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생 광주시민 신종인 국제보청기 대표 "삶에 지역감정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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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국제보청기·문화갤러리 대표…42년 광주살이 민간 달빛동맹 전도사
“작은 이문 남겨도 마음은 부자” 약자와의 동행 실천

대구 출신으로 42년 행복한 광주살이를 하고 있는 신종인 국제보청기 대표.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출신으로 42년 행복한 광주살이를 하고 있는 신종인 국제보청기 대표.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삶에 지역감정은 없다. '객지의 경상도 사나이'라 불리는 신종인(70) 국제보청기·문화갤러리 대표는 42년째 광주살이를 하고 있다. 이제 떳떳한 대구 출생 광주시민이다. 42년 광주살이는 '삶의 달빛동맹'을 실천해 온 세월. 29세이던 1981년 전두환 정권 당시 부인과 함께 광주에 살기 시작했다. 보험을 팔기도 하고, 이런저런 방황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인연들을 많나, 광주의 중견기업인으로 우뚝 섰다.

◆ 경상도 '세기' VS 전라도 '국제'

경상도에 세기보청기가 있다면, 전라도에는 국제보청기가 있다. 신 대표는 광주에서 1등 보청기 업체로 컸다. 그 과정에는 광주에서 만난 지인들의 도움도 컸다. 이규식 대구대 특수치료학과 교수와 한 수녀 그리고 친구 성만기 씨는 청각장애인들을 만나 보청기 사업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고(故) 노성만 전 전남대병원장도 청각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만들어줬으며, 대구 청년에 광주에 정착하는데 물신양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1982년에는 후천성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고(故) '운보' 김기창 화백을 만나는 등 문화예술인들과 각별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 때 김 화백으로부터 받은 그림은 지금도 집에 걸려있다.

사업 초창기에는 광주 KBS '영호남 파노라마'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후 국제보청기는 승승장구 광주를 대표하는 업체로 쑥쑥 커갔다. 이후 1998년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전 여사에게도 보청기를 지원해 그 명성은 더더욱 높아졌다. 각계각층의 지역 사람들과 교류는 더욱 두터워졌고, 국제보청기는 이제 광주 토종기업이 됐다.

◆'대구사람, 광주사람' 선입견에 불과

막상 살아보지 않으면, 막연한 선입견에 '와따~~~ 대구사람이 광주에서 우예 사노?'라고 핀잔을 준다. 호기심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신 대표는 청년시절에 광주로 향해 보란듯이 광주사람들과 어울리며 잘 살고 있다.

신 대표의 삶의 좌우명은 '신의·성실로 책임을 다하자'. 실제 그는 광주에서 살면서 지역감정은 염두해두지 않았고, 이렇게 저렇게 인연을 맺게 된 분들과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로 우정과 신뢰를 쌓아갔다. 이런 정직한 마음가짐은 성공의 토대가 됐다.

신 대표는 "광주 사람들이 5·18 민주화운동 등으로 희생당한 피해의식은 있지만 대구사람이라고 해서 절대 배척하지 않는다"며 "삶에서 중요한 것은 광주에 사느냐, 대구에 사느냐가 아니라 선의(善意)의 마음으로 책임감있게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간 달빛동맹의 선두주자 신종인 대표. 정운철 기자
민간 달빛동맹의 선두주자 신종인 대표. 정운철 기자

◆음악, 미술 등 문화애호가 기업인

신 대표는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문화 기업인이다. 특히 김기창 화백과의 만남은 미술에 대한 조예를 더 깊게 해줬다. 집에 있을 때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 취미다. 이런 문화에 대"한 애착은 지역 문화예술인을 돕는 일로 이어졌다. 17년 전 신 대표는 회사 건물 지하 1층에 60평 규모의 문화사랑방을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공간으로 무상 대여했다. 이 공간은 지금도 젊은 화가들의 모임 공간이자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다소 이색적인 얘기를 들려줬다. "이거 아십니까? 청각장애인들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시각이 더 발달해 있습니다. 때문에 사물이나 그림을 보는 눈이 더 뛰어납니다. 때문에 그림에 뛰어나 화가도 많고, 취미라고 하지만 상당한 감상수준을 갖고 있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아! 그렇군요."라고 기자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신 대표는 약자와의 동행도 30년째 실천하고 있다. 중국과의 수교 및 본격 교류 전부터 조선족 장애인 후원회장을 맡아, 휠체어 지원 등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뭐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이렇게 정부와 민간단체(YMCA)와 힘을 합쳐 보람된 일을 하는 거지요. ㅎㅎㅎ."

◆"작은 이문 남겨도 마음은 부자"

신 대표의 기업 마인드다. "대구 사나이가 이만하면 광주에서 잘 살고 있잖아요.". 부처님같은 미소에서 너털웃음이 절로 나온다. '혹시 지역감정으로 인한 황당한 에피소드 없었느냐'는 댓바람 질문에는 국민가수 조용필의 노래 '허공'의 첫소절을 들려줬다. "껌('꿈'을 살짝 바꿔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임)이었다고 생각하기에~~~."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이 순간, 기자는 개인적으로 이 분이 약간 삶의 경지에 이른 느낌도 받았다.)

그는 "황당한 일이 왜 없었겠냐? 다 얘기하려면 밤을 새어도 부족하지만, 항상 '인'(忍) 마음에 품고 산다"며 "광주에서 아름다운 인연과 소중한 추억만 되새기며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신 대표의 마음은 아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아들 신진배 씨는 청각학 박사학위를 받고, 3년째 보청기 지원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제 사업을 더욱 번창시키고,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는데 더 큰 성과를 낼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현재 국제보청기는 광주 뿐 아니라 서울지사와 순천, 장흥에도 사업소를 갖고 있다.

◆민간 달빛동맹의 선두주자 '영남맨 대장'

신 대표는 민간 달빛동맹의 선봉장이며, 대구-광주의 달빛(달구벌-빛고을) 동맹에도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15년 전 '서영회'(상서로운 영남인들의 모임)를 만들어, 지금도 잘 꾸려가고 있다. 이 모임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출신으로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에서 사는 사람들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신 대표는 "모임 회원들은 한결같이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삶의 만족도도 높다"며 "삶의 본질은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조언했다.

대구 능인고 27회 졸업생으로 영남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후 광주로 떠난 그는 "오고 가는데 6시간이나 걸렸던 예전과 달리 이제 2시간30분이면 왕래가 가능하다"며 "고향 대구 그리고 달빛 민간교류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지 고민중이다. 제가 양 도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구 사나이의 42년 행복한 광주살이'를 함께 해 주 아내에게도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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