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대구에서 자식 키우는 정치인, 어디 없나요

김근우 정치부 기자
김근우 정치부 기자

대구에는 출마자들이 온통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특이한 선거가 있다.

'밑바닥'을 훑으며 유권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KTX에 오른다. 서울 중앙당을 찾아가 이름을 알리고, 공천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누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지'를 경계하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정치권의 모든 관심이 대통령 선거에 쏠려 있지만 대구에는 다른 선거도 있다. 대통령 선거와 같은 날 곽상도 전 의원의 빈자리를 메꿀 중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린다. 또 6월에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을 뽑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잡혀 있다.

그러나 보궐선거가 약 2개월, 지방선거는 5개월여 남은 현재까지 지역에서 뚜렷한 활동을 하는 이들은 드물다. 전통적으로 대구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 국민의힘은 출마 예정자들만 수십 명인데 지역민과 가까이서 소통하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저 '위'를 쳐다보고 있다. 전략공천에 대한 지역 정치인들의 불안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평생 서울에 살다가도 보수 정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꽃가마를 타고 고향에 내려왔던 '주말만 TK' 의원들의 기억이 생생한 탓이리라.

그러고 보면 그동안 대구 정치인 중 상당수가 이런 코스를 밟았다. 대구나 경북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대구에서 졸업한 뒤 서울 명문대로 향한다. 고시에 합격해 고위 공직이나 판검사를 지낸 뒤 정치권에 입문해 공천을 받는다. 물론 거주지는 서울이고, 다수는 강남을 비롯한 부촌에 산다.

주말이면 대구에 내려와 '지역구 관리'를 하고, 평일에는 주로 서울 집에서 지낸다. 서울에서 낳아 기른 자녀들은 대구에 아무런 연고 의식이 없다. 은퇴하면 수도권에서 노후를 즐기고, 지역에는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

이들이 정말 '대구 사람'일까? 아니라고 본다. 최소한 자녀를 낳은 순간부터 그 사람의 연고지는 '내가 태어난 장소'가 아닌, '내 아이가 살아갈 장소'라고 봐야 한다. 스스로의 아들딸조차 대구가 아닌 서울에서 키웠고, 또 서울에서 살아가게 할 사람들이 수도권 집중과 지역 청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표리부동하게까지 느껴진다.

대구 서구에서 4번이나 금배지를 달았던 강재섭 전 한나라당 의원은 말년에 경기도 분당으로 지역구를 옮겨 '15년 분당 토박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긴 하나 고향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라던 김부겸 국무총리는 2020년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지역 정가를 떠났고, 은퇴 후 돌아갈 장소로는 경기도 양평을 골랐다.

다른 지역 사정도 마찬가지. 부산에서 내리 여섯 번씩이나 당선된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지금 서울에 살고, 마포역 근처에서 '마포포럼'이라는 모임을 한다. 부산에서 그의 이름 석 자가 거론되는 건 오직 선거 때뿐이다.

이런 구조를 바꾸고, 정말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를 여의도로 보내려면 유권자들의 냉정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대구 중남구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는 정작 지역민들조차도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중남구 보궐선거에 나선 한 예비후보는 "주민들을 만나보면 선거일이 언제인지 모르는 분들은 물론, 아예 보궐선거가 치러지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대구에도 이제는 지역에서 자식을 키우고, 은퇴하면 지역 원로로 대구에서 노후를 보낼 '대구 사람'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결정지을 최후의 방어선은 결국 선거일 기표소를 찾은 당신의 한 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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