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중대재해법'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중언 경제부 기자

신중언 경제부 기자
신중언 경제부 기자

시행되기도 전에 무수히 많은 말을 만들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현장은 알싸한 긴장감과 부산스러움 속에서 정비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담 조직과 전문 인력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포스코는 지난해 연말 정기 인사를 통해 직원들의 건강 보호·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보건기획실'을 신설했다. 현대제철도 안전보건총괄 부서를 신설하고 상무급 인사를 임명했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 역시 '안전 담당 임원'을 신설하거나 각자 대표 체제를 통해 안전사고 책임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고려아연은 안전 관리에 3천500억 원을 추가로 투자하고, 안전 전담 인력을 28명에서 108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유비무환'이라 했건만, 산업계가 여전히 불안감을 덜지 못하는 이유는 중대재해법이 품고 있는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의무를 충족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탓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지역 중소기업들에는 이조차도 먼 나라 이야기다. 전담 조직 구성은 고사하고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것조차 이들에겐 버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우리도 대기업처럼 컨설팅을 받고 전문 인력을 채용할 여건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상 유지도 벅찬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그야말로 안개 속을 걷는 기분입니다."

최근 만난 지역의 한 섬유 제조업체 대표는 중대재해법 관련 준비 상황을 묻는 말에 이처럼 답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입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무거운 짐이 주어진 셈이다. 이는 대다수의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50인 이상 중소 제조업 322개사를 대상으로 한 '시행일에 맞춰 의무 사항 준수 여부'에 대한 질문에 기업의 절반 이상(53.7%)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특히 50~100인 기업의 경우 60.7%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해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부담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도 마찬가지인 분위기다. 대구의 아파트 건설 현장 중에선 27일부터 약 2주가량 작업을 중단하기로 한 사업장이 속출하는 등 자포자기 수준의 대책도 나오는 실정이다. 대구고용노동청에 따르면 27일부터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 대구 사업장은 모두 1천624곳으로, 이 중 368곳이 건설업 현장이다.

일터로부터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법 제도의 취지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좋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법의 연착륙을 이끌 시도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이 중대재해법에 대응할 여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중앙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준수하는 데 필요한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 컨설팅 지원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계는 지금 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정말 한 건의 인명 사고라도 더 줄이기 위함이라면, 정부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현장에 안착해 더는 아까운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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