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워도 여기가 낫다"…'경로당 왕따'에 야외로 내몰린 노인들

대구 노인 경로당 이용률 15% 그쳐…경로당 내 따돌림·텃세에 야외 벤치로
일부 회원 세력화에 시설 독점…상주 관리자 없어 예방 어려워
대구 내 예방 프로그램 실시 기관 한 곳 뿐…그마저도 코로나19로 중단

지난 5일 오후 3시쯤 대구 서구 북비산네거리. 야외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았다. 서구에 있는 경로당을 다니다 기존 회원의 텃세에 못 이겨 경로당을 나왔다는 김모(77) 씨는
지난 5일 오후 3시쯤 대구 서구 북비산네거리. 야외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았다. 서구에 있는 경로당을 다니다 기존 회원의 텃세에 못 이겨 경로당을 나왔다는 김모(77) 씨는 "가시방석 같던 경로당보단 조금 추워도 야외 벤치가 훨씬 마음 편하다"고 했다. 윤정훈 기자

대구 한 경로당을 이용하는 A(81) 씨는 귀가 어두워 대답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경로당 회원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경로당 회비 내는 날짜를 A씨에게만 알리지 않은 뒤 '회비를 빨리 안 낸다'며 욕을 하고, 행사 준비 등 의사 결정을 할 때도 A씨 의견은 아무도 묻지 않는다. A씨는 다른 회원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 때마다 자신을 욕하고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 움츠러든다.

2019년부터 대구 서구 한 경로당을 이용하다가 기존 회원들의 텃세로 경로당을 나왔다는 B(77) 씨. 기존 회원들은 B씨를 포함해 신입 회원들에게 쌀쌀맞게 대했고, 몸이 불편한 회원에 대한 뒷담화도 서슴지 않았다.

B씨는 물을 떠주거나 혼자 설거지를 하는 등 기존 회원들과 잘 지내려 노력하다가, 결국 지난해 초부터 경로당에 나가지 않았다. 현재는 서구 북비산네거리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가시방석 같던 경로당보단 추워도 야외 벤치가 훨씬 마음이 편해서다.

경로당에서 따돌림과 텃세로 갈등을 빚어 추운 겨울 공원이나 길거리로 내몰리는 노인이 많다. 경로당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인 1만97명 중 경로당을 다니는 비율은 28.1%(2천841명)다. 올해 10월 기준 대구의 65세 이상 노인 41만4천427명 중 경로당 회원은 6만964명으로, 대구 노인들의 경로당 이용률은 14.7%에 그치는 수준이다.

경로당 이용을 꺼리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경로당에서 한 명을 따돌리거나 새로운 회원에게 텃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경로당은 한 방에 모여 있는 구조라 따돌림과 텃세를 피해 있을 공간이 없다. 대한노인회 각 구·군별 지회에서 경로당 관리를 맡고 있지만, 상주하는 관리자가 없어 이를 예방하기도 쉽지 않다.

대구 남구에 있는 한 경로당 내부 모습. 대부분 경로당은 회원들이 한 방에 모여 있는 구조다. 윤정훈 기자
대구 남구에 있는 한 경로당 내부 모습. 대부분 경로당은 회원들이 한 방에 모여 있는 구조다. 윤정훈 기자

박창제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로당에서 나이가 비교적 적은 노인이나 건강이 안 좋은 노인, 새로 와서 자기편이 없는 노인은 약자가 된다"며 "노년층은 서열이 높은 사람이 명령하면 아랫사람은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강해서 따돌림이나 텃세가 문제라는 인식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결국 일부 회원만 경로당을 독점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따돌림과 텃세를 예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열악하다. 대구에서 이와 관련한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은 대구중구노인상담소(이하 상담소) 한 곳뿐이다. 상담소는 2012년부터 대구 경로당을 대상으로 직접 방문해 노인 집단괴롭힘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상담소가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로당은 142곳으로, 전체 1천530곳 중 9%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코로나19 때문에 멈췄다. 지난해는 아예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했고, 올해는 경로당 운영이 재개되면서 지난 7, 8월 실시했으나 이후 다시 중단됐다.

강난미 대구중구노인상담소 소장은 "경로당 내 따돌림이나 텃세 문제로 상처받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노인이 많은데,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프라는 부족하다"며 "2007년 상담소가 생긴 이래로 직원은 늘 3명에 불과했다. 더 많은 경로당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상담소 인력 보충과 예산 확대가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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