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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의 필름통] 한국 애니메이션 둘, '무녀도' 그리고 '태일이'

영화 '무녀도'의 한 장면
영화 '무녀도'의 한 장면

의미 있는 두 편의 한국 애니메이션이 개봉한다.

소설가 김동리가 1939년 발표한 소설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낸 '무녀도'(감독 안재훈)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불꽃이었던 전태일의 삶을 그린 '태일이'(감독 홍준표)다. 아픈 시대를 뜨겁게 산, 꽃 같은 인물들을 화려하면서 정감어린 화폭에 담은 우리 애니메이션이다.

'무녀도'는 경주의 한 부잣집에 걸려 있는 무녀도로 시작한다. 할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내레이션으로 풀어놓는다. 때는 신문물이 들어오던 1920년대. 무당 모화(소냐)는 근근이 굿을 하며 귀 먹은 딸 낭이와 살아간다. 어느 날 절로 출가한 아들 욱이(김다현)가 돌아온다. 불도에 귀의한 줄 알았던 욱이는 기독교 신자가 됐다. "불도 말고 다른 도가 있나?" 밥을 먹을 때마다 주문(기도)을 외는 아들이 낯설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의 갈등은 깊어진다. 기름불을 밝혀 지극정성으로 신령님을 찾는 어머니와 성경을 외며 하느님을 찾는 아들, 거기에 의붓오누이인 낭이와 욱이의 미묘한 감정까지 더해지면서 외딴 무당집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위태로워진다.

'무녀도'는 작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눈꽃이 떨어지고, 뜨거운 단풍이 걸렸다. 소나무 숲에 깔린 보랏빛 맥문동, 마당에 피어난 갖가지 꽃 등도 하나하나 떼어놓으면 모두 작품이 될 만한 수준이다. 거기에 우리 무속신앙 속 화려한 옷감과 색채들이 스크린에 살아 눈이 시릴 정도다. 우리의 기억 속 풍경과 우리의 정서가 담긴 애니메이션이어서 더욱 반갑다.

영화 '무녀도'의 한 장면
영화 '무녀도'의 한 장면

24일 개봉한 '무녀도'는 우리 속에 각인돼 있는 슬픈 한(恨)의 정서를 터치한다. 무당인 모화는 이미 슬픈 운명의 인물이다. 신 내린 여인의 삶이란 고단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남정네들은 왔다가 갈 뿐, 남은 것은 피 다른 피붙이들이다. 병으로 딸의 귀가 멀더니 이젠 아들마저 외국 신에게 빼앗겼다. 내가 믿는 신령님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무녀도'는 원작의 틀을 유지하면서 색다른 시도를 한다. 장구와 징이 울리는 전통의 소리에 뮤지컬의 멜로디를 입힌 것이다. 모화와 욱이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듯 뮤지컬 가사로 노래한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모화 역은 대구 출신의 뮤지컬 배우 소냐가 맡아 호소력 있게 연기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늘 K콘텐츠의 막내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장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끊임없이 한국적 소재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한재훈 감독이다. 2011년 '소중한 날의 꿈'을 시작으로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 '소나기'(2017) 등 한국 단편소설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무녀도'는 2년 이상 각종 서적을 참조했고, 다양한 굿 장면은 무속인들의 조언을 구하는 등 고증에 힘썼다. 지난해 '애니메이션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독특하고 도전적인 작품에 수여하는 콩트르샹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86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12월 1일 개봉하는 '태일이'는 명필름이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애니메이션이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한국 노동운동에 불을 지피고 22세에 세상을 떠난, 한없이 힘든 삶을 산 노동청년이었다.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은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전태일의 삶이 그려져 있다.

실패한 아버지의 술주정과 구타에 어머니는 서울로 식모살이를 떠나고, 전태일도 여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오게 된다. 시장 한구석에서 오돌오돌 떨며, 뱃가죽이 등에 붙는 허기를 견디며 그는 평화시장 재단사 보조로 취직한다. 그러나 하루 15시간씩 일을 해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여공들의 노동환경은 더 했다. 추위로 창문까지 막아 먼지를 마시며 일할 수밖에 없었고, 혹 폐렴이라도 걸리면 해고됐다. 그는 1969년 6월 노동자들을 모아 '바보회'를 만들어, 노동 현장의 부조리를 밝히기 시작한다.

'태일이'는 진정성 넘치는 애니메이션이다. 전태일을 미화하거나, 주변 인물들을 극단으로 몰아가지 않으면서 차분하면서 담담하게 암울한 시대상을 녹여내고 있다. 1970년대 서울의 모습도 정감있게 그려내고, 인물들도 밝고 부드럽게 묘사했다. 원작은 다섯 권짜리 만화책으로 '전태일 평전'과 수기 모음집인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를 기초로 하고 있다. 99분. 전체 관람가.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한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 콘텐츠가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애니메이션이다. 흔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한다. 그 공식이 입증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무녀도'와 '태일이'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한국 영화계에 이런 진정성을 지닌 창작자들이 있는 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공도 먼 미래의 일은 아닐 듯싶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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