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68>부채꼴 창문을 낸 화선루 주인 강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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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강세황(1713-1791), '소정유경도(小亭幽景圖)', 1784년(72세), 종이에 담채, 21.5×41.5㎝,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강세황(1713-1791), '소정유경도(小亭幽景圖)', 1784년(72세), 종이에 담채, 21.5×41.5㎝,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강세황은 1784년(정조 8년) 72세 때 우연히 16자루의 부채에 그림을 그렸는데 3점이 전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소정유경도'는 강세황 만년의 노숙한 시서화 실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그림에 어울리는 제화시를 지어 그림에 써 넣었다고 했다.

시는 강세황의 문집에 '산정송석유인왕래도(山亭松石遊人往來圖)'로 실려 있다.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산정(山亭)을 유인(遊人)이 왕래하는 그림'이라는 제목대로 그림엔 높은 곳에 위치한 산정이 있고 소나무와 암벽 아래 유인이 있다. 그림 속의 시는 다음과 같다.

전래여후지(前來與後至)/ 먼저 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

참차불상수(參差不相隨)/ 시간이 어긋나 함께하지 못하네

소정유절경(小亭有絶景)/ 작은 정자에 절경이 있음을

해후선보지(邂逅先報知)/ 만나자마자 먼저 알려주네

산 위에서 내려 온 유인이 산 아래에서 이제 막 올라가려는 유인을 만나자 산정에 올라가 보면 절경이 있다고 귀띔해 주는 장면이다. 떠나는 유인과 이제 막 도착한 유인이 모두 옛 고사(高士)풍 옷차림이고 뒤따르는 동자의 쌍상투 튼 머리모양도 신선도 속에서 나온 것 같다. 무르익은 느긋한 필치에 청신한 담채를 곁들인 산수인물화다.

강세황이 시 제목에서 산정, 본문에서 소정이라고 한 이 정자의 이름은 화선루(畵扇樓)다. 당시로서는 한양 도성 밖 교외인 용산에 있었다. '그림 부채 누각'으로 이름 지은 것은 창을 사각형이 아닌 부채꼴로 냈기 때문이다. 부채그림을 많이 그렸던 강세황은 특이하게도 창호 디자인에 선형(扇形)을 활용한 것이다.

창문이 아니라 정자 자체를 부채꼴로 지은 '관람정'도 창덕궁 후원에 있어 합죽선 부채를 사랑한 문화가 건축에까지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창이 사각형 프레임일 때는 그냥 일상적인 창에 불과하지만 부채꼴이 되자 창밖의 풍경은 부채그림이 되었다. 강세황은 화선루에 앉아 이 부채꼴 창으로 부채그림 감상하듯 경치를 바라보았다. 풍경이 한 폭의 선면(扇面) 산수화가 된 것이다.

시에서 '소정유절경'이라고 한 절경은 바로 이 부채꼴 창문으로 바깥 경치를 감상하는 체험 그 자체였다. 이 진풍경은 계절과 날씨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생동하는 부채그림이라 이 그림 속 유인들처럼 구경하러 왕래하는 사람이 많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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