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환국 밝족의 역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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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국의 국왕 치우가 시경에 나오는 현왕"
현왕을 상나라 '설'로 볼 수 없어…中 한족 학자들과 다른 견해 제시
설은 일생 대국 다스리지 않았고 시경의 현왕도 아무 관련 없어
구려국 지도자 현도씨 치우천왕 현도국 현왕으로 보는 게 합리적

현도씨에 대해 기록한 상고시대 사서 죽서기년.
현도씨에 대해 기록한 상고시대 사서 죽서기년.

◆'시경' "현왕 환발玄王桓發"의 현왕玄王은 누구인가

'시경' 상송의 장발편에 나오는 "현왕 환발"은, 네 글자밖에 안 되지만 한국 상고사의 매듭을 풀어줄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환발"이라는 글자가 지닌 우리 민족사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문학과 달리 느낌이나 상상만으로 결정되는 영역이 아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서만이 실재 역사로서 인정될 수 있다.

먼저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현왕 환발"에서의 현왕이 누구인가를 살펴보고 이어서 "환발"이 과연 우리 민족의 환국, 밝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말해보기로 한다.
"현왕은 '설契'이다"라고 맨 먼저 말한 것은 모형毛亨과 모장毛萇의 '시경' 주석이다. 이어서 한나라 정현鄭玄이 그 설을 추종했고 주희가 '시경' 주석을 내면서 그대로 따랐다.
상송 장발편의 현왕을 상나라 '설'을 가리킨다고 본 것이 지금까지 중국 한족 학자들이 견지해온 입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종래 한족 학자들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현도국에 대해 언급한 상고시대 사서 일주서.
현도국에 대해 언급한 상고시대 사서 일주서.

'후한서' 동이전에 "동이족이 아홉 가지 종류가 있는데 견이, 우이, 방이, 황이, 백이, 적이, 현이, 풍이, 양이이다(夷有九種 曰畎夷 于夷 方夷 黄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상고시대 동이족 가운데 현이玄夷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동한 시대에 조엽趙曄이 쓴 '오월춘추吳越春秋'에는 "현이玄夷의 창수 사자蒼水使者가 하夏나라 우왕에게 홍수를 다스리는 내용이 담긴 금간金簡으로 된 책을 전해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하나라의 우왕시대에 '현이'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우리 고조 소호 지가 즉위하였을 때 봉황새가 마침 날아왔다. 그래서 새를 기준으로 하여 관직의 이름으로 삼았다. 봉조씨는 달력을 맡았고 현조씨는 춘분과 추분을 담당했다(我高祖 少皥摯之立也 鳳鳥適至 故纪於鳥 爲鳥師而鳥名 鳳鳥氏 歷正也 玄鳥氏 司分者也)"

'춘추좌전' 소공 17년 조항에 나오는 내용이다. 제비는 춘분에 왔다가 추분에 돌아가므로 현조씨玄鳥氏는 춘분과 추분을 담당했다고 한 것이다. 이는 소호 금천씨 시대에 제비를 토템으로 한 현조씨가 존재했음을 말해주는 기록으로서, 현조씨가 바로 현이玄夷가 아닐까 여겨진다.

중국 곡부에 있는 소호릉, 소호는 새를 토템으로 했다.
중국 곡부에 있는 소호릉, 소호는 새를 토템으로 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시경' 상송 현조편에 "하늘이 현조에게 명하여 내려와 상나라를 탄생시켰다 (天命玄鳥 降而生商)"라는 기록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현조편은 상나라의 위대한 제왕인 고종高宗을 제사지낼 때 연주하던 음악 가사인데 거기에 "현조가 상나라를 탄생시켰다"라고 말한 것은 상나라가 바로 현조를 토템으로 했던 현이玄夷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여기서 '시경' 상송 장발편에 말한 현왕玄王은, 현조를 토템으로 한 현이玄夷의 최고 지도자이자 상나라 시조였던 인물을 가리킨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현왕은 현도국玄都國의 국왕이다

주희는 '설契'을 현왕이라 비정하고 "현은 심오, 은미함을 지칭한다.(玄者 深微之稱)"라고 설명했지만, 필자는 현왕은 현조玄鳥를 토템으로 한 현이玄夷의 최고 지도자를 가리킨 것이라고 보는데 그러면 현왕은 과연 구체적으로 상고시대의 누구를 지칭한 것일까.

'좌전'의 기록에 봉조씨와 함께 현조씨가 나오는 것을 본다면 그 시기는 씨족시대였던 것이 분명하다. 씨족시대에 '시경'상송 장발편의 현왕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는 어떤 국가나 인물이 존재하는가.

