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규의 행복학교] 굿가이 콤플렉스

세상 사는 것이 참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전달 방식이 문제인지 아니면 노력이 부족해서인지 도무지 생각조차 못 한 피드백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잘 해주고 기대하지 말자며 지난날 후회 속에 다짐했던 자신을 몰아세우기에 바쁘다.

한때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문제는 바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의 상처받는 마음이 문제이다.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사랑의 우물이 있다면야 무엇이 문제이겠느냐마는 친절도 사람의 문제인지라 때로는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고 난 후 보따리를 요구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 그 아픔을 무시하며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을 살며 보이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도 가지지만 때로는 적이라는 이름도 어쩔 수 없이 가질 수밖에 없다. 이즈음에서 어릴 적 무협지에서나 본 듯한 말 '인자무적(仁者無敵)'이 기억난다. 인자무적,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는 이 말을 풀이하면, 사람이 항상 따뜻하고 친절하면 적이 없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각자의 경험에 맡기기로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불만과 스트레스라는 찌꺼기는 어떻게 치울 것인가? 친절은 하되,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비결에 관하여 한동안 연구한 적이 있다. 수많은 비책 중에서 내 마음에 자리 잡은 한 가지 대답은 바로 공자가 말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4글자에 들어 있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무엇이든 과한 것은 차라리 부족함만 못하다는 뜻. 즉 친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고 그 친절이 자신의 기분이나 환경까지 변화시킬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서는 안 된다. 굿가이 콤플렉스(Good Guy Complex) 라고 들어보았는가? 쉽게 말해 굿가이 콤플렉스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자기가 할 말을 못 하고, 부하 직원에게 불만이 있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상대를 미워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라고 한다.

불만은 있는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런 굿가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최선을 다해 그에게 몰입하지만, 나중에 상처를 쉽게 받는다. 이에 대하여 나는 호의(好意)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7:3의 황금비율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의 말이나 표현을 모두 하지 말고 7할만큼만 쓰고 나머지 3할은 남겨놓아야 자신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상대방과의 관계에서도 감정 범퍼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항상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잘해준다면,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가치를 100만큼 알지 못한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고 때로는 혼자 남겨두는 시간을 주는 것, 3할의 시간은 자신에게도 그리고 상대에게도 남겨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명심보감에서도 맥락을 함께하는 구절이 있다. "사람을 만나 대화할 때는 말을 10분의 3만 하고, 진짜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으면 안 된다. 호랑이 세 마리의 입을 두려워 말고, 사람이 두 개의 모습을 가진 마음을 두려워하라."

사랑에 빠진 연인이 상처받는 이유 중 대부분은'내 마음 같지 않은 당신' 때문이다. 너무 가까이서 가슴에 있는, 눈에 보이는 모든 말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다 해 버리고 그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명심보감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들이 또 누가 있을까 보면 자식을 향한 끝없는 짝사랑에 빠진 엄마들이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들이라 자신의 모든 것을 언제든 내어줄 각오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엄마들을 볼 때마다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 외국 친구들을 비교적 많이 만나는 나는 한국인과 외국인의 사고를 구분할 때, 그 내면에는 엄마의 절대적인 사랑이 기초한다고 말한다.

◆경청과 공감

한국인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정이 많고 사람에 민감하다. 좋은 면으로 보면 인간미가 넘치는 민족이라 볼 수 있지만, 정작 개개인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반대로 인정미는 좀 없을지 몰라도 외국인들은 매우 독립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리고 마음에 있는 말을 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외국인들과 이야기할 때 내가 주는 마음에 비해 때로는 쌀쌀맞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외국인들은 우리 한국인들보다 상처를 덜 받는 듯하다. 마음을 쉽게 보이지도 않고, 선뜻 모든 것을 오픈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이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경청(傾聽)과 공감(共感)이다. 그들은 70%를 듣고 30%에 반응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7:3의 법칙과 같다. 아이러니하게 이 경청과 공감에는 공통으로 마음 심(心)자가 들어있다. 즉 온 마음을 다해서 듣고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사랑과 친절 역시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복잡한 세상, 내 마음의 결과 같지 않다면 더이상 만남을 지속시킬 의미를 찾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 단순하게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계산기보다 더 복잡한 계산기를 머리와 가슴에 담고 각기 계산을 한다. 머리로 하는 정량적 분석과 가슴으로 느끼며 계산되는 정성적 분석. 이 두 가지 분석의 통계 평균으로 자신이 준 것과 받은 것의 셈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준 부분에 대비하여 받을 때 금액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 정량적 평가는 머리로 하고, 그 가치에 대하여는 가슴으로 정성적 평가를 한다는 말이다.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이러한 복잡한 공식이 싫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본바, 많은 사람이 좋든 싫든 이러한 논리에서 관계가 이어져 가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준 사람은 더 주었다고 생각하고, 받은 사람은 덜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잘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주어야 기본은 했다고 생각하고, 받을 때는 조금 적게 받아도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굿가이. 이름만큼이나 좋은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내 마음의 찌꺼기를 방치한 채 흘러간 아까운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잘해주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을 안 만나거나 소극적으로 만남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잘해주더라도 적게 오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것, 그리고 어쩌다가 더 많은 기쁨을 선물로 받을 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최경규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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