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백강의 한국고대사] 한국의 첫 국가 환국 (1)

  • 0

환인·환웅은 인간의 역사…삼국유사 주석은 오류다
삼국유사 첫 등장 이전부터 환웅·환인 기록 전해내려져
국사 역임한 승려 출신 일연 古記 인용 불교적 주석 달아
'석제환인'→'제석환인' 해석…우리 상고사 신화로 만들어

환인 환웅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지리지 등 우리나라의 여러 정통 사서에 등장하지만 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다음 내용이다.

"'고기古記'에 말하기를,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 말한다 이 있었는데 여러 아들 중의 한 아들인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하여 구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三危 태백太白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 하였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라고 하였다.(古記云 昔有桓因 謂帝釋也 庻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徃理之)"

북한 안악 삼성사의 환웅 화상
북한 안악 삼성사의 환웅 화상

환인 환웅은 일연의 삼국유사 고조선 조항에 처음 나오지만, 환인과 환웅의 이야기는 일연이 살았던 고려시대 훨씬 이전부터 이미 전해져 내려온 것임을 알수 있다. 이는 일연이 스스로 한 말이 아니라 '고기古記' 즉 옛 기록을 인용하여 환인, 환웅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환웅관련기사.
삼국유사의 환웅관련기사.

◆삼국유사의 환인에 대한 해석 '제석천'은 오류이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옛 기록인 '고기'를 그대로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환인이라는 명사 밑에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 라는 주석을 달았다. 즉 삼국유사에는 환인에 대해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라는 본래 '고기'에 없는 일연의 자의적인 말이 추가되어 있다.

'제석'이란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석제환인釋帝桓因'의 줄인 말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가 된다.

범어에서 석가釋迦는 성姓으로서 능能 즉 능력을 의미하고 제환提桓은 천天 즉 하늘을 뜻하며 인다라因陀羅는 제왕 즉 천제天帝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유능한 하늘의 제왕'이란 뜻이 된다.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의 의미를 한자로 요약하면 능천제能天帝, 또는 석천제釋天帝가 되는데 이를 제석帝釋, 또는 제석천帝釋天이라고 말하는 것은, 범어를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자의 어순에 부합하도록 표현하다보니 범어의 원래 어순과는 달라지게 된 것이다.

도리천의 왕으로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묘사한 불화, 대구 동화사 소장
도리천의 왕으로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묘사한 불화, 대구 동화사 소장

불교에서 제석이란 호법신으로서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서 사천왕과 삼십이천을 통솔하면서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는 하늘의 임금을 가리킨다.

불경에서는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제석천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고 성도한 뒤에는 제석천이 부처의 수호신이 되었으며 부처가 도리천에 올라가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할 때는 제석천이 부처의 시종侍從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일연은 고려때 국사를 역임한 승려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 우리민족의 시조설화가 담긴 '고기'를 인용하면서 거기에 적힌 환인桓因이 불교에서 말하는 '석제환인釋帝桓因'과 용어가 유사하자 이를 불교의 제석환인 즉 제석천으로 주석한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불경에 나오는 부처의 시봉을 들던 하늘의 제왕 제석환인을 우리민족의 시조 환인과 동의어로 해석한 것은 어디까지나 불교적 관점일 뿐이며 우리 상고사의 오류가 사실은 여기서부터 발단이 되었다고 본다.

◆삼국유사가 우리 상고사와 관련하여 범하고 있는 다른 오류들

일제 식민사학이 환인, 환웅, 단군을 실재 역사가 아닌 신화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라는 삼국유사의 환인에 대한 주석이 제공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고기' 주석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다른 오류들도 발견된다. 예컨대 '고기'에서 "환웅이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정상에 내려왔다"고 했는데 삼국유사는 "태백산은 바로 지금의 묘향산이다(卽太伯今妙香山)"라는 주석을 덧붙이고 있다.

환웅이 내려와 신시를 개국하였다는 태백산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최남선은 백두산, 심백강은 러시아 바이칼호 부근의 사얀산으로 보았다. 사얀은 여진어로서 한자로는 태백太白의 뜻이다. 중국의 태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묘향산은 북한의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에 걸쳐 있는 산인데 묘향은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용어로서 불교와 관련이 깊은 산이다. 일연이 승려라서 환인을 불교의 제석천으로 해석하고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도 불교와 관련이 깊은 묘향산으로 비정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묘향산에서 상고시대에 인류가 활동한 암각화 같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묘향산이 우리민족의 발상지라는 문헌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환웅이 개국한 태백산을 북한의 묘향산으로 비정한 것은 한민족의 활동무대를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제공했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 무엇보다 실소를 금할수 없는 부분은 "고구려가 본래는 고죽국이었다(高麗本孤竹國)"라는 내용을 "지금의 해주이다(今海州)"라고 주석한 것이다. 북한의 해주 석담은 율곡 이이가 제자를 양성했던 곳으로 유명하며 그의 저서 석담일기도 여기서 명칭이 유래했다.

고죽국은 백이 숙제의 나라로서 오늘날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부근에 있었는데 이를 황해도 해주로 비정한 것은 삼국유사가 과연 일연의 저작이 맞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삼국유사의 오류는 저자 일연의 잘못인가

다만 우리가 여기서 유념할 것은 삼국유사 최초의 판본이 언제 간행되었으며 어떻게 전해졌는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자료들을 검토해볼 때 고려시대에 일연의 제자들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고려 때의 판각본은 남아 있지 않고 현재 전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판본은 한양조선 중종 7년(1512년) 그러니까 불과 500년 전 경주 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주관해서 간행한 정덕본正德本이 전할 뿐이다.

일연 스님 표준 영정.
일연 스님 표준 영정.

따라서 현재 전하는 삼국유사의 환인이라는 명사 밑에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라는 주석을 비롯해서 여러 잘못된 해석들이 덧붙여져 있는 것이, 일연의 작품이 아니라 제자들에 의해서 또는 뒤에 사대주의가 판을 치던 한양조선에서 판각할 때 추가된 내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으나 지금으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땅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역사를 하늘나라의 이야기로 바꿔버린 "제석천"

삼국유사 이외에 고려때 이승휴의 제왕운기나, 세종실록 지리지에 실려 있는 단군고기 등의 환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여기서는 환인을 일연처럼 불교의 제석천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다.

세종실록의 단군고기에서는 환인을 가리켜 "상제 환인上帝桓因"이라고 하였다. 상제와 제석천은 엄연히 위상이 다르다. 제석은 부처님을 시봉하는 존재로서 부처님의 하위계급에 해당하지만 상제는 우주만물의 조화를 담당하는 주재자로서 부처님보다 훨씬 상위적 개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다.

유가계통의 사서인 제왕운기나 세종실록에서 환인을 하늘의 상제로 해석하게 된 것은 삼국유사가 먼저 이를 천상의 제왕 중의 하나인 제석천으로 해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중국 하북성 동남쪽에 있던 고죽국.
중국 하북성 동남쪽에 있던 고죽국.

시기적으로 삼국유사보다 후기에 나온 유가 사서들은 환인에 대해 제석천으로 해석한 삼국유사의 영향을 받았으며 불가의 제석천을 유가의 상제로 대체한 것이라 할수 있다.

고려시대의 옛 기록에서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 이념으로 신선의 나라 신시神市를 개국하여 인간세상을 다스린 내용을 말하였는데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환인을 불교의 제석천 하나님으로 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땅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역사가 하늘나라의 이야기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계속〉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