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69>형형색색 부채를 가득 그린 백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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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박기준(19세기 후반 활동), '백선도(百扇圖)'8폭 병풍 중 2폭, 비단에 채색, 각 94.5×41㎝, 삼성미술관 리움
박기준(19세기 후반 활동), '백선도(百扇圖)'8폭 병풍 중 2폭, 비단에 채색, 각 94.5×41㎝, 삼성미술관 리움

형형색색 부채들이 주인공인 그림이다. 18세기까지 없던 이런 그림이 나오자 '일백 백(百)'의 백선도, '무리 군(群)'의 군선도로 불렀고 선형화(扇形畵), 백접도(百摺圖)라고도 했다. 백선도가 상징하는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의 미학, 수량의 미학은 미술은 물론 이전의 조선사회에 없던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그림이나 글씨가 들어가는 예술의 매체이긴 하지만 일개 물건일 따름인 부채가 감상화의 주제가 돼 사치스런 부채를 나열한 그림이 나타난 것은 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긍정한 당시의 한양 분위기를 반영한다. 백선도는 물건을 좋아하면 의지가 손상된다는 완물상지, 소비와 소유를 억제하는 절용을 중시한 유교의 가치관과 충돌한다. 논어에 나오듯 '절용이애민(節用而愛民)', 즉 재물을 아껴 백성을 사랑하라고 한 것이 사회지도층의 윤리였다.

갑자기 나타난 뜻밖의 그림인 백선도의 화가로 고종 때 활동한 운초(雲樵) 박기준이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에 나온다. 낙관은 없지만 이 백선도 8폭 병풍이 그의 대표작으로 통용된다. 각 폭에 접이식인 접선(摺扇)을 중심으로 하면서 자루 달린 평평한 원선(圓扇)을 섞어 7~9자루가 그려져 있다. 접선은 부채 종류도 다양하고 활짝 펼친 것, 약간 펼친 것, 뒷면을 그린 것, 접은 것 등 모양이 각각이다. 원선 또한 선면의 형태와 장식기법, 자루의 재질과 색, 조각 등이 모두 다르다.

그림은 산수, 화조, 화훼, 초충, 사군자 등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고 능숙한 필치의 행서, 예서 제화도 있으며 인장도 그려넣었다. 부채 바탕은 검은색, 군청색, 붉은색, 분홍색, 주황색, 노란색, 푸른색 등 색지도 있고, 금박 은박을 뿌린 냉금지도 보인다. 갓대는 무늬 있는 반죽도 있고, 각종 색으로 칠을 올려 문양을 그리기도 했으며 낙죽이나 화각, 나전 등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부챗살에 붉은색, 검은색, 녹색 등으로 칠을 입힌 것도 있다.

부채그림 감상 재미도 쏠쏠하지만 부채의 묘사가 디테일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정교해 진짜를 보는 것처럼 실감난다. 연시(燕市)라고 했던 북경에서 들여온 중국제도 있고, 일본 수입품 왜물(倭物)도 있다.

백선도는 많은 선면화를 한꺼번에 감상하는 그림 속 그림인 화중화(畵中畵)이면서, 온전한 부채인 성선(成扇)이어서 각양각색 부채를 공예품으로 눈요기하는 두 가지 효능이 있다. 부채그림 구경과 부채구경의 균형을 맞춘 듯하지만 부채 자체의 화려함이 시선을 압도한다. 새롭게 출현한 백선도는 19세기 미술의 상업화와 새로운 수요층의 등장을 알려준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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