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정조시대 대(大)수집가 석농 김광국의 그림 솜씨

미술사 연구자

김광국(1727-1797), '강남춘(江南春)', 1796년(70세), 종이에 채색, 28.8×19.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광국(1727-1797), '강남춘(江南春)', 1796년(70세), 종이에 채색, 28.8×19.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광국은 정조 때 미술품 수집가로 의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신도 의관을 지내며 내의원의 가장 높은 자리인 수의(首醫)까지 올랐다. 그가 산 18세기는 훌륭한 화가도 많았지만 미술품을 감상하고 비평하는 일이 유행을 이뤘고 수집가 또한 많았던 미술의 세기였다. 그 중에서도 김광국은 수집의 수량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대(大)'자가 마땅한 이로 평가된다.

2015년 번역돼 나온 '김광국의 석농화원(石農畵苑)'을 읽으며 미술을 대하는 그의 애정 어린 마음을 곳곳에서 느꼈다. 예를 들면 정황, 강이천의 그림을 소장하며 이렇게 써놓았다.

"정황은 바로 겸재 정선의 손자로 그의 그림은 할아버지에 비하면 실로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을 강이나 바다와 비교하는 것과 같으므로 화가 집안의 전통을 그에게 요구해선 안 된다. 그러나 조부의 전통을 이은 것이 귀하므로 한 폭을 거두어 소장했다."

"강이천은 표암 강세황의 손자로 어릴 적부터 문장을 잘 지어 이름이 났고, 일찍이 어린 아이 때 입시해 정조임금의 칭찬을 크게 받았다. 근래 그린 대나무 그림을 보니 매우 빼어난 운치가 있다. 쉼 없이 그려나간다면 동파(소식)와 양주(문동)의 경지도 도달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눈을 비비며 기다릴 것이다."

강해(江海)와 제잠(蹄涔) 같은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광국이 정황의 작품을 구입한 것은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우러름 때문이고, 강이천 '묵죽'의 일운(逸韻)을 알아보았기에 아직은 미숙한 초기작을 컬렉션에 넣으며 '오차식목이대지'(吾且拭目以待之)라고 했다. 김광국은 꼼꼼하고 세심하게 화가와 장르를 빠트리지 않은 미술사적 수집을 했고, 모은 그림 하나하나에 화평(畵評)을 기록해 남긴 한국 미술사의 위대한 공헌자다.

김광국은 간혹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강남춘'은 '병진(丙辰) 수하(首夏) 만방(漫倣) 무원(茂苑) 두기룡(杜冀龍) 강남춘(江南春) 필(筆)'로 제화가 있어 1796년(정조 20년) 4월 명나라 두기룡을 방작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물과 하늘은 산수화의 관례대로 여백으로 처리하면서 언덕과 땅을 옅고 화사하지만 든든한 질감의 담채로 메운 특이한 화풍이다.

중국의 강남은 수향(水鄕)의 수려한 풍광과 아울러 예술의 전통이 오랜 고장이어서 조선에서도 지리적 장소라기보다 문화적 영토로 인식돼, 강남의 봄을 그린 강남춘도는 문인들에게 선망과 동경의 시공간을 표상하는 그림으로 받아들여졌다.

도연명의 산문에서 유래한 도원도(桃源圖)가 가혹한 세금과 폭정이 없는 보통사람의 이상향을 그린다면, 당나라 두목의 시 '강남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강남춘도는 새로운 버전의 도원도인 문인의 낙원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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