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장병환 씨의 아버지 고 장주호 선생(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 참가한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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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환 씨(사진 오른쪽)가 젊은 시절 아버지 고 장주호 지사와 함께 한 때를 보낼 때. 가족 제공.
장병환 씨(사진 오른쪽)가 젊은 시절 아버지 고 장주호 지사와 함께 한 때를 보낼 때. 가족 제공.

아버지, 며칠 전 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다녀왔습니다. 광복절이 되니 우리나라 독립에 힘을 보태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아버지를 회상하여 봅니다.

어릴 때 아버지의 모습은 천상 '경상도 남자' 그것이었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크게 이야기 안 하시고 자식들에게는 어찌보면 무뚝뚝하다가도 뒤돌아 정을 주시던 모습이었지요. 군위에 살던 어린시절, 내가 좋아하던 아버지가 사 오신 빨간색 가방을 매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친구들이 "남자가 빨강색이 뭐냐"고 놀리자 아버지는 테두리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주셨었죠.

또 아버지는 저를 가끔 사무실에 데려가서 여러 가지 곡식종자를 담은 유리병이나 강우측정기, 확대경 등을 보여주셨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넓은 세상이 있음도 함께 보여주셨었죠

항일독립기념탑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걸 확인한 고 장주호 지사. 가족 제공.
항일독립기념탑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걸 확인한 고 장주호 지사. 가족 제공.

그런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을 안 건 어른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참가하셨던 걸 아버지가 한참 뒤에 밝히셨었죠. 당시 일제의 식민지 수탈이 극에 달해가던 1943년, 안동농림학교에 9회 입학생이었던 아버지는 장병하 지사님, 박동열 지사님 등과 함께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의 단원이셨죠. 민족의식 고취 뿐만 아니라 안동 시내의 일본인들을 응징하려는 목표로 투쟁하시던 중 계획의 사전누설로 결국 옥고를 치르시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출옥하셨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자랄 때는 전혀 안 하시다가 나중에 관련 자료를 찾게 되면서 아버지의 독립운동 공적이 드러났었지요. 정말 그 때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고, 왜 말씀을 안 하셨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하던 당시를 말씀하실 때 "내가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와 혼인하신지 얼마되지 않으셨고 아버지가 중학생이던 시절 이미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형제자매도 있었던 시절이었을텐데 집안 장남으로서 큰 책임감을 가졌을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책임감을 조국에 대해서도 느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아버지가 평생 공직에서 일하시다 퇴직 후 16년 전 파킨슨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이런저런 일로 몸과 마음이 지치셨을 때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게 가장 아버지께 미안하고 평생의 슬픔으로 남습니다. 좀 더 잘 해드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 해드린게 너무 죄송합니다. 당시 공직에 계실 때 박봉으로 우리 사남매 키우셨고, 퇴직 이후에는 빚보증 문제로 경제적으로 어려우셨는데 그 때 장남으로써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신 뒤에야 후회에 눈물짓습니다.

직장에서 "직원들이 사고를 내더라도 너무 혼내지 말고 좋게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처세방법을 일깨워주셨고, "직장인은 쓰러지더라도 직장에서 쓰러져야 한다"며 책임감을 강조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저는 나름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에게 받은만큼 드린 게 없습니다. 살아계실 적 제게 용돈 좀 달라 하실 때 더 드리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되고 가슴아픕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헌신, 가족을 위한 희생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서 편히 지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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