'일주서逸周書'에는"옛적에 현도국이 있었는데 귀신을 숭상했다.(昔者玄都 賢鬼道)"라고 하였고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순임금 42년에 현도씨가 와서 조공하여 귀중한 구슬을 바쳤다. (舜四十二年 玄都氏來朝 貢寶玉)"라고 하였다.

'일주서'는 공자가 '서경'을 편찬할 때 중화사관에 저촉된다고 해서 삭제한 기록이고 '죽서기년'은 서진西晉시대(서기279년) 급군汲郡의 고분에서 발굴된 죽간을 정리 편찬한, 진시황의 분서焚書를 거치지 않은 책이다.

동이족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진귀한 이 두 기록은 상고시대에 현도국과 현도씨가 실재했음을 보여주는데 '시경'에 말한 현왕은 바로 이 현도국의 국왕 현도씨를 가리킨 것이라 여겨진다.

현도국의 현玄은 주희의 말처럼 심오하다는 뜻이 아니라 현조玄鳥를 토템으로 한 현이玄夷가 세운 나라에서 유래했고 현왕玄王은 바로 이 현도국의 국왕을 지칭한 표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도국의 국왕을 현왕이라 했다면 현왕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도국 현도씨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국 상고사를 집대성한 '노사路史'에 보이는 현도씨 여국黎國

중국 상고사를 집대성하여 저술한 나필의 노사.
중국 상고사를 집대성하여 저술한 나필의 노사.

남송시대에 나필羅泌(1131~1189)이 중국의 상고사를 집대성하여 편찬한 '노사路史'에는 "현도는 소호시대의 제후이다.(玄都 少昊時諸侯)"라는 기록이 보인다. 현도씨는 오제의 첫 제왕인 소호금천씨 시대에 활동했던 씨족이다.

그런데 '노사' 에는 "소호씨가 쇠망하자 현도씨 여黎가 실로 천덕을 문란시켰다.(小昊氏衰 玄都氏黎 實亂天德)" "현도씨는 여국이다.(玄都氏黎國)"라는 기록도 보인다. 이는 현도국의 원류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여기서 여국黎國이 바로 현도씨 현도국의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기 때이다.

'노사' 국명기國名紀에 "여黎는 하나라의 제후 구려九黎이다. (黎夏諸侯九黎)"라고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여국과 구려국은 동일한 나라다. 여기서 여국, 구려국, 현도국은 표현은 다르지만 실체는 같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현도씨 여국, 구려국의 최고 지도자는 치우蚩尤천왕

중국 산동성 양곡현 치우릉에 있는 치우 동상.
중국 산동성 양곡현 치우릉에 있는 치우 동상.

고대 사서의 여러 기록에 따르면 구려국의 최고 지도자는 바로 치우천왕이었다. '국어' 초어 주석의 "여씨 9인은 치우의 무리이다.(黎氏九人 蚩尤之徒也)" '상서尚書' 여형吕刑 주석의 "구려의 임금은 호를 치우라 한다.(九黎之君 號曰蚩尤)" 당唐 나라 육덕명陸德明 '상서석문尚書釋文'의 "치우는 소호시대 말엽 구려국 군주의 명칭이다. (蚩尤 少昊之末 九黎君名)"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구려국, 현도국의 국왕 현도씨 치우蚩尤가 바로 현왕玄王이다

위에서 현도씨족 구려부족이 세운 나라를 현도국 또는 구려국이라 하였으며 현도국의 최고 지도자는 치우였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현도국의 국왕 치우가 바로 '시경' 상송에서 말한 현왕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현도씨 치우를 현왕이라고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한나라의 대표적인 학자 정현, 설이 상나라의 시조 현왕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의 대표적인 학자 정현, 설이 상나라의 시조 현왕이라고 주장했다.

첫째 상나라의 '설'은 일생 국왕이 된 일이 없다. 그러나 치우는 천하를 다스린 제왕이었다는 것이 '일주서'의 "사방에 군림하였다(以臨四方)"라는 기록으로 증명된다. 그러므로 현왕은 상의 '설'이 아니라 치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째 상나라의 '설'은 명칭 상에서 '시경'의 현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의 씨족명칭이 현씨였다거나 국가명칭이 현국이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치우는 씨족명이 현도씨였고 국가명이 현도국이었다. 그러므로 현왕은 치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셋째 상나라의 '설'은 작은 땅에 봉해진 일은 있지만, 대국을 다스린 일이 없다. 그런데 상송 장발편에서는 현왕이 "소국을 받아도 통달하고 대국을 받아도 통달했다 (受小國是達 受大國是達)"라고 말했다. 이는 치우천왕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여 여러 크고 작은 나라들을 굴복시키며 국가의 강역을 크게 확대시킨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왕은 치우천왕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계속〉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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