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눈보라 속에서 나귀 타고 산 속으로 떠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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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심사정(1707-1769), '파교심매(灞橋尋梅)', 1766년(60세), 비단에 담채, 115.6×50.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심사정(1707-1769), '파교심매(灞橋尋梅)', 1766년(60세), 비단에 담채, 115.6×50.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른쪽 위에 '파교심매'로 그림 제목을 써놓았고 '병술(丙戌) 초하(初夏) 현재(玄齋)'로 서명했다. 심사정이 60세 때인 1766년(영조 42년) 음력 4월 초여름에 그린 한겨울 풍경이다. 멀리 흰 봉우리의 설산이 솟았고 다리 좌우의 마른 나뭇가지마다 눈이 쌓였다. 쓸쓸한 겨울 풍경이지만 붉은색과 녹색 담채로 살짝 활기를 주어 화면이 어둡지만은 않다. 중국에서 수입된 '고씨화보'에 나오는 인물상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대작 산수인물화로 완성했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매화가 피었을까하고 장안을 떠나 산 속으로 꽃을 찾으러 갔다는 이야기를 그린 고사도다. 설중탐매도, 탐매도, 심매도 등으로 불리며 애호되었던 주제다. 원래 맹호연이 나귀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설산을 찾아간 것은 멋진 시를 짓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누구나 감탄할 명구를 남기고 싶은 것이 시인의 평생 소원이니, 추위쯤은 무섭지 않았을 터다.

시를 잘 짓는 데는 삼다(三多)와 삼상(三上)이 있다고 했다. 삼다는 간다(看多), 주다(做多), 상량다(商量多)로 남의 글을 많이 읽어보고, 스스로 많이 지어보며, 사색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상은 시상이 잘 떠오르는 세 가지 상황인데 곧 마상(馬上), 침상(枕上), 측상(廁上)이다. 말 위라는 건 여행할 때고, 베개 위라는 건 고민고민하며 퇴고를 거듭하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고, 마지막은 화장실에서 집중할 때라고 한 것이다. 북송의 문호 구양수의 주장이다.

시인 맹호연의 고사에 나중에는 더 고결한 뜻이 보태졌다. 역경에 굴하지 않는 매화를 한사(寒士)로 의인화하며 지식층이 자신의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다. 차가운 눈 속에서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를 세상의 영리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상으로 삼았다. 매화가 추위를 이기듯 궁핍과 소외를 견디며 소신을 지키려했다.

나귀를 탄 주인과 짐을 들고 따라가는 하인 모두 단단히 방한 채비를 했지만 추위를 다 막지는 못했으리라. 하인의 어깨에 멘 멜대에 짐이 세 보따리다. 길쭉한 것은 금(琴), 하나는 문방구, 하나는 음식물일 것이다. 매화꽃을 찾아 골짜기마다 다니려면 도중에 허기를 면해야 할 것이고, 다행히 눈 속에 핀 설중매 한 송이를 만난다면 이 한사와 반갑게 술도 한 잔, 시도 한 수, 음악도 한 곡 함께 나눴을 것이다.

비단 바탕이 좀 헤졌고 후대의 가필인 듯한 필치가 보이지만 심사정의 빛나는 실력은 분명히 살아 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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