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위대한’ 부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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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 소설가

이화정 소설가
이화정 소설가

간밤, 사소한 말이 다툼으로 이어져 상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눈을 뜬 아침, 조용히 상을 차린다. 그렇게 남편의 밥을 푸다 문득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목숨을 건 사랑을 나눈 '타이타닉'의 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11년 후 부부로 만나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격렬한 부부싸움이 있은 다음 날 아침, 아내 에이프릴은 웃는 얼굴로 프랭크에게 아침을 차려준다. 어제를 후회하던 남편은 감격하며 아침을 먹는다. 뒤에 이어지는 비극적 사건과 별개로, '부부싸움 뒤 아내의 밥상 차리기'에는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을까.

열렬한 연애를 거쳐 결혼에 이른 많은 커플은, 결혼생활이란 것이 예상보다 힘들고 살벌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도대체 이 남자가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은 많은 순간을 만나게 되고 그때마다 절망에 빠진다. 남자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아내들은 화를 내고 침묵하고 외면하는 단계를 가까스로 버텨, 미소를 지으며 아침을 차리는 경지에 이른다. 남편들 또한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말과 행동을 뉘우치며 눈치를 살피던 찰나에, 잘 차려진 밥상을 마주하고는 안도한다. 그러나 아내의 밥이 정말 일상의 평온을 의미하는 시그널일까.

부부의 사나운 대립이 있은 다음 날 말간 얼굴로 여자가 상을 차리는 행위는, 이제 사랑받는 여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함과 동시에 당신 또한 더 이상 나의 연인이 아님을 알리는 선언과 같다. 여자들은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고 마음 아픈지에 대해 아무리 호소해봤자, 그것을 헤아려 줄 예전의 그 남자는 없다는 것을. 이때 아내가 차리는 밥상은 생존과 육아를 가능하게 하는 남자의 경제적 활동에 대한 감사이면서, 더 이상 어설픈 투정 따위로 그의 위로를 기대할 수 없다는 완벽한 타자로서의 인식이다. 그것은 애인이었던 남자를 상실한 슬픈 발로이자, 책잡히지 않을 아내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또, 이렇게만 치부해버리기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한 결혼생활자들은 사실,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가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분명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의 영원한 욕망이 되는 길과, 사랑을 택함으로써 서로의 환상을 산산조각 내는 길 중에 말이다. 그리고 많은 부부는, 후자를 택해 사랑 안으로 과감하게 번지점프를 한 사람들이다. 개츠비가 개츠비가 아니고 '위대한' 개츠비인 것은, 파국의 사랑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갔기 때문이다.

강렬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결혼이 내내 그 강렬함을 유지한다면 행복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절정에서 내려오지 않는 사랑은, 피곤하다. 상대의 지대한 사랑을 받던 때가 그립고 자주 섭섭하지만,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돌보는 배우자에게 새로운 감정이 샘솟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격렬한 사랑의 변주이면서, 격렬했기 때문에 찾아오는 보상이다.

낭만적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심플해진 몸과 마음이 들어서고, 그 단조로움이 주는 정적인 기쁨이 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제공하는 긴밀함의 향유는, 청춘의 열정과 절대로 바꾸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다. 묵묵히 아침을 먹는 남편의 뒷모습, 그 애잔한 등을 바라보는 지금 내 마음 또한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여자와 남자는 어렵고 아내와 남편은 더 어려워서,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문장으로 얼버무린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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