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책] 사찰 속 숨은 조연들

노승대 지음/ 불광출판사 펴냄

경주 석굴암 사천왕상. 왼쪽은 다문천왕, 오른쪽은 지국천왕이다. 문화재청 제공
경주 석굴암 사천왕상. 왼쪽은 다문천왕, 오른쪽은 지국천왕이다. 문화재청 제공

사찰이 하나의 무대라면,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단연 '부처'다. 하지만 그곳엔 시선을 끄는 '황금 조연'이 여럿 있다. 사찰의 초입 천왕문에서 울긋불긋한 갑옷을 차려 입고 무서운 얼굴로 중생을 위압하는 듯한 모습을 한 사천왕, 금강문 좌우에 서서 무기를 지닌 채 성난 표정을 짓고 있는 금강역사 등이 그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사찰이 아니더라도 만화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서 즐겨 만났던 친숙한 얼굴이다. 웹툰 원작의 영화 '신과 함께'가 대표적이다. 여기엔 주인공인 망자(亡者) 자홍의 생전 선악(善惡)을 심판하는 명부의 존재로 염라대왕을 필두로 한 시왕이 등장한다. 그밖에도 영화 '사바하'엔 악귀를 잡는 악신으로 사천왕이 나오고, 인기 만화 '극락왕생'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문수보살 등이 등장한다. 작품의 상징적 의미를 위해 이들 조연의 이름을 제목으로 쓴 경우도 있는데, 영화 '아수라'나 '야차'가 대표적이다.

이렇듯 친숙하고도 낯선 존재들은 불교의 세계관을 응축한 공간 안에 조각이나 그림으로 봉안돼 나름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고통에 신음하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저마다의 임무와 역할을 수행한다.

이 책은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로 2020년 한국불교출판문화상 대상을 받은 지은이의 후속작이다. 사찰문화유산 답사 전문가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종교와 역사, 신화와 설화를 종횡무진 오가며 이들 사찰 속 조연의 진기한 내력을 풀어낸다. '명부전(冥府殿)의 존상들', '절집의 외호신', '보살과 나한' 등 3부로 나눠 다양한 사진과 함께 이들의 기나긴 역사를 들려준다.

이 책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기원전 인도에서 서역, 중국을 거쳐 우리 땅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오랜 기간 광대한 지역을 건너오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변모했다. 해당 문화권에서 숭앙된 타 종교나 민간신앙은 물론, 전쟁이나 기근 등 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사건 등의 영향을 받아 문화적으로 융합된 결과였다.

대표적인 예로 사천왕상을 들 수 있다. 사천왕의 발밑에 있는 생령상의 경우 16, 17세기엔 머리에 뿔이 솟거나 이빨이 튀어나온 요괴의 모습이 주류였던 것과는 달리, 18세기 초반에 이르면 관복을 입거나 관모를 쓰는 등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이나 관리의 수탈이 점점 심해지면서 이들을 벌주고 싶은 백성의 마음이 사천왕상의 인간형 생령좌로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예로 2, 3세기 간다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헤라클래스의 모습을 닮은 금강역사가 등장하는 부조가 있다. 신화 속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뒤 사자머리 가죽을 투구처럼 쓰고 다녔는데, 이 부조엔 짐승의 가죽을 쓴 금강역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금강역사상이 많이 제작됐던 간다라 지역엔 그리스 문화 영향으로 신화 속의 막강한 용장 헤라클래스가 널리 알려져 있었고, 부처님의 호위 무사로 이보다 더 좋은 모델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40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다니며 그러모은 지은이의 이야기보따리가, 진귀하고도 흥미로운 역사적 경험을 선사한다. 좀 더 깊이 있게 사찰의 상징물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456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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