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재난과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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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현철 논설위원
모현철 논설위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짧은 일탈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 가족은 거센 폭우를 뚫고 맨발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지하터널을 건너 겨우 반지하 자택에 도착한다. 집은 이미 물에 잠겨 있다. 딸은 시커먼 오물이 역류하는 변기 위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피해서 목숨을 건졌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달랐다. 8일 내린 폭우로 서울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이 숨졌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재난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다.

대구 지역에는 집중호우 때 침수 피해 발생 우려가 있는 반지하 주택이 24곳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지하 주택은 폭우뿐만 아니라 폭염에도 취약하다. 폭우처럼 폭염도 사회적 약자를 먼저 덮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고소득층(건강보험료 상위 20%)의 온열질환 발병률은 1만 명당 7.4명인 반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 수급자는 21.2명이 온열질환을 앓았다.

코로나19 역시 저소득층의 고용에 더 큰 타격을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사태 발생 첫해인 2020년 저소득층의 직장 유지율은 약 8.4%포인트(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소득 중위층의 2020년 직장 유지율은 약 3.2%p 떨어졌으며, 소득 상위층은 변화가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부 지방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남부 지방은 폭염에 시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는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의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에 따른 불평등 심화가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여야는 자중지란으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됐다. 이번 폭우와 관련해 정치권은 피해 복구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면서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지만 고물가, 코로나19 확산, 기후 이상 등 민생이 위기 상황이다. 우리 정치는 점점 더 국민들로부터 멀어지면서 외면받고 있다. 정부와 여야는 재난과 가난을 막기 위한 정책 경쟁에 나서야 한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는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다. 정치권도 재난과 가난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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