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sight] 황리단길이 바꾼 살아 있는 '신라 천년고도' 경주

밤길 어둡고 즐길 거리 없는 보문단지 밀어내고 뜨거운 명소로 부각…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 도심 야간 조명으로 시너지 효과 톡톡

황리단길이 신라 천년고도 경주를 활력 넘치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황리단길은 1960~70년대 형성된 후진 골목길이었으나 2015년 말부터 상인들이 낡은 상가와 주택을 단장하면서 젊은 층이 많이 찾는 경주 대표 관광지로 떠올랐다. 김교성 기자
황리단길이 신라 천년고도 경주를 활력 넘치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황리단길은 1960~70년대 형성된 후진 골목길이었으나 2015년 말부터 상인들이 낡은 상가와 주택을 단장하면서 젊은 층이 많이 찾는 경주 대표 관광지로 떠올랐다. 김교성 기자

세계적으로 조상들이 남긴 문화와 유적지를 밑천 삼은 관광 산업 덕분에 먹고 사는 나라와 도시가 꽤 있다. 유럽의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동로마 유적지가 많은 터키의 에페소, 파묵칼레 등 여러 도시와 앙코트와트를 둔 캄보디아의 시엠레아프가 여기에 해당한다. 국내에서는 도심에 신라 시대 왕릉 등 유적지를 품고 있는 경주를 꼽을 수 있다.

요즘 신라 천년고도 경주가 조상들이 남긴 유물 도시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경주 포석로 일대 712m 구간(내남네거리~황남초교네거리)에 형성된 황리단길(황남동+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이 있다. 경주가 '죽은 자' 대릉원과 '산 자' 황리단길의 조화로, 늙은 관광 도시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도시로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다.

경주 토박이 50대 여성 A 씨는 지난 2015년 말쯤 형성되기 시작한 황리단길이 몰고 온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면서 경주가 제주도 다음으로 인기 있는 국내 관광지가 된 것 같다. 황리단길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며 "여행에 목마른 타지의 지인들이 부쩍 경주를 찾으면서 안내하기에 바쁘다"고 했다.

A 씨는 경주의 관광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예전 보문단지 일대에 숙소를 잡아달라고 하던 이들이 요즘에는 황리단길의 한옥 숙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는 황리단길의 한옥에 예약하지 못한 이들의 부탁에 직접 발품을 팔아 방을 구하는 실정이다.

A 씨는 '신라 천년고도=경주' 등식이 자랑스럽지만, 왠지 죽은 도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는데 황리단길이 형성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등 경주가 생동감 있는 도시로 변한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그는 밤 되면 깜깜한 보문단지와 황리단길은 너무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말로만 관광 활성화를 부르짖을 게 아니라 관광객 눈높이에 맞는 시설과 환경을 조성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이 몰림을 경주시와 시민들이 배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광객들이 황리단길 인근 숙박을 바라는 이유는 단순하다. 숙소 가까운 곳에 대릉원(천마총)과 첨성대 동부사적지, 동궁과 월지, 월성, 교촌마을, 월정교, 오릉 등 신라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유적지는 걸어서 이동하기에 편리하게 연결된 데다 야간 조명으로 적절하게 불을 밝혀 사진찍기에 좋다.

이런 기본적인 관광(볼거리) 요소에 황리단길이 카페와 음식점, 타로점, 한복 대여 등으로 체험 거리를 제공하면서 젊은 층의 경주 여행이 크게 늘고 있다. 해외여행의 활성화로 우리 국민의 관광 문화 수준이 높아진 만큼 야간 조명과 밤 문화 체험 활동은 관광 활성화의 필수 요건이 됐다.

금요일인 지난 19일 찾은 황리단길과 인근 유적지는 북새통을 이뤘다. 데이트족과 어린아이를 둔 가족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기자 세대의 장노년층은 거의 없었다. 황리단길의 좁은 인도에는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음식점과 카페, 제과점, 기념품 가게 등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복대여점 앞에서는 한복으로 갈아입은 젊은 여성들이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도로는 1차로 일방통행임에도 정체를 거듭했다. 황리단길을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하거나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차량 진입을 통제할 필요성이 높아 보였다.

야간 조명을 한 경주 첨성대. 금요일인 지난 19일 밤 첨성대에는 많은 관광객과 경주시민들이 찾아 기념사진을 찍는 등 늦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김교성 기자
야간 조명을 한 경주 첨성대. 금요일인 지난 19일 밤 첨성대에는 많은 관광객과 경주시민들이 찾아 기념사진을 찍는 등 늦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김교성 기자

첨성대, 동궁과 월지, 왕릉 등에서는 경주의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유적지 형태에 따른 적절한 조명으로, 사진찍기 명소로 알려진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 있다. 작은 깃대를 든 가이드가 단체 관광객을 이끌고, 문화유적 해설사들은 야간에도 활동하고 있다.

황리단길은 경주시가 조성해 이름 지은 곳이 아니다. 6년 전쯤 대릉원 뒤편 포석로 구간의 몇몇 상인들이 옛 모습을 한 건물에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개성 있는 가게를 열고 SNS를 통해 황리단길로 홍보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애초 고도역사지구 내 문화재로 인한 개발제한으로 이곳은 1960~70년대 지어진 낡은 상가와 주택이 밀집해 있었으며 선술집과 점집, 철학관 등 한물간 상권을 이루고 있었다.

현재 황리단길에는 젊은 관광객을 끄는 독특한 스타일의 식당과 카페, 한옥 숙박업소 등 400여 개의 상가가 자리 잡고 있다. 경주시는 음식점 125개, 카페 65개, 한옥 숙박업소 50개, 제과점 25개, 기타(의류, 잡화, 기념품, 사진관, 한복·자전거 대여) 135개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주시는 관광객들이 몰리자 도로와 인도를 정비하고 주차장을 마련하는 등 관광객을 위한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경주에서도 대표적인 후진 곳이었던 황리단길의 변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A 씨처럼 경주시민들과 경주시는 지금 같은 변화를 상상도 못 했다. A 씨는 외지 부동산 세력이 황리단길 상권은 점령하면서 경주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는 경주시민뿐만 아니라 경주시와 경상북도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 황리단길을 발판 삼아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역사유적 대릉원지구·월성지구가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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