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열린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 나흘간 7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그만큼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전시회를 찾아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흔한 취미생활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릴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미술 시간마다 의무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경험도 학교 졸업과 동시에 우리의 손을 떠난다. 그림을 한번 배워볼까 생각해 보지만 시간도 없고 미술이라는 영역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러한 우리에게 '그림 그리는 카페'가 해답이 될 수 있다. 드로잉 카페에선 손쉽게 슥삭슥삭, 누구나 피카소와 고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작은 화방
대구 중구 공평동에 위치한 드로잉 카페 '동성로 미술관'은 2019년 6월 문을 열었다. 2·28기념중앙공원을 따라 뒤쪽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건물들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화방처럼 잘 꾸며진 이곳을 들어서면 마치 예술가의 작업 공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회색 톤의 복도를 따라 양쪽에 다양한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감각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석고상도 보인다. 벽면 곳곳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이곳을 다녀간 손님들의 작품이다.
60평 규모의 카페는 총 8개의 방으로 분리되어 있다. 각 방에는 캔버스를 올려놓는 이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옆에 아크릴 물감과 미술 도구가 담긴 서랍장이 비치돼 있다. 색연필, 크레용, 매직도 준비돼 있어 물감 외에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해 예술적 감각을 뽐낼 수 있다.
하예진(40) 대표는 카페를 열게 된 배경에 대해 "기존 카페와는 차별화된, 성인들이 미술을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을 운영하고 싶었다"며 "당시 서울에는 드로잉 카페가 여러 군데 있었는데 대구에는 한 곳도 없어 내가 열어보면 어떨까 하고 오픈하게 됐다"고 말했다.
화방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카페 인테리어나 소품에도 신경을 썼다고. 카페를 구성하는 각종 미술 도구들은 실제 화방이나 미술 학원에서 이용하는 미술용품전문점에서 구했다.
또 화방의 분위기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카페 곳곳에 물감을 뿌려 장식하고 앞치마와 팔토시, 베레모도 준비해 두었다. 손님들은 이러한 소품들을 이용해 마치 진짜 화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미술 체험을 즐길 수 있다. SNS에 올릴 '인증샷'을 남기기에도 제격이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
동성로 미술관의 특징은 음료를 마시며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미술 도구를 구비해 둔 카페들은 종종 볼 수 있지만, 이곳처럼 재료부터 콘셉트까지 미술 체험에 아주 본격적인 곳은 드물다. 미리 인쇄된 도안에 채색을 하는 방식이라 초보자나 어린이들도 손쉽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전지 크기의 대형 캔버스와 정사각형 모양의 미니 캔버스 중 하나를 선택한 후 원하는 그림이 그려진 도안을 고르면 된다. 도안은 디즈니, 미니언즈 등 캐릭터 그림부터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등 명화까지 20여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다음 바로 색칠에 들어가면 되는데 각 손님 당 최대 3시간을 제공한다.
같은 도안이라고 해서 천편일률적인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는 사람의 채색, 표현 기법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물감에 적은 양의 물을 섞으면 유화 느낌의 그림을, 많은 양을 섞으면 수채화 느낌의 그림이 표현될 수 있다.
SNS를 보고 카페를 찾은 김율(29) 씨는 "그림에 소질이 없어 백지에 그리는 방식이었다면 방문하지 않았을 것 같다"며 "여러 도안이 있어 부담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완성된 그림을 보니 성취감이 크다"고 말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보니 체험 후 그림을 가져가 인테리어로 활용하는 손님들도 많단다.
하 대표는 "예약 시간이 끝난 후 손님들의 완성작을 확인하러 갈 때마다 기대되고 설렌다"며 "다들 처음엔 어려워하다가도 막상 시작하면 여러 방식으로 잘 표현한다. 손님들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색다른 체험부터 힐링까지
동성로 미술관은 다녀간 사람들이 하나둘씩 SNS에 후기를 올리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덕분에 평일에는 10팀, 주말엔 20팀 정도가 카페를 꾸준히 찾고 있다. 손님은 20~30대가 주를 이루지만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타지인이나 외국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친구 또는 커플끼리 이색 체험을 목적으로 찾는 경우가 많다. 일반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것도 좋지만 그런 행위를 넘어 이곳에선 하나의 취미생활을 동시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행과 그림이라는 공통적인 소재를 통해 친밀감을 쌓고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것은 덤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방문한 이예찬(21) 씨는 "평범한 데이트를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카페를 찾았다"며 "오랜만에 붓을 잡고 물감을 사용하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고 말했다.
또 미술은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줄이고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일종의 힐링 역할도 제공한다. 모든 것을 잊고 그림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차분해지며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는 것이다.
손님 조수민(25) 씨는 "3시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금방 갔다. 그림에만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이 됐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손님들이 카페를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아이템들을 추가해 계속해서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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