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우리나라의 종교자유

전헌호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사람은 사회적 존재여서 서열이 있고 서로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영적인 일에서도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나아가 더 나은 것과 덜 나은 것을 구분하며 서열을 매기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를 타종교보다 더 나은 것으로 생각하고 타종교를 무시하거나 심하면 박해까지 한 것을 역사 안에서 보아왔다.

우리나라에서 종교 때문에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은 최초의 기록은 신라시대 이차돈 사건이다. 이것이 불교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전파하는 데에 불을 지핀 격이 되어 이후 신라는 불교국가가 되었다. 이어진 고려왕조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기존하던 타종교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잘 모른다. 고려와는 정반대로 숭유억불 정책을 기본으로 한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불교 탄압이 있었지만 승려나 불교신자를 죽이기까지 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어 입국한 이후 가톨릭 신앙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 1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로는 3만 명 정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1886년 프랑스와 맺은 한불수호조약으로 프랑스인들이 국내에서 종교자유를 가졌고, 1899년 내국인들도 종교자유를 갖게 되었다.

종교자유를 갖게 된 이후 시대의 가톨릭교회는 박해 과정에서 받은 상처로 일제 강점기의 상당히 긴 기간 조심스러워했다. 해방 후 38선 이북 교회는 공산당에 의해 생명력을 잃었고, 6·25사변에 의해 남한 교회도 많은 수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죽임을 당하며 고초에 시달렸다. 그동안 불교와 개신교가 받은 고통도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 대부분은 알고 있다.

그 후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종교자유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우리는 국가가 어느 한 종교단체나 개인의 종교적 믿음과 집회를 막거나 탄압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물론 대통령의 종교에 따라 특정 종교에 대한 강조점이 이동해 다닌 적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어느 한 종교를 치켜세우거나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박해한 적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 모두는 오늘날 자신의 신앙과 종교행위가 특정 개인이나 사회질서에 곤란을 초래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믿고 표현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또한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는 물론, 지금까지 신봉한 종교를 떠나 타 종교를 택할 자유도 있다. 나아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 자유까지 있다. 때문에 특정 종교를 강요받거나 남에게 강요할 수 없다.

이런 호시절이 지속되는 시대에 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거나 던지지 않거나, 이렇다고 하거나 저렇다고 하거나, 어떤 답도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우리 자신의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유가 이렇게도 확실하게 존재한다.

문제는 이 자유를 잘 사용하지 않으면 인생을 자기 주도적으로 살지 않은 사람, 되어가는 대로 끌려가는 노예적인 삶을 사는 사람, 삶을 포기하여 옳은 인간으로서 살지 못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에 있다. 또한 어떤 것이 참된 종교이고 어떤 것이 사이비인지 구분하지 못하여 심각한 오류에 빠져들어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주어진 자유를 제대로 사용해 보다 나은 인간, 본래의 나 자신이 되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햄릿의 고민과도 같은 물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전헌호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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