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구한민(연세대 도시계획및개발연구실 연구원) 씨의 외할머니 고 최권시 씨

엄마 입원 땐 맛과 똑 닮은 밥상 차려 주시고 고교 땐 용돈 넉넉히 챙겨주셨죠

구한민 씨 외할머니 고 최권시 씨의 결혼 기념 사진. 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고 최권시 씨. 가족 제공.
구한민 씨 외할머니 고 최권시 씨의 결혼 기념 사진. 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고 최권시 씨. 가족 제공.
구한민 씨 외할머니 故 최권시 씨의 칠순 사진. 가족 제공.
구한민 씨 외할머니 故 최권시 씨의 칠순 사진. 가족 제공.

바닷가에 홀로 선 등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두커니 뱃길을 밝힌다. 평소 등대의 쓸모를 잘 모르고 살아가지만, 망망대해에 나서면 그 소중함을 이윽고 깨닫는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외할머니가 그 등대같은 분이셨다. 평소 감사한 마음을 충분히 가지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못 뵌다고 생각하니 따뜻한 마음을 나눈 기억이 더욱 애틋해진다.

일찍이 외할머니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한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에 터전을 잡으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셔서 뵌 적은 없지만, 그림, 서예, 분재, 미장 등등 못 하는 게 없으셨던 멋쟁이 외할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다.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게 되었고 외할머니는 혈혈단신으로 4남매를 길러내셨다.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의 4남매 중 맏딸이다. 이모와 삼촌들은 외지로 나가 생활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리 가족이 외할머니와 붙어 지내게 되었다. 더구나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게 되어 외할머니와 합가를 하여 지낸 적도 있었고, 오롯이 30여 년을 함께 보내왔다. 오랜 시간만큼이나 많은 일화가 있었지만,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片鱗) 세 조각만 꺼내어본다.

첫 번째 조각, 초등학교 시절. 매주 토요일은 외할머니 집에 친척이 총집합하는 날이었다. 이모와 삼촌들이 외지에 살긴 했지만,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매주 모일 수 있었다. 특히나 '놀토'만 되면 일찍부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저녁밥을 함께 먹곤 했다. 단독주택이었던 외할머니 집이 넓진 않았지만, 다 같이 옹기종기 잠을 잘 순 있었다. 외할머니는 별말씀도 없으셨지만, 항상 소파에 앉아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조각, 중학교 시절. 엄마가 몸이 안 좋아 한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얼마간 지내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되어 불안해했다. 외할머니가 섬세한 성격은 아니시지만, 엄마의 맛과 똑 닮은 밥상을 차려주시고 하루 종일을 함께 보내주시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위로가 되었다. 그때 일요일마다 외할머니랑 같이 보던 전국노래자랑은 여전히 나의 애청 프로그램이다.

세 번째 조각, 고등학교 시절. 읍내에서 공부를 잘해 시내로 '유학' 간 나는 그곳에서도 곧잘 하여 좋은 성적을 받았다. 집과 거리가 멀어 기숙사에 지내게 되어 외할머니를 자주 뵙진 못했지만, 손자가 공부를 잘한다며 기뻐하시고 만날 때마다 용돈도 넉넉히 챙겨주셨다. 수능을 마치고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연락을 드리자 여기저기 자랑을 하시며 좋아해 주셨다. 잘은 모르지만, 당신과 같이 혈혈단신으로 손자를 길러낸 엄마가 자못 자랑스러우셨을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외할머니는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고, 나도 어느덧 서른 남짓이 되었다. 하지만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게 되어 취업은 늦어졌고 외할머니에게 오롯한 용돈을 드려보지 못했다. 그래도 명절마다 곶감을 사드리고 가끔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드린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 된다.

아직 요양병원에 계실 것만 같아 영상통화를 드리면 받으실 수 있으실 것만 같아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저번 달만 해도 통화로 또렷이 나를 기억해주셨기에, 외할머니와의 기억을 추억으로 남겨야만 한다는 것이 실감나지도 않는다.

외할머니는 마지막 말씀으로 나비처럼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다고 하셨다. 어느 4월의 봄날, 외할머니를 양지바른 곳에 모셔드리고 오는 길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더 서글펐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슬퍼하고 싶지는 않다. 나비처럼 새처럼 날아 하늘에 간 외할머니가 여전히 등대와 같이 우리의 앞길을 지켜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외할머니, 안녕!"

구한민 씨 외할머니 故 최권시 씨 장례식 사진. 가족 제공.
구한민 씨 외할머니 故 최권시 씨 장례식 사진.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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