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의 추억의 요리산책] 석포 옛길에서 만난 ‘명이’

명이쌈밥
명이쌈밥

섬은 신비했다. 곳곳에 감춰둔 숨은 그림을 어디서 찾을까. 세 번째 발을 디뎠건만, 나는 아직도 울릉도를 알지 못한다.

지인의 고향,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온통 바다 빛깔이었다. 배를 타고 읍내 시장에 간 엄마가 늦도록 오지 않던 날, 어린 그녀는 방파제를 오르내리며 엄마를 기다렸다. 어둠이 사위를 덮자 바람에 흔들리는 산죽이 귀신 울음소리를 내었다. 무섬증에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구세주였다.

섬 날씨는 수시로 변덕을 부렸다. 잔잔하던 바다에 풍랑이 일어 뱃길이 끊긴 것이었다. 엄마는 읍내 친척 집에서 하룻밤 묵고 와도 되었을 테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식 생각이 앞섰다. 족히 대여섯 시간이나 걸어온 험한 산길이 멀지만은 않더라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걸었던 옛길을 더듬었다. 섬 둘레 150여 릿길을 왕래할 때 배를 타고 이동했으나, 폭풍우로 배가 뜨지 못하면 산길을 넘어서 다녔단다. 화산지형의 완만한 산길을 돌아서니 험준한 오르막이 굽이 굽이이다. 북면과 울릉읍을 연결하는 석포 옛길의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에 어지럼증이 난다. 신생대 식물과 고로쇠나무, 너도밤나무 아래에 미나리냉이가 속살댄다.

그런데 저기 좀 봐. 명이나물이다. 드디어 석포 옛길에 숨은그림찾기가 펼쳐진다. 가파른 비탈 아래 나풀대는 명이 이파리가 군락을 이루었다. 그런데 어쩔거나. 손이 닿지 않는다. 수직의 낭떠러지는 인간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았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해안가 돌무더기에 굴러떨어질 판이다.

처음 울릉도에 이주한 사람들은 산마늘을 캐서 양식으로 삼아 명(命)을 이었다. 춘궁기에 생명을 이어주는 소중한 먹을거리, 울릉도 주민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명이나물'이라 불렀다. 명이는 구황작물이었고, 소화불량이나 복통 등에 사용한 약용식물이었다. 그러나 명이를 뜯다가 굴러서 명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명이는 명을 이어준 고마운 식물이지만, 반면에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욕심이 과해지면 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산마늘(명이)의 본초명은 '각총'이다. 맵고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활혈, 해독작용을 한다. 속명은 라틴어의 '맵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유럽에서는 '곰의 마늘', 일본에서는 수도승이 즐겨 먹는다 하여 '행자마늘'이라고도 한다. '본초강목'에는 마늘을 '산'이라고 부르는데, 산에서 나는 것은 산산, 들에 나는 것은 야산이라고 하였다. 혹여 명이 뿌리가 마늘 모양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식물 잎과 줄기 전체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이다.

지인의 어머니가 걸었던 석포 옛길에서 만난 명이. 명이는 어머니의, 그리고 그 어머니의 숨찬 발걸음 소리를 부둥켜안았다. 비탈에 쏟아지는 어머니들의 애환을 부여잡고 절벽 돌 틈 사이에 뿌리내렸을 거다. 그래서 더 아리고 아린, 맵디매운 섬 나물이 되었나 보다. 명이는 울릉도 숨은그림찾기 중의 하나였다.

Tip: 명이는 자양강장, 항산화, 살균, 면역력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알리신 성분이 위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위가 약한 경우는 주의한다. 명이는 따듯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과하게 먹지 않도록 한다. 술, 환(丸), 장아찌, 김치, 튀김, 무침, 쌈밥, 샐러드, 페스토(pesto) 등으로 활용, 특히 돼지고기 먹을 때 쌈으로 이용하면 좋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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