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3>‘워리어스’ 덕후의 세계어 정복기

범어도서관 사서 오유빛

에린 헌터 지음 / HarperCollins 펴냄
에린 헌터 지음 / HarperCollins 펴냄

범어도서관 국제자료실에서 사서를 시작한 지 1년이 됐을 때다. 자료실을 관리하고 대출 반납을 하면서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질 때쯤 한 학생이 왔다. 항상 교복을 입고 오기 때문에 고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였고 덩치가 커서 기억에 뚜렷한 남학생이었다.

내가 이 학생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교복이나 큰 덩치가 아니다. 바로 항상 빌리는 책만 빌리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책 'Warriors'의 열혈 팬이다. 워리어스 시리즈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작가 케이트 캐리, 체리스 볼드리, 빅토리아 홈즈 등 3명이 결성한 팀 '에린 헌터'가 지은 시리즈로 국내외 모두 인기가 많은 시리즈이고, 우리나라에선 '고양이 전사들'로 번역되어 나왔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책이 출판되었고 현재까지 출판되고 있는 인기 시리즈다.

이 학생은 이미 한글 번역 책은 모두 보고 번역이 안 된 나머지 책들도 영어 원서로 보는 열혈 팬이었다. 대출과 반납은 늘 '워리어스'로 찍혀있었고 이 학생이 오면 늘 같은 자리만 가서 책을 고르곤 했다. 그래서 이 학생을 기억하기 쉬웠다.

지난해 8월 말쯤 어느 날 이번에도 그 학생은 국제자료실을 방문했고 워리어스 시리즈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고 생각에 잠긴 듯 기다리고 있다가 이내 나를 찾아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책 신청은 어디로 하면 되나요"라고 물어봤다.

메모지와 펜을 주고 책 신청은 내게 직접 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학생은 상당히 빠르게 메모지를 채우더니 이내 다 채우고 메모지를 더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혹시 다른 외국어 책도 신청을 받나요"라고 물었다. 가능하다고 안내하니 학생은 일본어로 책 제목을 쓰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본어를 다 쓴 뒤 이번에는 중국어로, 프랑스어, 마지막에는 스페인어로 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 '워리어스'였다.

평생 영어 하나만 잘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학생은 영어는 물론, 일본어와 중국어, 프랑스어에 스페인어까지 알고 있는 언어박사였던 것이다. 다 쓴 학생은 자리를 정리하더니 고맙다고 하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놀라서 헛웃음을 짓고 있었고 옆에 있던 사서 보조 선생님도 나랑 같은 모습이었다.

오유빛 범어도서관 사서
오유빛 범어도서관 사서

학생이 쓴 메모지들은 모두 정리해 수서팀으로 넘겼다. 현재 영문판 '워리어스'는 새로운 시리즈가 들어와 있는 상태이고 영어책 아닌 다른 외국어 책들은 구입하는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내년쯤 도착한다. 매번 '워리어스' 책을 보고 '워리어스'만 신청하는 6개 국어를 알고 있는 '워리어스' 덕후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용자다.

오유빛 범어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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