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를 돌려줘]<하> 획일적 놀이터 만들기는 이제 그만…좋은 놀이터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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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을 시작하지' 'Book적Book적'… 아이들 참여한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대구시 억대 예산 들여 놀이터 조성해도 아이들 의견 반영 안돼
"아이들을 위한 기존 형식에서 벗어난 놀이시설이 필요"

21일 전라남도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7호 'book적book적'에서 아이들이 순서를 정해 짚라인을 타며 놀고 있다. 김세연 기자
21일 전라남도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7호 'book적book적'에서 아이들이 순서를 정해 짚라인을 타며 놀고 있다. 김세연 기자

[글 싣는 순서]

〈상〉 우리동네 어린이 놀이터 양극화

〈중〉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란

〈하〉 좋은 놀이터가 되려면

'엉뚱발뚱' '작전을 시작하지' 'Book적Book적'.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공공 어린이 놀이시설 이름이다. 순천에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놀이터가 있다. '놀이기구 없는 놀이터', '세상에서 가장 긴 놀이터' 등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기적의 놀이터'다. 지난 2015년에 조성된 기적의 놀이터 1호부터 시작해 벌써 7호까지 생겼다. 이곳은 순천 아이들의 자랑이자 순천을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고 있다.

◆어린이가 설계 참여한 순천 '기적의 놀이터'

기적의 놀이터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놀이터가 아닌 아이들의 생각이 반영된 놀이 공간이 필요하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허파라 불리는 순천만을 품고 있는 만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또한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중심이 됐다. 순천시는 어린이 놀이터 디자이너인 편해문 작가와 손을 잡고 지난 2015년부터 도심에 있는 노후된 근린공원 및 어린이 공원을 기적의 놀이터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1호부터 7호까지 설치된 기적의 놀이터는 각호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다. 1호 '엉뚱발뚱 놀이터'는 놀이기구가 없이 자연소재로만 조성됐고 3호 '시가모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놀이터다. 4호 '올라올라 놀이터'는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기 좋아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반영해 각양각색의 미끄럼틀을 설치했다. 구상 단계부터 놀이터의 주인인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한 결과다.

순천시는 어린이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지점토를 손에 쥐여줬다. '어린이 디자인 스쿨'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시설이 어떤 형태인지 지점토를 가지고 표현하게 해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은 놀이터 디자인에 그대로 반영된다.

놀이터를 조성한 뒤에도 어린이의 시선이 담긴다. 인근 유치원이나 학교 협조를 구해 4살~13살 사이의 어린이 40명으로 '어린이 감리단'을 구성하고 직접 놀이터를 사용해본 뒤 개선점이나 요구사항을 순천시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오상민 순천시 공원녹지과 주무관은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편"이라며 '놀이시설물의 높이가 있다 보니 땅에 닿았을 때 완충재가 아프다', '시설물이 흔들린다', '다른 놀이기구를 설치해달라' 등 각종 의견이 나온다"고 전했다.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7호에서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김세연 기자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7호에서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김세연 기자

◆뜨거운 반응…아이들은 각종 놀이 만들고, 부모들도 만족

매일신문 취재진은 지난 21일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기적의 놀이터 7호 'Book적Book적'을 찾았다. 이곳엔 모래놀이대, 어드벤처네트, 회전놀이대, 짚라인, 트램플린, 그네 등 놀이 기구 6종류가 설치됐다. 그중 최고 인기 놀이기구는 짚라인이었다. 하교 후 놀이터에 몰려든 10명의 아이들은 곧장 '짚라인' 앞에 줄을 섰다.

짚라인을 타는 방법은 각양각색이었다. 서서 타기, 거꾸로 타기 등 아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기구를 이용했고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서로를 밀어주며 자연스레 협동했다. 높은 곳에 올라간 한 아이가 내려오지 못하자 여기저기서 '도와줄게'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내려온 아이는 그들과 곧바로 친구가 됐고 다른 기구를 향해 우르르 뛰어갔다.

