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헤어질 결심’

남편 살해 의심 받는 아내와 형사의 로맨스…희생 전제된 연모 보여줘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그렇다. 재래시장에 널려 있는 재료로 미슐랭 별 다섯 개의 품위 있고 우아한 음식을 만들어 냈다. 클리셰를 답습하면서도 상투성을 부정한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고 묻는 대범함에 두 손 들었다. "그래, 대단하다."

'헤어질 결심'은 살인사건의 형사와 용의자인 아내라는 설정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문외한이라도 이 정도는 '감'이 온다. 남편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아내는 미모이고, 그녀는 사악한 팜므파탈이며 형사는 그녀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댄다는 '감'이다. 맞다. '헤어질 결심' 또한 그렇게 간다. 스릴러의 질감에 치명적 로맨스를 드레싱 쳐놓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지점에서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깎은 듯 절벽에서 등반하던 남자가 추락사한다. 젊은 아내 서래(탕웨이)는 슬퍼하지 않는다. "마침내"라는 말까지 내뱉는다. 기다렸다는 말인가. 서래는 당연히 용의 선상에 오른다. 형사 해준(박해일)은 그녀를 취조하면 할수록 또 다른 길을 걷는 자신을 보게 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해준은 아내가 있는 젊은 형사다. 자부심도 있다. 그래서 서래는 "품위 있다"고 말한다. 견고한 그는 서래를 통해 무너진다. 모든 로맨스가 그렇듯 운명적이다. 취조실에서 같이 초밥을 먹고 책상을 치울 때는 마치 부부 같다. 서래는 강인한 여성이다. 중국에서 밀입국한 조선족이라 한국어가 서툴다. 그래서 스마트폰 앱으로 소통한다. 공자의 '논어' 글귀를 중국어로 읊는다.

'헤어질 결심'은 모든 것이 명료하지 않다. 정훈희의 노래 '안개'가 영화 내내 흐른다.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를 하염없이 외로이 나는 간다'는 가사. 영화가 그렇다. 로맨스는 염탐하는 수준이고, 스릴러는 서스펜스가 모자란다. 모든 것이 아스라하다. 불면에 시달려 기억마저 명료하지 않다. 사랑이었을까. 애타게 부르지만 정작 "사랑한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안개만이 자욱한 거리를 걷는 것 같다.

영화는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를 특유의 미장센으로 증폭시키며 관객의 내면에 파도를 일으킨다. 광곽으로 찍은 한 면은 늘 비워져 있다. 거기에는 거울이나 유리가 있어, 또 다른 이미지를 반영한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호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언어도 명쾌하지 않다. 서래의 어눌한 한국어는 더욱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그 흔한 "사랑해"라는 말도 없다. 타오르지도 않는다. 그 흔한 사랑의 도식을 부정하면서 그 어느 것 하나 단정하지 않는다. 해준의 불면은 서래만이 고칠 수 있다. 망원경으로나마 그녀를 볼 때는 잠을 잘 수 있다. 차 안에서 수갑 찬 손으로 서래의 손을 만진 후 단잠을 자는 해준을 보면서 '사랑'이 아니라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서래는 두 번의 결혼을 하고, 두 번 모두 남편이 죽는다. 두 번째는 잔인하게 피살된다. 모두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그녀는 무죄다. 죄와 벌 또한 의미가 없다.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버텨낸 시간들이다. 자신을 지키며,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모든 것을 건 한 '현대인'이다. 그래서 일상화된 악녀 캐릭터를 벗어버린다. 바다 깊숙이 비밀을 묻기 위해 모래를 파헤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헤어질 결심'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9)의 여러 이미지를 오마주하고 있다. 음악도 히치콕 영화에서 즐겨 쓰던 현악이 강조되고,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제임스 스튜어트처럼 불면에 시달리는 불완전한 주인공에 거센 파도 등 여러 이미지들이 히치콕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틀만 그럴 뿐 '헤어질 결심'은 훨씬 깊은 이야기를 던져준다. 사랑의 원형이다. '현기증'의 킴 노박이 전해 준 타인의 매혹을 넘어 희생이 전제된 지극한 연모이다. 사랑하는 이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미결'이 되고자하는 필사적인 몸짓이다.

가장 달콤한 키스는 아직 해보지 못한 키스라고 했던가. '헤어질 결심'은 아직 우리가 겪어 보지 못한 지극한 사랑의 극지점을 선사한다. 특히 엔딩 장면의 비극미는 위세가 대단해 오로지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가지게 한다. '붕괴'될 정도다.

탕 웨이와 박해일의 연기가 뛰어나다. 영화가 오로지 두 사람에 의해 진행되니 둘의 비중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탕 웨이의 대사가 잘 안 들리는 단점이 있지만, 오히려 이국적 낯섦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신비롭다. 특히 박해일의 연기가 도드라진다. 그동안 판에 박은 듯한 느낌을 섬세하며 카리스마 넘치게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은 한국영화의 만듦새를 한 단계 올려준 박찬욱 감독의 수작영화다. 그래서 칸에서 감독상을 선사했겠지만 말이다. 138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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