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그 많던 동요는 다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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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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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기러기'를 기억하는가? 울밑에 귀뚜라미가 울고, 오동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달밤, 아기 기러기와 엄마 기러기가 구슬프고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며 서로를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모자간의 애끓는 정서를 절절하게 표현한 윤복진의 동요다. 1928년 만들어진 이래 어린이들이 부르고, 형과 누나들이 따라 부르고, 나중에는 그들의 부모세대까지 함께 불러 식민지 시기 온 국민의 노래가 됐었다. 돈을 벌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의 체험과 더불어 민족상실로 기댈 곳 없던 백성들의 아픈 삶과 고단한 심사를 어루만져줬던 것이다. 이 계절에 이 동요를 불러도 그 실감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러기'는 윤복진의 월북으로 불릴 수 없는 형편이 되자, 노골적인 원곡의 내용 지우기가 시행되면서 이원수의 '찔레꽃', 이태선의 '가을밤'이라는 곡으로 알려지게 됐고, 나아가 1982년 이연실이 개사를 한 '찔레꽃'으로 가사가 변형됨으로써 원곡의 내용은 완전히 덮여 버렸다. 찔레꽃은 봄과 초여름에 걸쳐 피는 꽃이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원래의 가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더 아프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인 '하모니카'도 그렇다. "욕심쟁이 작은옵바 하모니카는/ 큰 아저씨 서울가서 사보낸 선물"로 시작되는 동요는, 어느새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라는 가사(윤석중 '옥수수 하모니카')로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다. 재미와 함께, 돈을 벌러 가는 현실도 녹아 있는 윤복진 가사의 동요가 있었다는 것을 윤석중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은 물론 기성세대마저 기억하지 못한다.

대구 출신 윤복진은 4년제 계성학교를 다녔다.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성가대원으로, 거기서 만난 박태준이 그의 대부분의 동요를 작곡했다. 현재 복원 작업이 이뤄진 '무영당'에서, 개성 출신 이근무가 주선을 해서 윤복진 작사, 박태준 작곡 동요집 '물새 발자옥'이 간행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전에도 그는 이미 잡지 '어린이'의 열렬한 독자였고, 방정환이 시작한 소년회 활동의 혈맥인 '대구소년회'의 회원이었다.

그가 북으로 가고 그의 동요가 개사된 것이 43곡에 이른다. 대부분 윤석중이 개사했다, '물새 발자옥'이 '물새알'로, '아- 가을인가'가 '오시나 봐'로, '갈대'가 '연못물'로, '겨울밤'이 '하얀밤'으로, '고향하늘'이 '벼룻돌'로, '풍경'이 '바스락'으로, '돌아오는 배'가 '물새'로 교체됐다. 이 중 '물새 발자옥'과 '아- 가을인가'가 그가 월북하기 이전까지 대중들이 많이 부른 유명한 곡인데, 개사되고는 거의 불리지 않았다는 건 뭘 말하는가? 형식은 차용했으나 내용은 따로 놀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개작은 시에 대한 감동과 그 해석을 본질로 하는 동요의 본성을 무시하고, 그저 악보에 가사를 바꿔 붙이는 '노가바'의 형식을 띰으로써 동요를 창가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요인이다. 문학과 음악이 결합된 동요에서 가장 깨끗하고 순진무구한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은 원 가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맑은 동심과 토착 정서가 어우러진 서정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민족현실까지도 일깨워낸 영원한 동요 아버지, 윤복진의 동요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와 복원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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