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아르바이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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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욱 시인, 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이선욱 시인, 대구문학관 상주작가
이선욱 시인, 대구문학관 상주작가

20대 초반의 일이다. 당시 나는 고깃집에서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이 열 개 남짓한 작은 식당이었으니, 말이 홀서빙이지 불 피우다가도 설거지하고, 주문받다가도 찌개를 끓이고, 상차림하다가도 불을 피우는 게 내 담당이었다. 말하자면 '알바'치고는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힘들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고깃집은 인근의 소문난 집이기도 해서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장부터 아르바이트생까지 죄다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하다 보니 소위 '파이팅'이 넘치는 식당이었고, 그런 곳들이 으레 그러하듯 하나부터 열까지 최대한 '고객 최우선 주의'를 내세우고 있었다. 가령 손님이 실수로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종업원을 부르기 전에 후다닥 달려가서 새 젓가락을 건네는 게 그 집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또한 그 집은 손님에게 절대 집게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기를 굽는 수고마저도 어디까지나 손님이 아닌, 식당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바닥에 떨어지는 젓가락부터 서빙이며 불이며 주방이며, 거기다 늘 열 개 남짓한 테이블에서 고기가 고루 익도록 신경을 써야 했고, 홀과 주방을 오가면서도 늘 종업원을 부르기 전에 나타나 집게와 가위를 번갈아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보니 종종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일한 지 반 년쯤 지났을까. 그날도 나는 홀과 주방을 바쁘게 오가다 어느 테이블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식당 일이라는 게 바쁘다 보면 끼니를 건너뛰기도 하는 법인데, 그날은 유달리 허기가 심한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될 줄 몰랐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돼지갈비를 가위로 자를 때였다. 그날따라 그게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고기 앞에서 군침이 넘어가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그게 정말로 참기 힘들 정도가 됐다. 그러다가 급기야 고기를 자르면서 손님 상 위에다 침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나는 허겁지겁 입가를 닦으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분위기를 파악한 사장까지 달려와 둘이서 대역죄인 마냥 고개를 숙였다. '고객 최우선 주의' 식당이었으니 대역죄를 저지른 것도 맞지만, 실은 미안한 마음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새빨개진 얼굴로 테이블을 닦고 상차림을 새로 준비하려는데, 그때 앉아있던 한 손님이 손사래를 치더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 집 갈비가 얼마나 맛있길래 종업원까지 군침을 흘려요? 상은 놔두고 식사나 하고 와요. 우리도 궁금해서 얼른 먹어봐야겠어요."

그러자 무슨 영문인지 다른 일행들도 웃으면서 도리어 우리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불현듯 화기애애해진 손님들을 뒤로 한 채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사장이 손수 챙겨준 밥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부끄럽기보단 울컥한 마음에 자꾸 목이 막혔다. 그 순간 손님들이며 사장이며 누구도 나에게 선뜻 욕을 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너무 다정하기만 했는데, 그런 다정함이 얼마나 낯설었는지 다른 건 다 생생히 기억나는 데도 그때 주방 한 구석에서 울먹거리며 먹던 밥맛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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