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택화재의 백신, 주택용 소방시설

박정원 대구서부소방서장

박정원 대구서부소방서장
박정원 대구서부소방서장

주택 화재는 주택용 소방시설(단독경보형 감지기·소화기)의 자발적 설치 덕분에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최근 대구의 3년간(2017~2019년) 주택 화재 평균 사망자는 5.6명이었으나 2020년 사망자는 2명으로 주택 화재 사망자 발생률이 76%가량 감소했다.

과거 주택 화재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이유는 화재를 조기에 인지하지 못해 유독가스를 다량 흡입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소화기를 비치하지 않아 초기 소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주택 화재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는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의무를 법제화하고 보급에 힘쓰고 있다. 설치가 매우 쉽고 1만 원의 작은 돈으로 구비할 수 있는 주택용 소방시설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초기 화재 진압과 사망자 감소에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서다.

미국은 1977년에 기준을 마련하고 2004년에 화재경보기를 96%의 보급해 32년간 화재 사망자가 56% 감소했다. 일본은 2004년에 기준을 마련, 2015년에 81% 보급해 6년간 12.4% 화재 사망자가 감소해 주택 화재로 인한 사망자 감소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2년 개정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 제8조'에 따라, 신축 주택은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기존 주택의 경우에는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둬 2017년 2월 4일까지 설치하도록 했다. 제도 정비 이후 주택 화재 사망자는 2012년 160명에서 2020년 122명으로 8년간 38명, 23%가 감소했다. 전국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은 2019년 56%에서 2020년 62%로 6%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도 설치율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역사서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현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한국은 전체주의적 감시가 아닌 자발적 감시로 코로나19에 대처한 사례"라며 서구 국가들에 이를 배울 것을 촉구한 적이 있다. 그는 '비누로 손 씻기'를 예로 들어 이를 설명했다.

오늘날 전 지구인이 매일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은 '비누 경찰'(Soap Police·공권력의 감시와 처벌을 의미)이 들이닥칠까 봐 두려워하는 행동이 아니다. 명백한 과학적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손을 비누로 씻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존재함을 알고 있고, 이 미생물과 바이러스가 병을 일으킨다는 것과 비누가 이를 제거한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올바른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의심 많은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보다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하고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이 전염병에 더 쉽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이 매일 비누로 손을 씻는지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거나 경찰을 상주시킬 수 있을까. 매우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더욱 확대되고 그 사람들이 주어진 정보를 신뢰한다면, 자발적으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500원 정도 하는 비누가 수십억 명의 생명을 지킨 것처럼 1만 원 정도 하는 화재경보기와 소화기가 화재를 예방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하고 가정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이제 나만 알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마스크 착용을 서로가 서로에게 전파한 것처럼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를 전파해야 한다. 주택 화재의 백신, 주택용 소방시설이 소중한 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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