분류한 것이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는 조항 등은 국회 입법권을, '조세의 부과는 반드시 법률에 의거해야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문 등은 국회 재정권을,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건의권 등은 국정에 관하여 정부를 감시·비판하는 국회의 광범위한 권한을 보장한다.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할까. 사람에 따라 관점에 따라 경우에 따라 각각 다른 의견이 가능한 질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국회의 재정에 관한 권한 중 예산안 심의·의결권을 꼽고 싶다. 법률은 입법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고, 처음 의도와 다른 부정적 효과가 부각되기도 한다. 국정감사·조사권 등은 국회의 일상적인 업무로 여겨지기도 한다.

예산은 다르다. 국민 세금을 어디에 얼마만큼 쓰려는지 계획을 보면 정부의 국정철학과 가치관이 단번에 드러난다.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한 결과를 보면 국회의원들의 수준 역시 대번에 알 수 있다. 국민의 환심을 사려는 돈 뿌리기인지 아니면 미래지향적인 투자인지, 전체 국민의 복리를 위한 것인지 지역구 혹은 진영만을 위한 것인지도 보인다. '돈이 말한다'(Money talks)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헌법상 정부는 회계 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하여야 하며, 국회는 회계 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해야 한다. 국회는 정부안에 대한 삭감 수정권은 있으나, 금액의 증액 또는 새 비목 설치는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재정 분야에서도 대통령제의 견제와 균형을 달성하려는 조항이다. 재정권을 의회에만 부여한 미국 헌법과 다른 점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 개최를 거부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려는 더불어민주당 요구 대신 국민의힘 손을 들어준 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김 의장이 단순히 어느 당 편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하는 건 부적절하다. 김 의장은 "12월 8일, 9일 본회의를 개최하려고 한다"는 입장문에서 "글로벌 복합 경제 위기 속에서 물가와 금리가 치솟고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수출마저 부진한 상황"이라며 "민생 경제를 살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를 챙기면서,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내년도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야말로 국회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한마디로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현재 국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지적한 것이다. 예산안 처리가 왜 급한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다고 본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 문제가 예산안 처리의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여 본회의를 미루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국회는 국회의장의 예산안 등 직권상정을 둘러싼 여야 격돌로 동물 국회가 일상이었다. 2012년 국회법,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서 직권상정을 제한하고 국회 폭력에 대한 징계를 강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선진화법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인 12월 2일 정부 예산안이 자동 부의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2일을 넘기며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위반한 셈이다. 김 의장이 "국회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김 의장은 정기국회 회기인 9일까지 처리를 기대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민주당이 정부가 제출한 '윤석열표' 예산 대신 '이재명표' 예산 처리를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본 헌법과 국회법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반칙이다. 예산 처리가 올해를 넘겨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얘기까지 나온다.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었지만 국회와 정치의 선진화는 여전히 멀었음을 말해 준다. 조금이나마 선진화한 모습을 보여 주길 바라는 것은 김 의장의 노련함과 중재 노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후반전마저 끝나고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죽을 힘을 다해 한국 축구의 기적을 만들어 낸 젊은이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국회의 정규 경기 시간은 이미 지났다. 추가 시간마저 끝나기 전 싸움 대신 작은 성과라도 만들어 내길 바란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기적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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