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이정희(의성군 단밀면 생송3리 이장) 씨의 남편 고 하규시 씨

갑자기 떠난 당신, 하나에서 열까지 멈춰 버린 사실 이제야 깨달았어요…당신 보란 듯이 잘 살겠습니다

남편 고 하규시 씨 회갑 기념으로 중국 여행갔을 때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남편 고 하규시 씨 회갑 기념으로 중국 여행갔을 때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당신!

강한 빗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낮에 누렁이란 놈이 자기 밥그릇과 자기 집을 자꾸 도랑에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다시 꺼내 오기도 한두 번이지 자꾸만 도랑에 밀어 넣는 누렁이란 놈이 미워서 밖에 그냥 두었습니다. 밤에 저 많은 비를 맞고 있을 누렁이 생각에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비옷을 챙겨 입고 나가보았습니다. 누렁이란 놈 냉큼 집안으로 들어가네요. 다음에 또 그러면 다시는 안 들여보내 줄 거야, 한소리 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안방에 당신이 없네요. 항상 그 자리, 그곳에 있을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떠난 당신.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풋풋했던 이십대에 만나 숱하게 많은 날들을, 기쁨도 슬픔도 함께 했지요. 좀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하고 잘 챙겨 주지도 않으면서 자꾸 요구만 하고 원망만 했네요. 지난날들이 가슴 먹먹하게 후회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당신이 해주지 않으면 모든 게 멈춰버린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아요. 당신이 떠난 후 하루하루 지나면서 더욱 실감이 납니다. 혼자 할 수 있어, 혼자 해낼 거야, 다짐을 해보지만 날이 갈수록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겁이 납니다.

혼자서는 힘이 들어도 잘해 나가야겠지요. 지켜봐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당신은 칭찬을 잘하잖아요. 남은 인생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살다가 당신 곁으로 갈게요. 당신이 걱정 하셨던 논도 대충 정리했어요. 올해는 혼자 벼농사는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뭐든 심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1998년 부부가 함께 제주도 여행갔을 때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1998년 부부가 함께 제주도 여행갔을 때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과수원엔 사과 꽃이 한창이에요. 흰 눈이 내린 것 같아요. 얼마나 사과가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약을 쳐주려고 해요. 물 새는 물탱크는 고쳐 놓았고 물 호스도 만해 아재가 밸브를 사와서 잘 고쳐놨어요. 혼자서도 차곡차곡 하나하나 잘 해나갈게요. 도와주세요. 당신!

당신 알죠? 내 생활신조는 순응하며 살자, 잖아요. 살아오면서 마음대로 안되는 게 너무 많았잖아요. 그럴 때는 낙담만 하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이길 아니면 저길, 앞길이 아니면 뒷길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잘 해쳐서 갈 거예요. 당신 없는 빈자리가 너무 크지만 어딘가에서 당신이 미야! 하고 부를 것만 같아요. 안 울려고 다짐을 하고 애를 쓰지만 참기 힘이 들면 애들처럼 울기만 한답니다. 이 놈의 눈물샘은 아직 마르지가 않네요.

당신!

이제 울지 않고 잘 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힘든 길을 나 혼자 가게 한 당신을 가끔 원망도 하면서 당신 보란 듯이 잘 살아가겠습니다. 잘 해낼 거니까 다음에 만나면 칭찬해주세요. 미야, 잘했다. 장하다, 하고요. 밉지만 정말 사랑했던 당신. 그동안 정말,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힘들고 고달팠던 일 다 잊고 편히 쉬세요.

당신의 아내 이정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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