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안목원(전직 고교 교사) 씨의 부친 故 안용록 씨

4남 2년 중 1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삼 남매만 키우셨습니다

안목원 씨(사진 오른쪽) 대학 졸업식 때 아버지 안용록 씨(사진 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안목원 씨(사진 오른쪽) 대학 졸업식 때 아버지 안용록 씨(사진 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아버지 돌아가신지 어언 34년. 점점 잊혀져 가는 아버지라는 세 글자! 꿈에서라도 그립습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무녀 독남으로 태어 나셔서 항상 외롭게 사시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독자로 외롭게 살아 가시면서 늘 여러 형제 자매 있는 집을 부러워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20대 초에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나이로 집안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 집은 대농가였는데, 집안의 살림을 꿋꿋이 지켜 부잣집이라는 소리를 지금까지 듣게 하는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당신께서는 4남2녀 6남매를 낳아 이 무슨 하늘의 장난인지 그 중에 반타작으로 2남 1녀를 하늘 나라로 보내고, 남은 우리 삼 남매만 키우셨습니다. 그 중에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철봉 하다가 떨어져서 늑막염에 걸려 온갖 고생하다 죽었다네요. 그런 아버지의 가슴에 맺힌 한을 저희들이 눈곱만큼도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 우리 집은 그 부근에서 '부잣집'으로 불리던, 생활 형편이 나은 농가였습니다. 늘 머슴을 큰 머슴, 아이 머슴 때로는 셋까지 두었습니다. 머슴이 산에 나무하러 갈 때, 베 보자기에 점심밥을 싸갔는데,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에게 점심밥 넉넉하게 반찬도 여유 있게 해서 배고프지 않게 하라고 늘 당부하셨습니다. 항상 아버지께서는 남의 식구 배고프지 않게, 춥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우리 집은 바닷가 어촌 마을에서 거리 멀지 않았는데, 바닷가 아줌마들이 다라이('대야'의 일본말)에 생선을 머리에 이고 동네에 팔러 왔습니다. 생선을 팔러 다니다가 다 못 팔면 마지막에 우리 집에 와서 부잣집에서 좀 처리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사주라고 하셨고, 생선값은 보리쌀이나 감자로 주었는데 아버지는 "늘 어려운 사람들인데, 감자 몇 개 보리쌀 한 줌이라도 더 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말 가슴이 따뜻하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인간애의 본보기 였습니다.

아버지○ 안용록 씨(사진 가운데 안경낀 사람)가 두 아들 내외의 가족과 시골 마당에서 함께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아버지○ 안용록 씨(사진 가운데 안경낀 사람)가 두 아들 내외의 가족과 시골 마당에서 함께 찍은 사진. 가족 제공.

막내인 제가 초등학교 시절, 6학년 때 전교 학생회 회장이 되었지요. 그해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아버지께서는 십여분 정도 되는 학교 전체 선생님을 우리 집에 초대해 집에서 기르던 닭을 몇 마리 잡아 닭 백숙을 대접하셨지요. 이는 진정으로 뇌물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의 정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사람이 공부를 왜 해야하느냐?" 제가 얼른 대답을 못하니까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아는 것이 없으면 남이 깔본다" 하시고, 또 이어서 "돈을 왜 벌어야 하느냐"고 물으셨지요. 역시 얼른 대답을 못하니 "사람이 돈이 없으면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 하셨습니다. 정말 제겐 큰 교훈이었고,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정직해야 언제 어디에 처하든지 떳떳하게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은 이익에 눈 어두워 남을 속이면 반드시 좋지 못한 결과가 언젠가는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노후에 저희들 객지에 다 보내고 어머님과 두분 만이 사셨는데, 아버지보다 두 살 더 많은 어머니를 끔찍이 아끼셨습니다. 어머니가 잔병이 많아 기침이라도 콜록거리면 찬 겨울에도 2㎞ 정도 떨어져 있는 읍내 약국에 쏜살같이 달려가 약을 지어 오셨습니다.

그런 두 분께서 그래도 백년해로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18살에, 어머니께서 20살에 두 분이 만나 66년을 함께 사시다가 아버지는 81세에, 어머니는 85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당시로는 상당히 장수하신 셈이지요.

꿈에도 그리운 아버지! 지난해 10월에는 아버지의 증손자도 장가를 보냈고 우리 후손들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편히 쉬세요!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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