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어린이가 주인인 놀이터

  • 0

배주현 기자
배주현 기자

'전국 최초 지붕 있는 어린이 놀이터 사업'

지난달 기자의 메일함에 솔깃한 제목의 보도자료가 들어왔다. 대구 서구청이 야외활동이 힘든 날씨에 대비해 지역 내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전국 최초로 지붕 있는 어린이 놀이터를 조성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열어본 자료 내용을 보며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서구청이 내놓은 '전국 최초 놀이터 지붕'은 놀이터와 건물을 잇는 천막이 고작이었다. 과연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지켜주려는 어른들의 깊은 고민이 담긴 사업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는 당장 놀아야 한다. 최근 막을 내린 인기 드라마에서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는 등장인물이 학원에 치여 마음껏 놀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해 외친 말이다.

드라마처럼 현실의 어린이도 마음껏 놀지 못한다. 학원도 '어린이 해방'을 가로막고 있지만, 무엇보다 동네에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공간 자체가 부족하다. 대구의 어린이 놀이시설 대부분은 사유지인 아파트 단지 내에 있고,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공 놀이시설은 아이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대구시 내 8개 구‧군, 32곳의 놀이터에서 만난 50명의 아이들. 그들이 원하는 놀이터의 모습은 단순했다. 학교나 집 근처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고, 친구가 많고, 다양한 놀이시설이 많은 곳. 단순한 답이었지만 대구에서 이런 놀이터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놀이터 대부분은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로 이루어진 천편일률적인 모습이었고, 최신식 놀이기구가 있어도 대형 화물차가 질주하는 대로변과 가까워 아이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런 놀이터에서 지루함을 느낀 아이들은 '오르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적힌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랐다. 부모들은 그저 내 아이가 다칠까 봐 노심초사하며 "그만하라"고 거듭 외쳤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잘 놀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시선만 가득 담긴 탓이었다. 대구시 내 각 구‧군은 매년 낙후 놀이터 1~3곳을 대상으로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거나 한두 곳을 새로 짓는다.

놀이터 설계 전에 주민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모으지만 어린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공청회에 참석할 수 있는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 대신 어른 입장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놀이터'가 탄생하는 식이었다.

전문가들의 해법은 대부분 비슷했다. 아이들이 주도하며 놀 수 있는 놀이터. 그런 놀이터가 되려면 정해진 대로 노는 환경을 바꿔야 했다.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 정형화된 놀이터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이 돼 모험심을 자극하고 놀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전남 순천시에는 이색 놀이터가 있다. '엉뚱발뚱' '작전을 시작하지' '북(Book)적북적' 놀이터 등 이름만 들어도 당장 찾아가 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순천시가 놀이터를 만들기 전 아이들에게 지점토를 쥐어주며 원하는 놀이터를 만들어보라고 한 결과다.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가득 담긴 순천의 '기적의 놀이터'는 어느덧 지역 유명 관광지로 떠올랐다.

'전국 최초 지붕 있는 놀이터'처럼 거창한 프로젝트는 필요 없다. 어른들의 시각을 조금만 덜어내고 그 자리에 아이들의 시각만 넣어도 충분하다. 친구와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 단순하고 쉬운 답에 귀를 기울일 어른들의 작은 노력만 있으면 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