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러시아 정교회의 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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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17년 10월 혁명 후 러시아 정교회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볼셰비키 정권의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혁명 전 정교회의 교회는 4만6천여 개, 수도원은 1천여 개에 달했으나 1939년에는 교회와 수도원을 합쳐 1천 개 미만으로 줄었다. 성직자도 격감했다. 혁명 전 주교는 163명, 일반 사제는 5만 명에 달했으나 스탈린의 탄압을 거치면서 1941년 무렵에는 각각 7명과 100명 안팎으로 줄었다. 대부분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하거나 반동(反動)으로 몰려 처형됐다. 피신해 목숨을 부지한 성직자도 있었지만 극히 일부였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기습 공격으로 소련군이 와해되면서 공산 체제가 망할 위기에 몰리자 스탈린은 정교회를 인정했다. 교회와 신학교가 다시 문을 열도록 허가했고, 1943년에는 1926년 이후 공석인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 임명에 동의했다. 영국 대사에게 "저 역시 신을 믿습니다"라고 했고, 이 고백은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대문자로 실렸다.

그 배경은 가혹한 탄압에도 꺾이지 않는 국민의 신앙심이었다. 1937년 인구조사에서 소련 인민의 57%가 여전히 신을 믿는다고 했다. 스탈린은 대독(對獨) 저항을 위한 국민 동원에 정교회가 이용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정교회는 이에 적극 화답했다. 스탈린을 '신이 선택한 인물'이라고 했으며, 독일 기습 공격 당일 정교회 수장 세르게이 대주교는 신자들에게 "승리를 위해 모든 일을 하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2년 동안 23차례 넘게 독전(督戰) 사도 서한을 발표했다. 정교회의 '협조'는 말로 그치지 않았다. 소련군 1개 기갑 부대를 만들 수 있는 기금도 조성했다.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 총대주교가 25일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 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며 이 희생을 통해 자신의 모든 죄는 씻긴다"며 러시아 국민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를 종용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우크라이나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과의 성전(聖戰)이라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2012년 푸틴의 장기 집권을 '신의 기적'이라고 했다. 스탈린과 정교회의 통정(通情)이 푸틴의 러시아에서 재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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