이유나(9) 양은 "학교 끝나고 동생이랑 친구들이랑 같이 온다. 무엇보다 집 근처라 너무 좋다"며 "아직 동생이 어려 놀이기구를 쉽게 이용하진 못하는데 친구와 함께 동생이 놀 수 있는 수준으로 놀이를 개발하고 있다. 친구들이 워낙 많이 오는 곳이라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놀이터 한켠에 설치된 큰 책장도 눈에 띄었다. 'Book적Book적'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실컷 뛰어놀다 잠시 숨을 고르며 책을 보는 등 자유자재로 놀이터를 즐겼다. 성홍림(9) 군은 "그물망으로 된 그네에 친구를 태우고 못 내려오게 미는 게 재미있다"며 "놀이터 바로 옆 도서관도 있어서 놀다가 책도 읽는다"고 했다.

같은 날 6호 '세상에서 제일 긴 놀이터'에서 만난 학부모 김모(39) 씨는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다른 기적의 놀이터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며 "일반적인 그네나 미끄럼틀이 아니라서 아이들이 더 좋아하고 놀이터 바닥에 있는 흙도 마음껏 만질 수 있어 자연체험교육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고 말했다.

앞으로 순천시는 모두 10개의 기적의 놀이터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올해 8호 놀이터 설치를 계획 중이다. 8호 놀이터는 순천만국가정원 안에 다른 놀이터에 비해 3배 큰 규모로 설치된다.

21일 전라남도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7호 'Book적Book적'에서 놀이터에 혼자 놀러 온 한 아이가 바닥에 설치된 트램플린을 이용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21일 전라남도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7호 'Book적Book적'에서 놀이터에 혼자 놀러 온 한 아이가 바닥에 설치된 트램플린을 이용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어른 시선만 가득한 대구시 놀이터

순천시처럼 공공 놀이시설을 만들기 위해 '어린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자체들이 늘어나지만 대구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억대의 예산을 투입해 놀이터 리모델링에 나서도 새로 탄생한 놀이터가 기존 놀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아 어린이들은 아쉬움을 안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어린이 놀이터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탓이다.

대구시 8개 구‧군에 따르면 각 구‧군청은 매년 낙후 놀이터 1~3곳을 대상으로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거나 1~2곳의 신축 놀이터를 짓는다. 놀이터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놀이터 한 곳에 2~3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문제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의 시선에 맞춰 놀이터가 설계된다는 점이다. 각 구‧군은 주민공청회를 열어 놀이터 신축‧리모델링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데, 공청회에서 어린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는 곳은 8개 구‧군 중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다수는 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공청회에 참석할 수 있는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어린이의 시선보다는 어른 입장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놀이터가 최종 선택지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대구 한 구청 관계자는 "주민공청회에 모인 분들 위주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며"일부 학부모들이 의견을 내긴 하지만 어르신들이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예산이 한정된 탓에 구입할 수 있는 놀이기구에도 한계가 있다. 새롭게 조성된 놀이터도 모두 비슷비슷하다"고 털어놨다.

전라남도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7호 'Book적Book적'에서 놀이터에 설치된 안내문. '보호자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김세연 기자
전라남도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7호 'Book적Book적'에서 놀이터에 설치된 안내문. '보호자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김세연 기자

◆집 근처, 스스로 놀이 만들어내는 놀이터 필요

전문가들은 놀이터가 놀이터답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요소들이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민 대구가톨릭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는 "대구의 놀이터 모습은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으로 전형화됐다. 미끄럼틀이 몇 개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만들 수 있도록 기존 형식에서 벗어난 놀이시설이 필요하다. 어른들이 관리하기 쉬운 놀이터가 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놀이 시설과 더불어 친구와 앉아서 쉬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휴식 공간, 책을 여유롭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요소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누구나 놀이터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 과제다. 접근성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부모와 놀이터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찾는 아이들이 적으면 금세 흥미를 잃게 된다.

실제 지난 2017년부터 공공 놀이터 조성에 큰 공을 들인 세종시는 자연 친화적인 독특한 콘셉트로 놀이터를 조성했지만, 차량 없이 방문하기 힘든 장소에 있는 탓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힘들다"는 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반면 순천시는 '접근성'을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해 아파트, 주거지가 인접한 곳으로 기적의 놀이터 부지를 선정했다.

김 교수는 "놀이터를 도심 외곽에 무조건 크게 만들어 아이들이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도록 만들어선 안 된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놀이터는 매일 집 근처에서 친구와 쉽게 만나 놀 수 있는 곳"이라며 "크지 않더라도 동네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면, 많은 어린이가 모이는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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