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8>아르보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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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길 잃은 기수'(1926).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길 잃은 기수'(1926).
서영처 계명대 교수
서영처 계명대 교수

'거울 속의 거울'(1978)은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1935~)의 작품이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상의 시 '거울'(1933)이나 '오감도'(烏瞰圖·1934)가 저절로 생각난다. 이상의 시는 논리에서 벗어난다.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이고, 현실에 대한 불안, 자아의 분열을 냉소적이며 포스트모던하게 표현한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 중에서]

시제1호/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오감도' 중에서]

아르보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은 그레고리안 성가와 르네상스 시대 폴리포니(다성음악)의 영향을 받아 단순하면서도 깊은 영성을 지닌다. 단선율이자 모노톤이다. 복잡한 선과 색채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마치 수도사들의 복장 같다. 수도사들의 옷은 몸매와 개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통옷으로 길게 만들고 머리카락을 가리도록 후드가 달려 있다. 이 몰개성하고 무심한 디자인이 현대에 와서는 복잡한 장식을 생략한 단순미와 부드러운 실루엣으로 인식된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수도복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거울 속의 거울'은 신비로우면서도 현대적이다. 단순한 3도 화음의 반복 위에 바이올린이나 첼로, 비올라의 느린 선율이 얹힌다. '거울 속의 거울'은 정적과 여백에 둘러싸여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를 따라 소실점에 닿는가 하면 다시 새로운 공간이 이어진다.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이 공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진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시대에 아르보 페르트는 과거의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단선율의 그레고리안 성가와 장식적인 음 처리를 제한하는 르네상스적인 작곡 태도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거울 속의 거울로 동일한 날들이 확장되기도 하고 미궁 같은 소실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지 않는 날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음악 역시 단순함이 주는 감동이 크다. '거울 속의 거울'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자동기술법처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침묵에 가까이 깊어지는 선율이 우리를 치유해준다. '거울 속의 거울'은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내는 재창조의 장소이다. 아르보 페르트는 시간과 무시간, 영원 속에 놓인 존재를 그리며 인간을 성찰한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구체화된 시간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시와 달리 아르보 페르트는 음악적 성찰을 통해 분명한 자기 각성의 지점에 도달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생활공간 속에서 늘 거울을 만난다. 자신을 점검하라고 걸려 있는 거울에 둘러싸여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진짜 나를 잊어버리고 거울의 눈, 카메라의 렌즈가 비춰주는 미화된 나를 본질로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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