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신화' 김은숙 대구대동신협 전무 "고객 상대 배움의 연장"

"초심 잃지 말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나가라"

고졸 사원으로 입사해 전무까지 오른 대구대동신협 김은숙 전무. 이화섭 기자.
고졸 사원으로 입사해 전무까지 오른 대구대동신협 김은숙 전무. 이화섭 기자.

대학교 졸업장으로도 취업하기 쉽지 않다는 이 시대에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그리고 그렇게 취업한 여성이 30년 이상 그 직장에서 근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둘 다 긍정적인 대답을 내리기 쉬운 질문이 아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대답을 생각할 수 있는 '희망의 증거'는 있다. 김은숙 대구대동신협 전무가 그 증거 중 한 명이다.

김 전무는 1988년 고교 졸업 후 바로 대구대동신협에 입사했다. 나름 성적이 괜찮아서 대학 진학도 가능했었고 학교 선생님들도 대학 진학을 권유했지만 자식 둘을 모두 대학에 보내기는 쉽지 않았던 가정형편을 생각해 자신은 취업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김 전무는 사내에서 각종 '1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여성으로써 결혼, 출산 이후에도 회사를 계속 다닌 직원 1호이며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원까지 다닌 최초의 직원이기도 하다. 결혼, 출산 이후에도 은행에 계속 나오는 김 전무의 모습을 보며 어떤 거래 고객은 "아직도 결혼 안 했냐"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만 해도 결혼이나 출산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두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런 오해도 간혹 받곤 했죠. 하지만 제가 먼저 이렇게 길을 열어놓으면 후배들도 결혼이나 출산을 앞두고 회사를 다니는 게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책임의식도 나름 있었고요, 또 회사 내부적으로나 사회분위기 또한 결혼이나 출산 이후 업무에 복귀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도 도움을 받았었죠."

회사 덕분에 미뤘던 학업도 회사를 다니면서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영남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하는 김 전무는 "현재 대동신협 이사장님이 지금의 제 자리에 계실 때 직원이었던 저에게 '계속 공부해서 시야를 넓혀라'고 조언해 주셨고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덕분에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배려를 받은 만큼 김 전무 또한 업무에 매우 충실하게 임했다. 대구대동신협이 서문시장 내에 위치해 있다보니 시장 상인들과의 유대관계 형성이 업무에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김 전무는 시장 상인들과의 영업을 위한 술자리 등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접대를 하기도 했고, 여성 상인들과는 가족 이야기나 자녀 이아기를 통해 친분을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거래하는 상인 고객의 자녀들까지 김 전무의 고객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친화력이 지금의 김 전무를 있게 만들었다.

가족들 또한 김 전무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김 전무는 "남편이 육아나 아이 교육에 같이 신경을 써 주었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들 또한 도움을 준 덕분"이라며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해서 미안한 때도 많았지만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30여년 전 김 전무와 같은 위치에 있을 법한 후배 청년들에게 김 전무는 "초심을 잃지 말고 천천히 한 발짝씩 내딛어가라"고 조언했다.

"대동신협도 고졸 직원들을 다수 채용합니다. 지켜보다보면 아쉬운 게 다들 간절해서 입사하지만 초심이 잘 무너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신입에게 처음부터 막중한 임무를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거니와 은행의 경우는 창구에서 많은 고객을 상대해보는 것도 배움의 연장이더군요.

힘들어도 견디며 거기서 배우고 성장하는 후배들, 천천히 가더라도 예의와 인성을 갖추며 업무에 임하는 친구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구요. 그러니 입사 때 간절했던 그 초심 잃지 말고 천천히 한 발짝 씩 내딛어가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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