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잔치는 끝났고 설거지가 시작됐다

최경철 세종취재본부장
최경철 세종취재본부장

30년 전 기자의 군 복무 시절, 부대 간부는 회식을 할 때 회식이 끝난 직후 설거지 등 뒷정리를 못 하게 했다. 회식이 끝나자마자 치워야 한다면 당일 회식 기분을 망쳐 버린다는 설명이었다.

멋진 결정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생각은 확 달라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와 켜켜이 쌓인 식기는 회식 때의 좋은 기억을 날려 버렸다. 조금 적게 먹고, 흥겨운 기분이 비록 덜하더라도 회식 뒷정리는 회식 직후, 회식 참여자들의 손으로 바로 마무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기자가 군 생활 때 회식 설거지 악몽을 소환한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 잔치를 열면서 국민들에게 기쁨을 줘야 할 윤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남긴 잔치 설거지로 정신이 없는 모양새다. 한국전력의 전기 요금 인상 요구안을 지난 27일 허용해 준 것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는 설거지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전의 경영 존립이 흔들릴 정도여서 어쩔 수 없이 올렸다는 괴로운 심정까지 내비쳤다.

경쟁자가 없는 전력 공급 독점 기업 한전이 왜 이리 됐을까? 전기 요금 인상이 발표된 27일,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한 정승일 한전 사장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따르면 "지난 정부에서 전기 요금 인상을 열 번 요청했지만 한 번 승인을 받았고, 전기 요금 인상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한전 적자가 30조 원 가까이 이르렀다"고 정 사장이 밝혔다고 한다. 동석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한전 적자 원인 분석도 권 원내대표는 전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 정부 5년 동안 원전 가동률이 82.7%에서 75%대로 낮아졌으며 낮아진 원전 가동률을 LNG발전으로 메웠는데 이 과정에서 11조 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는 것이다.

기자는 2019년 1월 인터뷰했던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당시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의 경고가 떠올랐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전력의 30%가 원전으로 충당된다. 신재생에너지는 급격하게 늘릴 수 없다. 원전 대체는 불가능한 얘기"라며 "석탄은 가격이 싸지만 가스는 같은 전력량을 생산할 때 원전 가동 비용보다 3배나 더 든다. 우리는 탈원전으로 인해 나쁜 공기를 들이마셔야 하고 더 비싼 전력 요금을 내야 한다"고 단언했었다.

기자가 문 정부 청와대를 출입했을 때 청와대 정책실 관계자들은 만날 때마다 "탈원전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일 뿐, 기존 원전 발전 체계 중단은 아니어서 발전 총량이 줄거나 전력 요금이 인상될 염려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경주의 월성 1호기는 국내 원자력 안전 규제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2022년까지 운영 기간 연장 승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정책에 따라 문 정부 3년 차인 2019년 말 느닷없이 영구 정지 결정이 나 버렸고 원전 체계는 크게 흔들렸다.

탈원전 외에도 소득주도성장, 근로시간 단축 논란에다 "우리 국민보다 북한이 먼저인가"라는 맹렬한 비판을 불렀던 대북 유화 정책까지, 문 정부가 벌였던 잔치에 대해 오래전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위험 신호를 발신해 왔다. 그러나 탈원전 질문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처럼 소귀에 경 읽기였다.

눈물의 설거지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은 있다.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인을 뽑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정치권에 대해 "노"(No) 하지 못했던 공직사회도 예스맨의 오명에서 탈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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