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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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도 훌륭한 이정재, 함께해서 더 빛나는 정우성
폭력·혼란 도사린 80년대 대한민국…대통령 암살 시도 속 '스파이' 찾기
안기부 내 서로 의심하고 날선 대립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헌트'는 이정재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다. 배우의 첫 연출작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공감되는 서사와 리얼리티 넘치는 액션에 캐릭터도 살아 있다.

영화 배경이 1983년이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혼란과 폭력, 불안과 공포가 도사린 나라였다. 쿠데타로 권력의 끝에 오른 독재 대통령은 권력을 안착시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하수인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혼자 잘 살겠다고 비리가 만연하고, 북한은 남한을 호시탐탐 노렸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의심 또한 광기 수준이었다.

'헌트'의 이야기는 이 의심에서 시작한다.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발생한다. 첫 의심의 시작이다. 1급 기밀이 유출된 것이다. 안기부 해외팀 팀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팀장 김정도(정우성)가 조직 내에 숨어든 두더지 색출에 나선다. 동림이라고 불리는 의문의 스파이다. 둘은 서로를 의심하며 날 선 대립을 펼친다. 동림을 체포하지 못하면 둘 다 옷을 벗어야 할 상황이다. 사냥감이 될 것인가, 사냥꾼이 될 것인가. 둘의 동림 사냥이 시작된다.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헌트'는 인트로부터 긴장감이 넘친다. 워싱턴에서 한인들의 반대 시위 속에 벌어진 저격과 이은 총격전이 타격감 넘치게 펼쳐진다. 첩보액션물이라는 장르적 안내가 확실하다. 이어 첩보물의 밀고 당기는 긴장과 서스펜스를 열어간다. 안기부 내에 스파이가 있다면, 그건 상대방일 것이다. 아니면 만들어야 한다. 상관인 부장은 서로를 믿지 못하도록 이간질한다. 조직 내 모든 요원이 용의선상에 올랐던 의심은 점차 둘에게로 모아진다. 그럴수록 둘의 갈등은 첨예해진다.

'헌트'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스토리를 엮어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학살과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 북한 대위 이웅평의 미그기 귀순 사건 등이 스토리의 곳곳에 박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단순히 당시 사회상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당시 강남의 아파트 한 채가 3천만 원 할 때 6천억 원이 넘는 장영자 사기사건 등은 비리를 저지르는 권력의 부패로 연결시키고, 이웅평 귀순도 북한의 암호문 해독으로 이어지면서 스토리를 풍성하게 치장한다. 대학가의 시위 등 각종 세트와 소품 등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모두 1980년대라는 한국의 암울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잘 투영하기 위한 자료들로 영화 속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

'헌트'는 장르에 충실한 영화다. 워싱턴과 도쿄 등 다양한 해외 액션신이 등장하는데, 폭발과 총격의 음향이 좋아 시가전을 방불케 한다. 첩보전의 서스펜스도 끝까지 유지한다.

특히 박평호와 김정도라는 두 인물을 구축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사실 이 영화는 둘의 대립과 갈등이 생명이다. 둘은 당시 권력자의 하수인으로 시작하지만, 곧이어 신념에 찬 인물로 성장한다. 전혀 이질적이던 둘은 어느 순간 같은 지향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곧이어 거대한 음모가 싹튼다. 해외순방 중인 대통령의 암살이다.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헌트'는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이 한 스크린에 출연해 화제가 된 영화다. 둘의 불꽃 튀는 연기 외에도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톱 배우들의 우정출연도 눈요깃거리다. 황정민 등 많은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해 쏠쏠한 재미를 준다.

첩보물과 액션물의 경계 또한 상업영화로 손색없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박평호와 김정도라는 두 캐릭터의 서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묘사하지 못한 것이다. 둘의 표면적인 갈등이 지나치게 팽팽하고 반복적이다. 후반부 두 캐릭터가 서로 변모되는 과정에도 평행선을 이룬다. 특히 후반부에서 둘의 선택은 영화가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다. 성격 묘사에만 치중하다 보니 둘의 내면의 변화를 도드라지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헌트'는 정성이 느껴지는 영화다. 액션과 첩보라는 틀도 잘 유지시켰고, 만듦새도 탄탄하다.

시대는 동시대인들이 만들어낸다. 역사가 그려낸 인물이 아닌, 그 이면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만들어낸다. 영화는 평화라는 큰 이야기를 그들을 대신해 얘기해준다.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헌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배우 이정재는 처음 단순히 '헌트'의 출연 제안만 받았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읽고 매료돼 직접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4년간 공들여 각본을 수정하고 출연에 연출까지 맡았다. 여러 배우들의 우정출연과 함께 정우성을 잡은 것 또한 작품의 무게감을 더한다. 아주 성공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만하다.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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