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팩트’ 없는 윤석열 사주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38년 나치 독일은 일본에 독일, 일본, 이탈리아 간 삼국동맹을 맺자고 제안했다. 히로타 고키(廣田弘毅) 내각 때인 1936년 10월 25일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독일과 일본이 맺은 방공협정(防共協定)을 강화시켜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이에 당시 히라누마 기이치로(平沼騏一郞) 총리는 전향적 검토에 들어갔다. 독일과 합동해 소련을 쳐야 한다는 것이 히라누마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시 해군대신 요나이 미쓰마사(米內光政), 해군 차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해군성 군무국장 이노우에 시게요시(井上成美) 등 이른바 '해군 좌파 3인방'이 강력히 반대했다. 소련과 전쟁을 할 경우 독일로부터 실질적 원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상당히 합리적 분석이었다.

그러나 히라누마는 어떻게든 삼국동맹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국동맹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총리대신, 외무대신, 대장(大藏)대신, 해군대신, 육군대신이 모이는 '5상(相) 회의'를 70회 이상이나 열었다.

그러던 중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그러자 히라누마는 '멘붕'에 빠져 '구주천지 복잡괴기'(歐洲天地 複雜怪奇·유럽 천지가 복잡괴기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역사소설가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그것은 '복잡괴기'가 아니라 "일본이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너무나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 진짜 세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독일과 소련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보이는 사람에겐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꺼낸 이유는 이른바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 국민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어서다. 지난 2일 최초 보도 이후 지금까지 이 사건의 전개 양상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시선을 한군데에 집중하면 혼란스러울 것도 없다. 사건의 핵심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전달을 사주하거나 묵인했느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팩트'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그 외에는 팩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흐리는 '소음'이다. 그런데 아직 그런 팩트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마 그런 팩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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